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는 다정에 면역을 기르고 싶어요.

2018.11.03.

by 비차

제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 현명하신 언니께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요즘 새벽마다 저를 찾아오는 고민입니다. 현관문 앞에 누군가 늘 쓸쓸함을 한 움큼씩 뿌려두곤 해요. 아침마다 그걸 가져다 버리는 게 제 첫 일과입니다.


사람은 어째서 혼자 사는게 이토록 어려울까요. 외로움은 대체 언제 배운 걸까요. 인간은 왜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는지요. 어째서 영역 동물이 아닌지, 사회적인 동물인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배부른 고민을 한다고요 ... ...


언니, 요즘의 저는 약을 먹고 자요. 약을 털어넣으면 잠을 잘 수 있지만 악몽을 꾸는 것도 아닌데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곤 합니다. 몸이 나른하고 생각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머릿속에 온통 잠에 대한 생각만 듭니다. 졸립다. 자고 싶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 약을 잘 먹지 못하겠습니다. 약 없이는 꼬박 두 시간을 자면 더 잘 수가 없습니다. 잠이 영영 저를 떠나고는 가끔 살아있는지만 살피는 것 같아요. 꼭 그 만큼. 허덕이며 살아있을 만큼만. 죽지 못하게 하려고.


제가 어떻게 사는지, 살아 왔는지 모르시잖아요 ... ...


언니, 다정함이란 언제나 달콤해서 쉽게 저를 무너뜨리곤 합니다. 늘 아둔하게도 손에 평생 쥐고 있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정에 약한 까닭은 다정에 빈곤했기 때문이고, 늘 상대적인 박탈감에 허덕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 손에 다정을 쥐어주면 늘 그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곤 했습니다. 곁에 당연한 존재로 네 편으로만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속절없이 믿었습니다. 그 착각이 몹시 포근해 좀처럼 부정할 수가 없었지요. 부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달콤한 것은 언제고 이를 썩게 만든다는 것을, 어떤 달콤함은 이만을 썩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걸 늘 뒤늦게서야 혼자 상처를 소독하며 되새기곤 했습니다.


언니, 저는 다정에 면역을 기르고 싶습니다. 이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다정에 휘말려 헤매는 일은 그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싶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싶습니다. 기대지 않고 싶습니다. 저는 저로 살고 싶고 혼자서 오롯하게 선 사람이고 싶습니다. 가슴 한 편의 빈 부분을 없는 듯 원래 빈 곳으로 여기고 싶습니다. 특별하리라는 착각이나 소중하리라는 가정도 하지 않고 상식적이며 보편적인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제 마음 아프거나 실망하고 싶지 않아요.


언니, 저는.
저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을 감고 큰 보폭으로 다섯 걸음을 걸으면 세계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