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12월 14일
19년 12월 14일
위잉위잉... 위잉위잉...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핸드폰 진동이 위잉위잉 울렸다. 정신은 진작 깼지만 눈은 좀처럼 뜰 수가 없었다. 짜증과 함께 잔뜩 찡그린 표정, 겨우 실 눈뜨고 화면을 확인해 보니 Yulia라는 학교 비서의 전화였다. 웬만하면 나한테 전화하실 분이 아니신데, 이 아침에 무슨 일이시지? 깊이 잠긴 목소리로 "Alo알...로...(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았다.
Yulia는 '지금 어디야? 왜 아직도 안 왔어?'라고 물어봤다. 오늘은 8시까지 출근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냐고 물어보니 출근이 7시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지금이 7시 5분을 막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동료 기계 선생님들한테 분명히 8시라고 메시지를 받았건만. 역시 시간 약속은 기계 선생님들을 믿으면 안 된다. 금방 간다고 준비 다해간다는 아무도 믿지 않을 뻥을 치고 이불 밖을 뻥 차고 나왔다. 비록 지각으로 시작했지만 이 날은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 11학년들의 둘도 없는 졸업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교장선생님께서 어제 점심에 '내일 넥타이를 매고 오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래서 오천만 년 만에 넥타이도 매고 구두도 신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내가 귀빈, VIP라는 뜻인 건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졸업식장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가끔 박수소리에 깨서 남들 따라 물개 박수나 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졸업식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단상으로 부르셨다. 그래서 단상 위 교장선생님 옆 부장 선생님 옆 NO.3 쯤 되는 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그 양 옆으로는 국회의원Consejo와 11학년 각 반 담임선생님들이 앉으셨다. 뭐야. 이게 뭐지. 아니 꿈인 가 싶었다. 토요일 아침 8시. 급하게 오느라 고양이 세수하고 눈곱만 겨우 땐 그지 모양새로 1000여 명 앞에서 NO. 3 자리에 앉다니. 꿈이길 바랬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식의 시작은 온갖 공식적인 노래들로 시작했다. 여기 와서 수백 번은 들은듯한 콜롬비아 국가부터, 산탄데르주 노래, 부카라망가 시 노래. 마지막으로 교가까지. 매번 느끼지만 이 순간이 참 애매하다. 다들 경건히 한쪽 가슴에 손을 얹고 격정의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무엇이 예의일까? 국가를 따라 부르는 척해야 하는 걸까? 나도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할까? 나 혼자 외국인이니 혼자 왕따 당하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가슴에 손은 안 얹지만 나름 경건한 자세, 멀리서 보면 꼭 누구한테 혼나는 듯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따라 부르는 척을 한다. 나름대로 엄청나게 예의를 갖추려 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절하게 뻐끔거린다.
식은 아주 길었고 또 아주 악랄했다. 모든 상은 대표만 수상 받는 게 아니라 대상 학생 전부가 다 무대에 올라와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생 270여 명 대부분 상을 받았다. 그리고 몇몇 모범생들을 두세 번씩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시스템과 한 학생은 얼마나 모범생인지, 상이랑 상을 다 휩쓸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너무 무거운 가채로 목뼈가 골절된 여자가 있다고 하던데 저 학생은 메달이 너무 많아서 목이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풍성했다.
그리고 식 중간중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지 혹은 식 도중 잠자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초청 가수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들도 한두 곡으로 끝나지 않는지라 식의 지루함에 한 숟갈 보태고 있었다. 나는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어지간하면 못 알아듣기 때문에 나의 최선인 (어쩌면 교장선생님이 바라던) 살아있는 등신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다가 식의 후반 순서로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졸업장을 수여해 주는 시간이 왔다. 전체 졸업생이 270여 명이니 이 졸업장을 언제 다 수여하나 싶었다. 이 순서도 멍 때리면서 나중에 이 어처구니없는 순간을 어떻게 글로 적어볼까 하는 조금은 작가적인 마음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네? 뭐라고요?'. 내가 이 단상에 올라와 있는 이유는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남들 상장받는 걸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바로 졸업장을 수여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이 무려 나!라는 것이다. 사실 11학년 친구들의 태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 그나마 안면을 튼 기계과 학생들도 지나가며 인사만 주고받은 사이였다.
사실상 이 친구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가 과연 이 친구들의 역사적 순간인 졸업장 수여를 해도 되는 걸까? 졸업장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철저하게 쫄딱 망했다는 걸 바로 직감했다. 다른 11학년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는 친근하게 인사하고 악수하며 졸업장을 받아가는데 내 앞에 온 친구들은 어색한 미소로 반가운 척해준다. 하... 이런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다니.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식 중간 내가 나누어 주기로 한 졸업장이 수여자랑 이름이 다르다. 나도 당황, 받는 학생도 당황. 이 사실을 교장선생님께 알려주니 교장선생님도 당황. 일단은 남의 졸업장을 수여해 주었다. 왜 이런 순간이 왜 하필 나한테만 일어나는 걸까. 그 아이의 눈초리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가득하다.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그저 꼭두각시처럼 옆에서 주는 걸 받아다가 나누어줄 뿐인데 분명 저건 "저 한국인이 스페인어를 못해서 실수한 거다."라는 느낌의 복잡 미묘한 눈초리였다. 10여 초도 안 되는 수여식 순간에 이 억울함을 토로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스페인어로 배운 적도 없었다.
아무튼 그 이후 '살아있는 등신대'에서 '졸업장 수여 봇'으로 전직했다. 이 새로운 역할을 익히기 위해서 옆 선생님들을 어깨너머로 열심히 따라 했다. 이 수여식에서 그나마의 수확이 있다면 단어를 하나 알게 된 것이다.
'Felicitaciones! 축하합니다!' 졸업장 수여하는 내내 들숨 날숨을 할 때마다 Felicitaciones라고 말한 것 같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줬지만 뜬금없이 내가 수여해서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런 아시안 로봇한테 역사적인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정말 꼭두각시였고 오로지 교장선생님의 독단이었다고 이 알아먹지 못할 한국말로 이런 곳에서라도 전해 본다.
그렇게 입에 펠리시따시오네스만 반복하던 그 날의 아침은 본의 아니게 특별했지만 밤은 더 특별한 밤이었다. 이 날은 Dia de las velitas.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작은 촛불들의 날이다. 콜롬비아에만 있는 가톨릭 기념일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선포한 날이자, 그 사건을 기리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종교적 의미는 여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듯하다.
이 날은 그냥 어두컴컴해진 밤, 가족끼리 집 앞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촛불을 켜고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소원을 비는 날인 것이다. 아마도 촛불의 수만큼 소원을 빌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욕심 많은 집은 멀리서 보면 꼭 대형 화재라도 난 듯 촛불 수십 개를 태운다. 이렇게 다들 집 밖에 앉아서 촛불을 켜고 있으니 동네 분위기가 참 따뜻해졌다.
원래는 집 밖을 얼씬도 못할 늦은 밤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삼삼오오 나와서 밝힌 길거리는 참 이쁘고 따뜻하고 안전했다. 그래서 집 주변을 밤 산책하듯 걸었다. 그러다 한 가족에 잡혔다. 나를 졸업식 때 봤단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해보라고 촛불 하나를 건네주신다. 민폐인 것 알지만 이런 걸 언제 또 해보겠는가. 분홍색 작은 양초를 받아서 나도 이 길거리에 불 하나 보탰다.
옆에 아기는 내가 신기한 듯 유심히 쳐다본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어떻게 콜롬비아까지 왔느냐고 묻는다. 학생들은 Hola가 한국어로 뭐냐고 묻는다. 이것저것 설명하다 보니 신기하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넉살 좋게 엠빠나다 하나와 망고 주스도 하나 얻어먹었다.
촛불로 불그스름한 길거리가 참 이쁘다. 형형색색의 촛불이지만 불빛은 다 따스한 주황색으로 똑같다. 비싼 양초든 싸구려 양초든 다 똑같다. 부자 동네의 촛불이든 가난한 동네의 촛불이든 다 똑같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모여 시끌벅적한 가족들의 촛불도, 커플들이 켠 촛불 1개도,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홀로 외로이 집 앞에서 켜는 촛불도 다 똑같다. 마음속으로 비는 소원도 다 비슷할 거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가족들 건강하게 해 주세요.'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이 따스한 촛불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