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열두 달 중 12월을 제일 좋아한다. 먼저, 이기적이기만 한 인류에게 무엇이 참 사랑인지 보여주신 예수님의 생일이 있어서 좋다. 1년 내내 요정들을 착취해서 선물을 만들고, 12월 24일 밤 불쌍한 루돌프를 잡아다가 수만 톤의 선물을 들고 모든 집의 굴뚝을 순회하다는 무시무시한 산타할아버지 이야기도 좋다.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며 보는 지상파 연애대상도 좋다. 지금은 못 보지만 이따금 하늘에서 떨어지던 하얀 쓰레기도 참 좋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올해의 끝, 연말 분위기를 좋아한다. 역설적이게도 아쉬움이라는 슬픈 감정이 너무 좋다. 연말의 아쉬움은 올해가 좋았던 만큼 더 크고 깊고 아프다. '벌써 올해의 끝자락이야. 너무 아쉽다.'라는 생각이 올해도 드는 게 '꼭 그만큼이나 올 한 해 나는 잘 살았구나.' 싶다.
그래서 연말에 여러 저러 핑계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다. 올해 내가 이만큼 살아온 건 '당신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좋다. 이런 아쉬움과 후회와 감사가 가득한 12월이 좋다. 1년 내내 이런 12월 같았다면 세상에는 전쟁도 시기도 미움도 없었을 거다. 이러니 12월을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1년 내내 12월만 같아라.
눈이 아니니까 '솜사람'이라 불러야 할까?
사실 이렇게 12월이 좋은 이유를 나열했지만 사실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내 생일이 12월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일은 12월 중 밤이 가장 긴 날의 어제이다. 가끔은 내 생일이 밤이 가장 긴 날 이기도 하다. 덕분에 생일 케이크랑 팥죽을 같이 먹곤 한다.
난 생일을 정말 좋아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내색하지 않는다. 생일 선물이나 생일 파티를 좋아해서 생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내 생일을 꽁꽁 숨긴다. 요즘은 건방지게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녀석들이 일주일 전부터 내 생일을 야단법석 소문을 내서 도저히 숨길 수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냥 나는 그게 좋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나의 생일을 계기로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나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 참 고맙다. 아무리 성대한 파티나 비싼 선물보다도 나는 그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만으로도 정말 정말 고맙다.
가끔, 보면 참 유럽 같다니까 여긴.
내 생일이 12월 말에 있는 덕분에 내 생일은 언제나 어영부영 지나간다. 어렸을 적 생일 파티에 대한 어린이적인 로망이 있었을 때는 생일이 12월인 게 참 슬펐다.
그 당시에는 방학이 되면 친구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집에서 가족끼리 오손도손 케이크 불을 켜곤 했다. 참 소중한 기억이지만 그때는 그게 참 싫고 미웠다. 생일 파티도 없었던 탓에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
우리 가족의 생일 문화가 독특한 것도 한몫했다. 어머니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생일날 나에게 말씀하셨다. 생일 때 네가 한 거라곤 엉덩이를 맞아 엉엉 운 것뿐, 내가 배 아파가며 힘줘서 낳았으니 내가 상을 받아야 옳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생일 때 변신 로봇 세트 같은걸 받고 싶었지만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단 한번 황금로봇 골드런을 울고불고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 전부였다. 대개는 케이크가 유일한 나의 생일 선물. 사실 그것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걸 고르곤 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우리 집안 사정을 생각했을 땐 변신 로봇은커녕 케이크도 얼마나 부담이었을지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된다. 그 뒤로도 이 집안 전통은 계속되어서 생일날 집에 있었다면 내가 저녁을 해드리곤 했다. 지금은 집 떠나 있어 요리를 못 해 드리는 게 아쉽다.
작년 생일은 참 기억에 남는다. 내 인생 마지막 대학 기말고사를 보는 날이 내 생일이었다. 그 덕분에 생일이지만 저녁 6시 시험까지 도서관에 갇혀있었어야 했다. 나보다 시험이 늦게 끝나는 사람은 학교에 사실상 없었다. 시험 끝난 사람들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아무도 없는 학교 도서관에서 묵묵히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코이카 최종 합격 발표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매 5분마다 코이카 홈페이지에서 합격자 발표를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그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은 덕분에 이곳 콜롬비아로 오게 되었다. 그 날,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후배들과 모여 앉아서 치킨 먹었던 기억이 난다. 코이카 합격에 들뜬 마음과 대학 생활 마지막이라는 아쉬운 마음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뒤섞여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라서 한쪽에선 크리스마스 만화영화를 틀어주고 한쪽은 번쩍번쩍.
올해 생일은 머리털이 난 이후 가장 조용한 생일이었다. 심지어 생일 파티도 생일 전날 했다. 생일이라고 연락 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정말 나는 오늘이 내 생일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생일이지만 평소랑 같았다. 집 밖은 장 보러만 나갔다. 연말 보고서 쓰고 예능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나름 특별한 날이니 아끼고 아끼던 인스턴트 떡볶이를 뜯었다.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일은 우울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대감이 없어서였을까? 조용한 생일도 좋았다. 만 나이를 하나 더 먹었다는 게 쪼금 슬펐을 뿐.
예수님의 생일도 비슷하게 보냈다. 평소와 같은 일상에 '예수님 생일이구나'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MSG처럼 잠깐 첨가한 정도? 하지만 여기 콜롬비아에서 크리스마스는 아주 중요한 명절이다.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로 생각하면 된다.
온 가족이 모여서 송편 빚듯 부뉴엘로buñuelo라는 치즈볼 빵을 빚는다. 그리고 성대한 만찬을 즐기고 캐럴이라기엔 지나치게 시끄러운 노래를 틀고 밤새 춤추며 노는 날이다. 그래서 내 주변 콜롬비아 친구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내게 묻는다. '가족들 보러 안 가?'냐고.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그냥 하루 쉬는 날일 뿐이라고 하니 신기해한다.
왼쪽은 Natilla 오른쪽은 buñuelo. 여기 크리스마스 전통음식들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여기 말로는 Buena noche, 말 그대로 좋은 밤이다. 밤하늘 여기저기서 폭죽이 펑펑 터진다. 나는 그저 거실 의자에 앉아서 창밖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폭죽 펑펑 터지는 소리에 이어서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소리, 놀란 개들이 멍멍 짖는 소리가 줄지어 따라온다. 북적북적해야 할 시간에 혼자 고요히 집에 있으니 뭔가 마음이 새롭다. 외롭다던가, 슬프다던가, '어차피 의미 없어'라는 회의감도 아니라. 그냥 오롯이 혼자 보내는 이 시간에 대한 만족감이랄까?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이런 고요함이 좋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