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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Feb 06. 2020

오 자유, 오 방학.
이 창살 없는 감옥이여.

19년 12월 23일




  19년 12월 23일


  '흐아아아...'

  내 입에서는 늘어지는 소리가 주욱 늘어난다. '지루해 죽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손꼽아온 방학인데. 지루할  거란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지루하다. 어떻게 이렇게 지루할 수가 있는 거지.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내 삶에서 재미란 재미는 죄다 증발해 버렸다. '진짜 이 판까지만 해야지'하며 오후 내내 하던 게임도 재미가 없어졌다. 챙겨보던 예능들도 지루해졌다. 눈뜨고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고 있지만 유튜브도 다 거기서 거기다. 세상에 재미란 건 죄다 어디로 도망쳐 버린 걸까. 세상에는 원래 재미란 게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무색, 무취, 무미건조해져 버렸다.





같이 있는 단원 선생님이 해주신 피자. 분명히 이쁘고 좋은 날에 맛있어 보였는데...


  이런 일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수능 치기 한 달 전. 가만히 누워서 매 1분마다 초침이 분침을 제치는 레이스도 꿀잼이었다. 활자로 된 건 전부다 얼마나 재밌는지 화장실에서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샴푸 성분표까지 정독할 지경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컴퓨터 게임은 정말 미쳐 버릴 정도로 재밌었다. 몸은 공부하는 척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선수들처럼 게임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간은 게임을 열렬히 갈망하는 시간과 게임을 하는 황홀한 시간, 둘로 나눌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거대하고 막막한 자유가 주어졌다. 매일 등교해야 했지만 수업은 하나도 없었다. 형식적인 출석 체크 이후 모든 것은 자유였다. 그리고 티브이를 보든, 노트북을 가져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든, 친구들과 떠들든 다 자유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놀랍도록 무미건조해지고 재미없어졌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컴퓨터 게임을 해도, 드러누워 시계를 봐도, 샴푸 성분표를 읽어도 지루했다. 그래도 시간은 참 잘 갔다. 손에 움켜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시간은 급속도로 의미 없이 흘러나갔다. 다 사라지고서야 알았다. 자유가 끝나고 난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주말에 조용한 마을로 놀러왔다. 몸은 자유롭지만 여전히 심심해.


  불행히도 이러한 삶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대학 생활. 몰아치는 과제와 시험, 퀴즈에 흠씬 두들겨 맞을 때는 동아리방 창 밖의 흔들리는 낙엽마저도 스릴 있었다. 항상 1리터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그 길도 은행 똥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낭만이 있었다. 지하 열람실에서 전공책을 펴기 전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도 언제나 기말고사의 끝, 방학이라는 거대한 자유에 박살이 나버렸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그날 밤 친구들과 노래방, 피시방에서 밤샐 때 까진 그런대로 즐거웠다. 하지만 다음날 늦은 점심때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나면 '그래서 나 이제 뭐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길어도 40분이면 끝나는 허무한 게임을 하고, 여행이랍시고 해외 낯선 길거리를 싸다니다 보면 방학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학기 시작이라는 개목줄을 꼈다.


  나는 이 거대한 자유를 잘 쓸 줄 몰랐다. 자유롭고 싶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했지만, 난 자유를 싫어했다.




  자유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어디로부터의 자유'와 '어디로 향하는 자유'. 여태껏 나의 자유 대부분은 '어디로부터의 자유'였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빌어먹은 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 지옥 같은 시험공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런 '어디로부터의 자유'는 반쪽짜리 자유다. 벗어나기 전에는, 이 자유만 주어지다면 모든 것을 얻을 듯 행복해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자유로워진다 해도 그 후 그저 광활한 광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생각보다 행복하지도 않고, 도리어 해방감보다는 막막함이 앞선다. 지도 없이 모르는 땅 한가운데 떨어진 것과 같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고양아. 너는 자유롭니?


  그에 비에 '어디로 향하는 자유'야 말로 '진짜'다.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오는 내용을 빌려서 표현한다면 물레를 돌리는데 왼쪽 검지가 걸리적거려 잘라버리는 것이 진짜 자유인 것이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자유란 목적,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이 내켜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것이 나의 첫 '진짜' 자유가 아닌가 싶다. 남들처럼 돈 벌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내 발로 주어 차고, '그러다 굶어 죽으면 어쩌려고?'라는 비아냥을 헤헤 웃는 얼굴로 집어삼키고선, 남들 돕겠다는 알량한 뜻을 품고 콜롬비아 구석에서 이러고 궁상떨고 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가끔은 내가 두고 온 대기업 연봉이 생각이 나서 바닥을 구른다. 아이고 내 돈이야. 그 돈이면 매일 저녁 교촌치킨을 사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자유란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사는 것. 그게 참 어렵다. '근의 공식'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따위는 잘 알아도 나의 마음 한 길도 잘 알지 못한다. 아직도 내 마음이 무엇을 내켜하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지금처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이 반쪽짜리 자유는, 이 방학은 재앙이다. 꼭 준비 없이 얻은 과분한 돈과 명예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데 돈을 쓰고, 낮은 사람들한테 갑질 하듯 자유도 똑같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어딜 향할지 모르는 자유는 있으니만 못한 것이다.


  이 막연한 지루함 속에 다시금 고민해본다. 나는 뭘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내켜하는가. 나는 언제 자유로운가. 빌어먹을 인스타 좋아요 수 같은 얄구진 인정에서 벗어나서 이 방학 내가 어떤 놈인가 열심히 고민해볼 때다. 그렇게 더더욱 자유로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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