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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May 06. 2020

격리 당한 14일에 대하여.

20년 04월 04일




  오늘로써 격리 13일째.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에 온 지 13일 째이며, 사람을 못 본 지도 13일째. 나가서 걷지 못한지도 13일째 그리고 식은 도시락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은 지도 벌써 39끼 째이다. 어저께는 침대에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영화 '28일 후'처럼 세상이 망해있는 건 아닐까? 내가 격리되어있는 동안 코로나로 세상은 멸망했고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이제 독자 생존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13일째 감금되어 영화만 보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그나마 사람의 흔적을 느끼는 순간은 도시락을 받으러 문 열 때뿐이다. 코이카에서 매 시간마다 문 앞에 도시락을 놓아주시는데 도시락이 사라져 있는 걸 볼 때마다 '그래도 다들 살아 계셔서 끼니는 거르지 않고 계시는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기분이다.


나가고... 싶어...


  그게 싫어서 시끄럽게 노래를 틀어 놓고 심지어는 코이카 빈지노, 영종도 빈지노가 된 것 마냥 시끄럽게 랩을 따라 부르곤 하는데 그게 다른 방에는 들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다들 죄송합니다ㅠㅠ) 이렇게라도 나의 생존이 다른 선생님들의 귀에도 들어간다면 좋겠다.




  여기 온 지 약 300시간째. 이 시간 동안 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생각보다 격리 체질(?)이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3평 남짓한 방에서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빈지노가 되거나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가끔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체계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더 격렬하게 시간을 허비할 걸.


  그리고 생각보다 답답하지도 않다. 방을 한 바퀴 크게 도는데 20걸음도 채 안되지만, 하루 대부분 티비를 켜놓고 방을 빙글빙글 도는데 시간을 보낸다. 외계인이 유리창으로 나를 관찰한다면 지구인은 햄스터처럼 멍청해서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면서도 잘만 노는구나 싶을 테다. 지구인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일지는 몰라도 사실 운동장 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세뇌하며 걷고 있다. 더욱이 운동장에는 티비도 없지 않은가? 더 이득이다.


한 끼에 하나씩 나오는 물.




  두 번째는 난 생각보다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부지런하다기보다는 정확하게는, 이럴 때만 쓸데없이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출근할 때, 하루에서 가장 큰 시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였는데 빌어먹을 내 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지금에서야 아침 일찍 잘도 일어난다.


  그리고 티비를 24번 YTN에 맞추어 놓고 하룻밤 새 또 얼마나 확진자가 얼마나 더 늘어났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코로나 뉴스를 듣는다. 그러면서 유튜브 빡빡이 아저씨의 아침 스트레칭 운동을 한다. 내 기준 최고의 운동은 '짧은 시간에 높은 효과를 내는 운동'이 아니다. 나한테 최고의 운동은 뭐니 뭐니 해도 '몸은 최소한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내 몸을 위해서 운동해 줬구나'라는 뿌듯함이 드는 그런 운동. 그런 기준으로 빡빡이 아저씨의 아침 스트레칭은 하나도 안 힘들면서 뿌듯하게 해주는 최고의 운동이다.


  그리고 격리 중이지만 부지런히 씻고, 아침도 먹고, 10시쯤이면 커피도 한 잔 한다. 자애로운 코이카님께서 하사해주신 현대인의 필수품 카누. 냉동실에 얼음을 꺼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먹는다. 여기까지 나의 아침 루틴. 나는 일평생 아침에는 출근이니 등교니 하며 쫓기면서만 살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살고 있으니 나에 대해서 새로운 부분을 알아가고 있다. 나란 놈은 참 쓸데없을 때 철저한 사람이구나.


밥은 잘 먹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대개는 특별한 일이라곤 없다. 딱 한번 빼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카누는 맛있고 공기는 건조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역대 최대로 확진자가 늘어난 그런 평범한 날. 아침 맛있는 공기를 먹으려 창문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 재앙의 전조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나는 액션 영화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씬도 아닌데 4D 같은 '부르르르릉' 소리가 들렸다. 정체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호박벌이었다.


  그 녀석이 바선생이었다면 기꺼이 최대 1000만 원가량의 벌금을 내고서라도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호텔 복도를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래도 바선생은 아니니까. 침착하게 들숨날숨을 천천히 내쉬며 호박벌을 검색해 보았다. 성격은 온순하지만 화나면 말벌 정도로 위험하다는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곧바로 울먹이며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했다.


  옷은 긴팔, 긴바지, 양말까지 신고, 한 손에는 호텔 프런트를 통해 받은 현대화학의 집대성, 모기약을 다른 한 손으로는 벌이 나한테 날아왔을 때 후려칠 요량으로 수건을 길게 잡고 벌과 전쟁을 벌였다. 호박벌이 얼마나 큰지 한두 번 화학 약품을 뒤집어쓰는 걸로는 효과가 없었다.


  그 녀석은 모기약 반통을 써서야 죽었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여기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게 아닐 텐데. 원래 인간이란 이렇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간사한 동물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주적을 향해 살기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죽이고 나니 후회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종이에 고이 싸서 밖으로 던져주었다. 호박벌은 바람을 타고 빙글 돌며 떨어졌다.




거짓말처럼 4월 1일이 코이카 창립일이었다. 덕분에 먹은 맛있는 간식들.


  처음 14일간 격리를 통보받았을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14일간 격리라고 부르지만 얼마든지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도 그 누구의 터치 없는 삶을 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이렇게 지내는 걸 사람들은 이 시대의 책임 있는 참 어른의 삶이라고 봐주기까지 했다. 인정받으며 놀고먹는 삶. 생각해보니 내가 평생 원하던 삶이 이런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가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걱정이 다시 찾아왔다.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그냥 콜롬비아로 돌아가는 날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일지감치 국제개발 쪽 대학원을 생각해 둬야 할까? 아니면 아예 안정적인 딴 길들을 준비해 둬야 하는 걸까. 내가 코이카를 선택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2년 유예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선택이 하루아침에 쿵 떨어지다니.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와중에 이런 나를 저격이라도 하는 듯한 글을 보았다. '2030 인생 꼬이는 과정'이라는 글이었는데 이 글에서 2030 때에 인생이 꼬이는 사람들은 '한방을 노리고', '현실감은 없고', '욜로와 힐링이라는 핑계만 부리고', '노력을 폄하하고', '꾸준히 노력한 또래들과의 차이로 괴로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활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했다.


  괜히 읽으면서 마음이 찔렸다. 하나하나 주옥같이 내 이야기 같았다. 꼭 '너는 지금 인생이 꼬이고 있어. 넌 이제 조졌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니야 나는 나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할 수 없었다.




Freedom~~~!!!


  대책 없이 나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다 보니 벌써 30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과연 현실적이냐고 물어본다면 확답하기가 어렵다.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께 국제협력 쪽으로 계속 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니까. YTN 뉴스를 보는데 치매 건강보험 광고가 나온다. 뉴스에선 양로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의 소식이 나온다. 이렇게 살다가는 빽이라곤 하나 없는 우리 가족은 금방 절벽에 몰려질게 분명하다.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지만. 이렇게도 주위 사방에서 나를 말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아직도 이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는 건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코이카를 지원한 이유가 그저 코이카 지원 공고를 보니 가슴이 뛰어서 신청했다는 이야기. 나도 그 길의 연장선에 지금 서있다. 이 빌어먹을 국제 개발 협력. 우리 부모님께는 불효자식이 될 테지만 2030 인생 꼬이는 사람의 예시가 되더라도 그래도 멍청하게도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나의 좌우명 중 하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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