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코로나로만 죽지 않는다. 요즘 드는 생각이다.
2.5단계가 해지되었다는 말에 점심에 커피를 사러 밖에 다녀왔다. 그새 비어있는 점포가 더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참 이 동네는 수익에 비해 임대료가 높다느니 하는 말이 돌았던 참이었다. 작가가 운영하던 작은 공방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원데이 클래스와 수공예 제품이 유행하며 그룹 강의로 어느 정도 고정 소득이 생기자 작게나마 공방 겸 수업 공간을 늘렸던 것이, 이제는 수업 진행만으로 눈총을 받고 사람들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작년부터 진행하자고 말해오던 큰 전시와 프로젝트가 죄다 취소되었다. 작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주변엔 작업은 마쳤으나 대금이 밀리는 사람들도 몹시 많았으니, 차라리 프로젝트가 시작도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니던 직장의 비정규직부터 잘렸다. 사는 데 필요한 돈은 고정되어 있는데, 점포들은 영업시간이 줄어들자 일손부터 줄였다. 사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인건비 외에 더 줄일 수 있는 것도 없다. 학원이나 운동, 공유 공간 사업은 거의 문을 열지 못했다. 한때 저비용 창업의 선두주자로 각광받던 코인 노래방은 줄줄이 도산했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 아르바이트로 먹고살던 이들은 새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도 없다. 갓 성인이 된 이들은 모아둔 것도 없어 이미 버틸 만큼 버텼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가까운 사람 중에도 망했다던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하더라.
특히, 20-30대 청년층에게.
사람은 코로나로만 죽지 않는다.
초기에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신종플루, 메르스, 이런 질병들이 한 철 나라를 휩쓸고 또 까마득히 잊혀갔듯이 코로나도 그럴 거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홈 카페에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감자를 사고 동물의 숲을 하고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아직 웃을 여유가 있었다. 절망에 잠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질병이 생각보다 더 오랜 기간, 어쩌면 앞으로의 평생까지도 우리 주변에 남아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서히 모두에게 드는 거다.
이제 가을 겨울이 되어 날씨가 쌀쌀해지고 외부 활동이 위축되면 활동은 실내로 한정될 것이고 대면 접촉이 쉬워질 텐데, 방역은 더 어려워질 거다. 이렇게 강제적인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집단은 취약 계층이다. 저금이 적고, 소유 자산이 없고, 그래서 한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휘청거리는, 이 사람들.
더 강력한 조치로 다 같이 조금만 참고 코로나를 잡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밥을 굶는 이에게, 대출을 받아 빚이 쌓여가는 이에게 다 같이 참으니 너도 좀 더 참으면 된다며 방역 강화를 하자는 말을 하면 그게 들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 분노와 참담함은 어떤 방향으로라도 튀어나올 것이고, 그게 사회에게 좋은 방향이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배수의 진을 치게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거다.
가장 좋은 것은 포스트 코로나에 맞는 새로운 소비 모델이 정착되고, 각자가 방역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주변의 약자들이 다 같이 죽지 않게 우리는 서로를 소비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요즘 나는 이런 고민을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