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야, 나 외롭다

나는 그냥, 이제 이 외로움을 인정하기로 했다.

by 비차

Y야, 오랜만에 너에게 글을 써.


나 외롭다. 외롭다는 말 하면 안쓰럽고 모자란 것 같잖아.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외롭다는걸, 사랑이 받고 싶다는걸.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을 꼽자면 너, 그리고 나였다. 우리는 인생에 외로움을 줄줄이 달고 살았지. 네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나는 네 옆에서는 덜 외로운 사람이 되었나 봐. 네게도 내가 그랬을까.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해주시더라. 그런 사진은 올리지 말라고, 그런 글은 쓰지 말라고. 내가 너무 날것의 것들을 전시해버리는 것을 걱정하시더라.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나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인데. 그래서 내가 지금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작업과 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니. 나는 나로서 별 미련이 남지 않게 생을 보내고 있는데 말이야.


Y야, 이제야 말할게.
내 인생의 초반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으로 굴러다녔어.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스무 살의 초엽.


이제 나는 나이를 좀 먹었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고 있어. 사랑을 받고 싶다가도 사랑의 위험성도 안단다. 사람을 보는 눈도 생기고 일도 생활도 안정을 찾았지. 보자고 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보러 와줄 것 같은 사람이 몇 명은 생각나. 외로워도 애정을 찾아다니진 않고,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추고 싶진 않아. 주변에 가까웠던 친구들이 다 연애한다니까 좀 헛헛하긴 하더라.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이보다 더 불안정했었잖니.


그 욕망이 너무 강해서 슬펐어. 사랑이 받고 싶어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종종 사랑을 받더라도 내가 사랑을 받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익숙해지면 잃어버릴까 봐 너무 무서워서, 나는 구차해졌고 한계까지 버텼고 나를 챙기지 않았고 사랑받지 못할 법한 면들-이를테면 우울하거나 더럽거나 집착하거나 못생기거나 멍청하거나 약하거나 슬프거나 이기적일 수 있는-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측면들을 외면했어. 심지어는 사랑을 받고 싶지 않은 척까지 했다. 사랑이 받고 싶다는 게 너무 구차하고 불쌍한 것 같아서 사랑이 아니라 다른 단어를 자꾸만 썼어. 성적, 칭찬, 성공, 돈, 인정따위로 바꾸어 말했지.


너도 알겠지만, 사람을 초대해서 대접하길 좋아하시던 우리 엄마는 자주 내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하곤 하셨단다.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아. 출산을 위해 엄마가 입원하자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진 오빠가 너무나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간절히 기다리던 엄마를 만났는데, 그 품 안에 까무잡잡하고 쭈글쭈글 못생긴 애가 안긴 걸 보고 내 엄마라며 당장 떨어지라며 나를 떼어내려고 울고 불어서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는 얘기였어. 그 못생긴 낯선 애가 나였고, 나는 성질이 나빠 젖을 금방 떼었지만, 오빠는 얌전해서 세 살까지 젖을 먹었고, "얘 오빠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뽀얗고 순하고 예뻤는데 넌 여자앤데도 까무잡잡하고 예민하고 성격이 나빠 어떻게 되려나 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글자도 읽을 줄 알기 전부터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기묘한 죄책감이 들었어.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갓 태어난 나는 만족스럽게 마음에 드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았거든. 딱 뽑고 싶은 게 있었는데 다른 게 나와버린 뽑기처럼 좀 후회되는 선택, 있잖아.


그래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종종 했다. 아니, 꽤 자주 했던 것 같아. 이런 말을 하면 Y야, 너는 늘 그런 말 말라며 나보다 더 화를 냈지만.


요즘에 내가 삶에 별달리 미련이 없다고 말해도 화를 낼까?


가끔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은 걸 해본 것만 같아.


나는 내가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어. 내가 증명만 할 수 있다면 떳떳하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아니면 미련 없이 당당하게 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가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태어나버린 나의 쓸모, 그걸 만들기 위해 나의 모든 좋은 점들을 싹싹 긁어모으고 키워서 나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의미가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어. 사실 그렇게 증명이 되는 게 아닌데도 말이야.


그래서 왜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어. 무리하면서.


여덟 살에는 일주일간 쓰는 용돈 천 원을 군것질도 안 하고 꼬깃꼬깃 모아서 집에 장미꽃을 사가는 아이였고, 열 살에는 전교 일 등을 했다고 성적표를 가져갔지. 그건 오빠가 성적이 안 좋아서 기분이 나쁘니 조용히 하라고 해서 바로 꺼내 보이지도 못했지만. 열심히 눈치를 봐서 열세 살에는 병원에서 신경성 위염을 판정받았고, 열일곱에는 장학금을 받고, 열여덟에는 자주 쓰러지면서도 대회를 나가 수없이 상장을 받고, 스물에는 생활비와 용돈을 받지 않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자금을 대출받아 스스로 갚고, 보증금을 모아 독립을 하고, 연재하고, 전시하고, 강의하고, 뭐라도 더 나은 나를 증명하고 싶어서 아득바득 굴었어.


너랑 나는 정말 열심히 산다고, 우리끼리 서로 인정해 주었잖아. 처음 만난 중학생 때부터 애들 다 하는 쉽고 편한 것을 놔두고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간다고. 어딜 가서든 충분히 잘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인정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내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내면, 더 많은 돈을 모으면, 더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걸 모르고 스스로를 챙기지 않으며 무리하는 게 당연해졌었다.


그렇게 하면 지치기 마련인데 말이야. 내가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나를 챙겨야 더 나은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되단다. 그걸 몰랐지. 정말 솔직하게는 아직도 노력하지만 잘 못하는 부분이야. 지치고 또 힘들어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사랑이 받고 싶었고, 사랑받아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너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네가 그 말을 자주 해주었는데도.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자주 찾았나 봐.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말이야.


외로움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시도도 왜 안 해봤겠니.
스무 살의 첫 연애를 시작으로 몇 번의 연애를 거쳤어.


Y야, 너도 곁에서 지켜봤다시피 나는 한 번 사랑하면 너무 많이 사랑했다. 이 지독한 놈의 사랑,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말이야. 사랑받고자 하는 내 욕구를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사회가 허용하고 권장하기까지 하는 이 연애란 것은 마약보다 더한 부분이 있어서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잖아. 그때마다 나는 부분적으로 행복했고 바닥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정말 힘든 일이었어. 연애가 파국으로 끝나면 나는 결국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일까, 내가 제대로 되먹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잖아. 네가 인정할 정도로 나는 마음의 폭이 좁고 담벼락이 높아 누구를 들이고 내보내는 게 어렵기도 했으니 더 극복이 어려웠지.


최근에는 내가 외로워서 연애한 걸까 하는 생각도 좀 했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사는 게 힘들었던 내가,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믿을 곳 하나 없고 숨 돌릴 틈이 없던 내가, 몇 년간 매일 혼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잠이 드는 게 더는 싫었던 내가, 그래서 연애를 했나 하는 생각도 했어. 그리고 연애로 외로움이 채워졌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이제 이 외로움을 인정하기로 했단다.


나는 외로움을 탄다. 그것도 꽤 많이 탄다. 너무 외로워서 다가오는 사람이 가까워지는 게 무서워 도망칠 만큼 외로워. 그래서 뭐라도 더 할 것과 채워 넣을 것을 열심히 찾아서 하고 있다. 배운 게 그것뿐이라 하면 깊게 빠지고 열심히 하는 게 오히려 쉽더라. 외롭다는 게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잖아. 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내 일에 나만큼 화를 내주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이불을 덮어 다독다독 재워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지 않니. 우리는 서로 범죄를 저질러서 은신처가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곤 했지만, 그런 네가 있어서 나는 외로움이 훨씬 덜했어. 오늘은, 그간 내 외로움의 바닥에 네가 있어서 내가 바닥까지 가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외롭지 않은 척을 했지만, 그것 역시 외로움의 바닥까지 가지 않았서 그럴 수 있었다는걸 알아.


그래서,


나는 이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외로움이라는 건 해결해야 하는 문제나 고쳐야 하는 병이 아니고 그냥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걸 받아들이기로 했어. 너무 외로워서 무분별한 행동을 하는 건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생각해보니 외로워서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빈 곳을 채우려고. 마땅한 사람이 되려고.


Y야,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어.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내 유년기를 지배하고 질질 끌고 갔지. 부모님의, 선생님의, 친구들의 욕망을 욕망했다.


하지만 내가 외로움에 끝끝내 휘둘려 모든 걸 놓아버리고 망가지지 않았던 건 그 외로움의 바닥에 네가 있어서였단다. 네가 곁에서 온전히 내 편이 되어 내 바닥이 되어준 기억이 있어서 나는 아직도 외로움의 바닥까지 가지는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또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글자를 낱낱이 놓는다. 조금만 더 내가 빠르게 어른이었다면, 너와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더 길게 나누었을 텐데 하면서. 네 곁에선 덜 외로웠다고,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할 걸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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