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세 번 저녁을 먹으면 고백해야 하는 거 아니야?

by 비차


얼마 전 알게 된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그가 내게 무척 개방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성기나 섹스라는 단어를 잘 쓴단다. 그때 어떤 대화를 하고 있었냐면, 민소매나 네크라인이 파인 옷을 입었을 때 유독 나이 든 남성들이 근거리까지 다가와 버텨서고는 가슴을 빤히 바라보는 일이 잦은데 그 사람들은 여성을 걸어 다니는 가슴이나 성기로 보는 것 같단 내용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관계에 꽤 방어적인 사람이고, 연애관도 보수적이라 여겨서 개방적이라는 말이 몹시 의외였다.


그럼 대체 뭐라고 말을 대신해야 하느냐니까 돌려 말할 수 있단다. 어떻게요? 라고 말하니 성관계 대신 '그거'라고 한다던가... 그러면서 잘 모르겠다고 어물어물 주제가 넘어갔다.


난 그게 정말 싫었다.


남녀가 세 번 저녁을 먹으면 고백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집에서 라면 먹자는 말은 섹스하자는 거 아니야? 요새는 넷플릭스 보고 가라는 말이 섹스하잔 말이라며? 카톡 답장 잘하면 상대도 널 좋아하는 거 아니야? 식사하자는 말을 거절하지 않고 만나면 관심 있는 거 아니야?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도 관계가 깨어지지 않으면 어장 아니야? 은근슬쩍 손잡으니 가만있던데 스킨십 허락 아니야? 같이 술 마시는 건 밤에 같이 있고 싶단 얘기 아니야?


아니 왜 제대로 말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짐작하지?

입을 가지고 있는데 왜 말을 안 해...?...


너무 답답하고 자주 데이니 이제는 알던 사람이 대화 중에 "오늘 밤에 집에 안 보내고 싶네요ㅎ" 하는 식의 작업 멘트를 하면 그냥 물어본다. 혹시 저랑 섹스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저랑 연애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아니면 정말 단순히 오늘 밤에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신다는 뜻? 그러면 대부분 "아뇨, 바쁘실 텐데 집에 들어가셔야죠…."라고 말이 바뀐다.


새우튀김 남기는 걸 내가 좀 먹겠다고 말했다가 어장 관리를 했단 말을 듣던 스무 살 이후로 나는 그놈의 돌려 말하기가 정말 싫었다.


아니, 새우튀김 남긴 것이 좀 아까워 먹어도 되냐 물어보았을 뿐인데, 자기 그릇에 있는 것을 집어갈 정도면 자기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고. 그럼 대놓고 이성으로 좋아하느냐 물어봤어야지! 애인이 있는 사람이 적나라하게 자기 어필을 하길래 나는 그냥 물었다. 저 좋아하시는 거 아니죠? 제가 도끼 병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호감을 보이시는 것 같은데 저는 애인 있는 사람과 만날 생각이 없어요.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런데도 나중에 서로 좋아했던 거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니더라. 연락처를 물어본다며 용기가 안 난다며 몇백 미터를 질척질척 따라오는 사람에게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냥 물어봐! 그러면 나도 바로 거절할 수 있잖아! 그리고 깔끔하게 좀 떨어져!


물론,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 때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는 너와 섹스하려면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물었던 남자는 매우 불쾌했다. SNS로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지 하도 많이 오는 스폰서 제안 같은 것은 아주 같잖고. 초면에 섹스나 관계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10이면 10 변태더라.


하지만 아는 사이에서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게 친구인지, 썸인지, 호감인지, 상대와 연애가 하고 싶은지, 단순히 한 번 섹스하고 싶은 건지, 나는 입을 열어서 말 좀 했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썸이지? 이 카톡 봐봐, 날 좋아하는 거지? 주변 사람에게 오늘 여자친구 만난다고 하고 빠져나왔어, 이딴 식으로 은근히 돌려서 주변에 물어보지 말고, 떠보지 말고, 상대에게 대놓고 직접 물어보라고 제발... 그래야 상대도 명확하게 알고 답변을 하지...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말을 못 한다? 그 정도면 괜히 돌려 말하고 상대 탓을 하지 말고 애초에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세요...


여자도 취향과 성욕이 있고, 야한 걸 좋아하고 섹스를 좋아한다. 근데 나를 대상으로 삼은 야한 말에 하나하나 분해되어 주목당하거나 섹스를 맡겨놓은 양 구는 사람들이 나는 그 사람과 섹스 생각도 없는데 "오 섹시하시네요ㅎ", " 개방적이셔서 맘에 드네요ㅎ"하는게 싫은 거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섹스나 성욕이나 성기 얘기를 안 한다. 짜증나니까. 아주 매력적이고 나를 꼴리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야한 얘기를 나누거나 섹시하다는 말 들는거 좋지.


그러니까 섹스나 가슴이나 성관계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자동반사적으로 "어ㅎ 단어가 야하네요ㅎ" 이런거 제발 하지 말고 ... ^^...


최근에는 FWB나 ONS라는 단어를 배웠다.


요즘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보았던 줄임말이었다. 가끔 SNS로 생각 없냐는 식의 메시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무슨 뜻이냐니까 Friend with benefits, One night stand의 약자라고 한다. 호기심 천국인 내가 그게 옛날에 쓰던 섹스 파트너나 원나잇이랑 다른 것이 뭐냐고 물으니 ONS는 똑같은데 단어만 요즘 스타일로 변한 거고, FWB는 섹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연애에 가깝지만, 관계에 책임은 없으면서 데이트를 한단다. 그게 썸타는 것이랑 다른 게 뭐냐고 물으니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면 폴리아모리 같은 비독점적 다자연예인 것이냐고 물으니 아리송해 하면서 아닌 것 같단다. 관계의 보편적인 모양이라는게 점점 다양해지고 변해가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게 fwb나 ons에 관심이 있냐고 묻길래, 아니 나는 독점적 성향이 강하고 애정이 형성되어야 호감이든 성욕이든 욕구도 생기는 편이라 비독점적이거나 일회성 만남에 관심은 없지만 사회 현상으로서 흥미롭다고 답해주었다. 그 질문을 받은 것이 그다지 불쾌하지도 않았다.


fwb든, ons든, 연애든, 결혼이든, 섹파든, 원나잇이든, 동성애든, BDSM성향자든, 폴리아모리든,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에 타인이 뭐라 판단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적 지향이나 관계 유형이 일반적이지 않고 본인의 관계 형성에서 그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면, 당연히 자기 성적 지향을 잘 알고 상대에게 이러한 지향이나 유형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은 오히려 꽤 건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회성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병원과 좀 더 친해야겠지만.


내가 싫은건 오히려 돌려 말하기다. 대충 뉘앙스를 풍긴 뒤 허락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상대을 짜맞추는 그놈의 암묵적 룰이 싫다.


그렇게 돌려 말할거면 답변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을 말았으면 좋겠다. 새우튀김 먹었다고 썸탄거 아니었냐고 하거나, 고백도 안 해놓고 나중에서야 내 마음 알고 있지 않았냐고 하지 말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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