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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Jan 29. 2020

콜롬비아에서 맞이한
졸업식과 작은 촛불들의 날.

19년 12월 14일




  19년 12월 14일


  위잉위잉... 위잉위잉...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핸드폰 진동이 위잉위잉 울렸다. 정신은 진작 깼지만 눈은 좀처럼 뜰 수가 없었다. 짜증과 함께 잔뜩 찡그린 표정, 겨우 실 눈뜨고 화면을 확인해 보니 Yulia라는 학교 비서의 전화였다. 웬만하면 나한테 전화하실 분이 아니신데, 이 아침에 무슨 일이시지? 깊이 잠긴 목소리로 "Alo알...로...(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았다.


  Yulia는 '지금 어디야? 왜 아직도 안 왔어?'라고 물어봤다. 오늘은 8시까지 출근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냐고 물어보니 출근이 7시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지금이 7시 5분을 막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동료 기계 선생님들한테 분명히 8시라고 메시지를 받았건만. 역시 시간 약속은 기계 선생님들을 믿으면 안 된다. 금방 간다고 준비 다해간다는 아무도 믿지 않을 뻥을 치고 이불 밖을 뻥 차고 나왔다. 비록 지각으로 시작했지만 이 날은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 11학년들의 둘도 없는 졸업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교장선생님께서 어제 점심에 '내일 넥타이를 매고 오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래서 오천만 년 만에 넥타이도 매고 구두도 신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내가 귀빈, VIP라는 뜻인 건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졸업식장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가끔 박수소리에 깨서 남들 따라 물개 박수나 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졸업식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단상으로 부르셨다. 그래서 단상 위 교장선생님 옆 부장 선생님 옆 NO.3 쯤 되는 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그 양 옆으로는 국회의원Consejo와 11학년 각 반 담임선생님들이 앉으셨다. 뭐야. 이게 뭐지. 아니 꿈인 가 싶었다. 토요일 아침 8시. 급하게 오느라 고양이 세수하고 눈곱만 겨우 땐 그지 모양새로 1000여 명 앞에서 NO. 3 자리에 앉다니. 꿈이길 바랬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아니 내가 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죠?


  식의 시작은 온갖 공식적인 노래들로 시작했다. 여기 와서 수백 번은 들은듯한 콜롬비아 국가부터, 산탄데르주 노래, 부카라망가 시 노래. 마지막으로 교가까지. 매번 느끼지만 이 순간이 참 애매하다. 다들 경건히 한쪽 가슴에 손을 얹고 격정의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무엇이 예의일까? 국가를 따라 부르는 척해야 하는 걸까? 나도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할까? 나 혼자 외국인이니 혼자 왕따 당하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가슴에 손은 안 얹지만 나름 경건한 자세, 멀리서 보면 꼭 누구한테 혼나는 듯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따라 부르는 척을 한다. 나름대로 엄청나게 예의를 갖추려 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절하게 뻐끔거린다.




  식은 아주 길었고 또 아주 악랄했다. 모든 상은 대표만 수상 받는 게 아니라 대상 학생 전부가 다 무대에 올라와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생 270여 명 대부분 상을 받았다. 그리고 몇몇 모범생들을 두세 번씩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시스템과 한 학생은 얼마나 모범생인지, 상이랑 상을 다 휩쓸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너무 무거운 가채로 목뼈가 골절된 여자가 있다고 하던데 저 학생은 메달이 너무 많아서 목이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풍성했다. 


  그리고 식 중간중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지 혹은 식 도중 잠자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초청 가수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들도 한두 곡으로 끝나지 않는지라 식의 지루함에 한 숟갈 보태고 있었다. 나는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어지간하면 못 알아듣기 때문에 나의 최선인 (어쩌면 교장선생님이 바라던) 살아있는 등신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내가 나누어 주던 졸업장. 한 40개는 나누어준 것 같다.


  그러다가 식의 후반 순서로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졸업장을 수여해 주는 시간이 왔다. 전체 졸업생이 270여 명이니 이 졸업장을 언제 다 수여하나 싶었다. 이 순서도 멍 때리면서 나중에 이 어처구니없는 순간을 어떻게 글로 적어볼까 하는 조금은 작가적인 마음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네? 뭐라고요?'. 내가 이 단상에 올라와 있는 이유는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남들 상장받는 걸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바로 졸업장을 수여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이 무려 나!라는 것이다. 사실 11학년 친구들의 태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 그나마 안면을 튼 기계과 학생들도 지나가며 인사만 주고받은 사이였다.


  사실상 이 친구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가 과연 이 친구들의 역사적 순간인 졸업장 수여를 해도 되는 걸까? 졸업장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철저하게 쫄딱 망했다는 걸 바로 직감했다. 다른 11학년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는 친근하게 인사하고 악수하며 졸업장을 받아가는데 내 앞에 온 친구들은 어색한 미소로 반가운 척해준다. 하... 이런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다니.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식 중간 내가 나누어 주기로 한 졸업장이 수여자랑 이름이 다르다. 나도 당황, 받는 학생도 당황. 이 사실을 교장선생님께 알려주니 교장선생님도 당황. 일단은 남의 졸업장을 수여해 주었다. 왜 이런 순간이 왜 하필 나한테만 일어나는 걸까. 그 아이의 눈초리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가득하다.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그저 꼭두각시처럼 옆에서 주는 걸 받아다가 나누어줄 뿐인데 분명 저건 "저 한국인이 스페인어를 못해서 실수한 거다."라는 느낌의 복잡 미묘한 눈초리였다. 10여 초도 안 되는 수여식 순간에 이 억울함을 토로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스페인어로 배운 적도 없었다.




  아무튼 그 이후 '살아있는 등신대'에서 '졸업장 수여 봇'으로 전직했다. 이 새로운 역할을 익히기 위해서 옆 선생님들을 어깨너머로 열심히 따라 했다. 이 수여식에서 그나마의 수확이 있다면 단어를 하나 알게 된 것이다.


  'Felicitaciones! 축하합니다!' 졸업장 수여하는 내내 들숨 날숨을 할 때마다 Felicitaciones라고 말한 것 같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줬지만 뜬금없이 내가 수여해서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런 아시안 로봇한테 역사적인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정말 꼭두각시였고 오로지 교장선생님의 독단이었다고 이 알아먹지 못할 한국말로 이런 곳에서라도 전해 본다.




우리집 앞에 온 가족이 모여서 촛불 키는 중.


  그렇게 입에 펠리시따시오네스만 반복하던 그 날의 아침은 본의 아니게 특별했지만 밤은 더 특별한 밤이었다. 이 날은 Dia de las velitas.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작은 촛불들의 날이다. 콜롬비아에만 있는 가톨릭 기념일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선포한 날이자, 그 사건을 기리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종교적 의미는 여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듯하다.


  이 날은 그냥 어두컴컴해진 밤, 가족끼리 집 앞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촛불을 켜고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소원을 비는 날인 것이다. 아마도 촛불의 수만큼 소원을 빌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욕심 많은 집은 멀리서 보면 꼭 대형 화재라도 난 듯 촛불 수십 개를 태운다. 이렇게 다들 집 밖에 앉아서 촛불을 켜고 있으니 동네 분위기가 참 따뜻해졌다.


이정도면 불장난 아닌가?




  원래는 집 밖을 얼씬도 못할 늦은 밤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삼삼오오 나와서 밝힌 길거리는 참 이쁘고 따뜻하고 안전했다. 그래서 집 주변을 밤 산책하듯 걸었다. 그러다 한 가족에 잡혔다. 나를 졸업식 때 봤단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해보라고 촛불 하나를 건네주신다. 민폐인 것 알지만 이런 걸 언제 또 해보겠는가. 분홍색 작은 양초를 받아서 나도 이 길거리에 불 하나 보탰다.


  옆에 아기는 내가 신기한 듯 유심히 쳐다본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어떻게 콜롬비아까지 왔느냐고 묻는다. 학생들은 Hola가 한국어로 뭐냐고 묻는다. 이것저것 설명하다 보니 신기하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넉살 좋게 엠빠나다 하나와 망고 주스도 하나 얻어먹었다.




아기 예수님의 생일만큼 야단 법석인 생일도 없을꺼야,


  촛불로 불그스름한 길거리가 참 이쁘다. 형형색색의 촛불이지만 불빛은 다 따스한 주황색으로 똑같다. 비싼 양초든 싸구려 양초든 다 똑같다. 부자 동네의 촛불이든 가난한 동네의 촛불이든 다 똑같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모여 시끌벅적한 가족들의 촛불도, 커플들이 켠 촛불 1개도,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홀로 외로이 집 앞에서 켜는 촛불도 다 똑같다. 마음속으로 비는 소원도 다 비슷할 거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가족들 건강하게 해 주세요.'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이 따스한 촛불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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