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내내 자다가 깨어나면 새벽이 내 머리카락을 쥐고 밤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바닥에 침을 뱉는 술병들, 자기 몸을 태우는 담배들, 고함과 눈물과 피로로 쨍그랑 깨지는 것을 보곤 했다. 나는 두려움에 멱살 잡혀 그 자리에서 내팽개쳐지거나 혹은 얼어붙곤 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두려움은 내 목에 긴 끈을 둘러 집으로 잘 데려다놓는다. 그러면 뒤늦게 배가 고파졌다.
생활이 붙잡은 바짓자락을 질질 끌며 걸었다. 우울은 내 티셔츠 끝자락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따라 붙었다. 때로는 마스크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자꾸 흘러나오는 기억을 숨겨야했다. 축축했으니까. 너무 많은 것들이 엉겨붙어 무거워진 몸, 나는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고 세상은 선 너머에만 있는 것 같았지. 발이 무거워 걸음은 점점 더뎌진다. 발자국이 무뎌진다. 아스팔트 위에는 무엇도 흔적을 남기지 못하니까. 우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고 벽 저편의 사람들은 반대편을 보지 못한다. 벽 이편의 사람들은 저편을 상상하기만 한다.
빛과 그림자의 편으로 세상을 나눈다면 나는 당연히 그림자의 편이다. 내가 발 끝으로 그려놓은 경계선.
그림은 일종의 직감이 된 지 오래 되었다. 그림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는 말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지만 의미 없는 말을 의미를 두고 늘어놓았다. 의미는 가지지 않기로 손가락을 걸어 놓고 알아주길 바라는 기분으로. 기분에 취해 기분탓을 하며 술을 들이켰다. 당신도 걸어다니는 술병이 되겠지. 나는 조용한 술병이 되고 싶었는데 가끔은 실패하고 그냥 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짖고 울고 사람을 찾았고 집으로 숨어들어가거나 거리를 달렸다.
어느 날은 추운 날에는 따뜻한 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은 당신이 내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두 문장은 다르지만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뜻이다. 영감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고백한다면 당신은 했던 말을 주워담고 싶어질까. 그래도 사과나무를 심자던가, 해일이 올 때도 조개를 줍자던가, 그런 말을 하고도 후회하지 않는 지 십년 후에 다시 묻고 싶어졌다. 의미 없는 짓을 또 하고 싶어졌다.
글은 일종의 진언 또는 진술이 된다. 기도가 된다. 사라진다. 사라져도 남는 것이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전하려는 시도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의미를 찾는 사람, 의미를 조개 껍질처럼 주워다가 방 안에 전시해놓는 너는, 의미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지만, 의미 없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방 안에서 벌레가 되기도 했다. 기어다니거나 침을 뱉거나 허물을 벗어놓거나 시들어가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거나 했다.
나는 매일 허물을 벗는 사람. 아무도 없는 밤이 되면 안전한 곳에서 하루의 낡은 허물을 벗고 맨 몸으로 가장 나약한 시간에 혼자 단단해지고 있는 사람. 젖은 날개가 마르는 날이 올까, 매일 꺾이고 부러지는 날개를 밤마다 허물 벗으며 새로 말리고 있는 기분으로. 오늘은 이 날개가 제대로 마르지 않아 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불안을 늘 가진채로. 너도 지금 어딘가에서 혼자 숨어 허물을 벗고 있을까. 네 등에 달린 날개는 쉽게 부스러지는 재질이니까. 우리는 같은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