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돈을 싫어했었다.

by 비차


고백하자면, 나는 돈을 싫어했었다.

당연히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게 싫단 말은 아니고.

돈에 절절매거나 휘둘리고 싶지가 않았다.


올해 초에 사건들이 이어지며 급하게 목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필요한 것이 몇백 만 원 단위였으니 갑자기 마련하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마음이 급했다. 이전까지 "내 작업 스타일"을 고수하며 의미와 범위와 경력과 금액을 걸러내며 까다롭게 제안을 받던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외주를 위해 빠르게 일정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그림체를 만들고, 저렴한 값의 제안에도 일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합의를 물어보고 일을 주면 아주 감사하게 했다. 포트폴리오를 여기저기 올려보고, 개인 작업도 더 많이 공개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공개하지 않았던 단순 외주 작업물들도 오픈했다.


그러면서 그냥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이전까지 돈을 싫어했었다는걸.


나도 열심히 일해오긴 했지만, 나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싫었다. 돈미새나 자낳괴라고 농담을 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작품을 보여주면 감상 전에 얼마냐는 말부터 나오는 게 싫었다. 만나면 연봉부터 물어보고 돈 얘기만 하는 사람이 싫었다. 친구를 만나면 비용을 딱 나누기보다 그냥 이번엔 내가 사고 다음엔 네가 사라고 하는 게 편했다. 사람에게 값을 매겨 그 값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이 기분 나빴고, 단순한 일을 하면서도 이건 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경험을 쌓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장 돈이 되는 일만 하고 돈이면 뭐든 하고 돈 버는 데 모든 힘을 다 쏟는 사람들을 보면 모든 시야가 돈뿐인 것 같아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돈, 돈, 거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품에 돈이 따라오기를 바랬다. 돈은 성공의 지표니까. 제대로 된 작가라면 자신의 작업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하고, 그게 프로니까. 지금 보면 아주 까탈스럽고 고고하기 짝이 없이 용케 살았다. 사람들이 작품을 볼 때는 가치를 먼저 보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비싸게 값이 나가기를 바랬다. 사람이 사는 것에는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벌려고 애를 쓰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오기를 바랬다. 실은 나는 돈과 상관없는 것처럼 작업만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정작 올해 초가 되어 오로지 돈만을 목표로 삼고

돈이 평소보다 더 벌리기 시작하며 나는 꽤... ...


좋아졌다... ...(?)


그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나는 돈을 위해 일하면 내가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내 가치 판단의 기준이 오로지 돈이 될까 봐, 내가 황금 제일주의가 된다던가 이해타산적으로 변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돈을 위해 일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였고, 돈을 목표로 해도 돈 때문에 내가 추구하던 가치를 포기할 일은 드물었다. 사실 내가 정말 포기해야 했던 것은 표면적으로 내밀었던 가치나 자아가 아니었다. 단지 나의 가장 값비싸고 좋은 시기를 기준 삼아 노동의 가치를 얕잡았던 나의 섣부른 우쭐함과 자존심이었다.


번 돈이 쌓여 목표 금액을 돌파하니 불안함이 가시고, 스스로를 케어하며 멘탈도 조금씩 나아졌다. 일정 이상의 금액이 벌리면서 내 작업물에 대한 확신도 조금 커지고, 자본금이 있으니 삶과 재료의 선택지도 많아졌다. 사람들이 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목을 매는지, 대한민국이 왜 자본주의 사회인지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떤 기회와 행복은 돈으로부터 오고,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좋고 나쁘고가 없는 그저 현실이다.


아버지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빠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 품에 안겨주는 것이 아빠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아내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 돈을 버는 거라고. 돈이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이웃이 힘들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아빠는 돈을 많이 벌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거라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시큰둥했었다. 아빠는 맨날 돈 얘기만 해, 라는 생각이 있었다. 돈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가치 있는 경험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페이를 받지 않는 캘리툰 연재를 이어가고, 어릴 적 열심히 번 돈을 여행에 다 가져다 썼다 (...) 물론 그걸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돈이 싫지 않다.

돈에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조금 피상적이었던 작가로 살아남는 것, 그리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는 것에 구체적인 방법이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쌓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나는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는 종종 공동체의 가치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더 깊고 의미 있고 한 차원 높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절대 그게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본 된 것이고, 내가 내 창작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창작물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그것에 지갑을 열게 하고 만족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해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잘 몰랐을 거다. 그렇게 돈이 있어야 새로운 재료를 사고,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부담 없이 다시 도전하며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텀블벅을 열거나 굿즈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샘플을 제작하고 디자인을 협업하고 제대로 페이 촬영을 의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직업이라는 것은 그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고, 그 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인데 왜 작가라는 직업만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체면을 차리고 있었을까.


나중에는 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나는, 돈 잘 버는 작가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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