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람에게 애를 쓰고 싶지 않다.
좋았던 사람들은 계속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보자고 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보지 않고, 불편한 사람은 멀리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좋지만 잘 맞지 않는다면 노력 없이 흘려보낸다.
어렸을 적에는 만화 주인공들을 보면서 시련과 역경은 결국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고, 상처와 고통을 겪은 후에는 더 끈끈하고 튼튼해지는 줄 알았다. 불 속에서 제련되는 칼이라거나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 비유 같은 것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척박한 바위 위에는 소나무로 태어나지 않은 것들은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상처와 고통은 가지치기처럼 내 가지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지치기를 할 때에도 중앙의 심지까지 잘라버리면 안 되는 법이고, 한 번 약해진 중심은 약해진 같은 부위가 자꾸 덧나기 마련이니까, 다친 중심이 나을 때까지는 나무도 사람도 튼튼한 지지대와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온 사람이 더 잘 대처하는 법이다. 스트레스의 상황이 지나갈 것을 확신하니까.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온 사람은 스트레스에 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 억압, 부정, 퇴행, 동일시, 합리화, 반동형성, 주지화, 투사, 승화 등 다양한 방어기제가 동원되고, 그게 각자에게 지지대의 역할을 할 것이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이 지지대를 가지고 소나무처럼 바위 위에서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살지 못하고 바위를 떠나야 할 수도 있을 거다.
맞지 않는다면 바위를 떠나서 살아야지.
내가 물을 좋아하는 수선화일 수도 있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이끼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 다들 바위 위에서 살려고 한다지만, 그게 나에게 맞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