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슬픈 것이 아닐 것이다.
반 남은 커피를 버리고, 유모차를 끌고 차를 향해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살짝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허우적 허우적 장모님이 개와 함께 쫓아온다. 혼이 뽑혀버린 찰리는 휘청휘청 걷는 듯 뛰는 듯, 흔들거리며 차로 온다. 유모차를 트렁크에 싣는다. 아기는 여전히 울고 고막을 뚫고 뇌까지 전달되는 진동음에 뇌가 마비된다. 다행이 나의 팔 다리는 문어처럼 자체 뇌가 있는 듯, 알아서 움직인다. 오토파일럿 모드를 가동합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기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언제고 다시 고막을 찢어버리게 위해 숨을 고르는 용처럼, 쒸익 쒸익 숨을 고른다. 운전대를 잡은채, 나는 계속해서 아기의 울음 원인을 판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여섯. 배고프다?
그럴리는 없다. 이걸 마지막 짐작으로 미뤄둔 이유는, 아직 밥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참 남았다. 그래서 분유를 안 타왔다. 아닌가..? 시간이 안되었는데 먹여도 되는걸까? 안 그래도 병원에서 과체중인 것 처럼 말하였는데. 또 먹이다가 자이언트 베이비가 되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퇴각하는 독일군의 무감정한 표정을 짓고 비장하게 주차를 한다. 역시. 예상대로, 주차와 함께 다시 내 고막을 찢기 시작하는 작은 아기의 사자후.
목 아프겠지?
신기하군 어떻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아기의 목청은 성인과 다른가? 저 울음 소리 흉내도 못 내겠는데.
몸 전체가 매미처럼 울리는 느낌인가?
이따위 생각으로 현실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차에서 내린다. 나와 달리 패닉한 인간 여자 찰리는 서둘러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 분유 가루를 여기 저기 쏟아가며 분유를 탄다. 나는 손을 씻고 패닉 중인 인간 여자로부터 분유병을 받아 제발 분유야 녹아라 녹아라 제발 빨리 녹아라 주문을 외우며 손에 든 젖병을 빙글빙글 돌리는 한 편 공기방울 입자가 너무 크게 분유에 섞이지 않게 세지 않은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젖병 밑에 가라앉은 입자 크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패닉한 인간 여자가 아기 분유 손수건을 준비하자 아기를 건넸다. 드디어 분유병이 아기 입에 꽂혔다.
봉인.
굉음이 봉인 되었다. 쪽쪽쪽. 적막 속에 울리는 만족스러운 소리.
쪽쪽쪽...
쪽쪽...
마왕이 쓰러졌을 때 용사들의 기분은 이러한 것일까? 쪽쪽 소리를 들으며 혼자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물처럼 흘러내리듯 인간 여자가 퍼진다. 그 모습에 망상을 떨쳐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생각을 했다.
6번째가 정답이라니. 배가 고팠던 것이라고? 어째서? 아직 시간이 안되었는데?
아. 나란 놈은 건방진 나 놈. 밥 시간이 어째고 저째? 날씨가 어쩌고 저째? 빨래가 어쨌다고?
반성과 복기로 생각을 마무리 한 후, 대답 없는 찰리에게 계속 말을 건넸다.
- 오늘도 10그램 더 무거워졌네.
- 이 꼬맹이 망둥어 자식, 잘 때 표정은 천사같군.
- 하하 배가 많이 고팠나보네.
- 자이언트 베이비 되는 것 아니야?
- 찰리도 놀랐지?
찰리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퀭한 표정으로 아기를 쳐다볼뿐 나의 말에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잠시 뒤 조용히 말하였다. 아기가 울면 마음이 아프다고. 아랫 입술까지 떨며 목젖이 보이게 꺼이꺼이 우는 아기를 보면 너무 미안하다고.
그 말을 듣는 나는 찰리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찰리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기 울음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나는 이상한 걸까? 문득 대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몇 명인가 나에게 한 번씩 털어 놓은 적 있다. 가끔, 자신이 혹시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고민해본다고. 당시에 나도 그들의 토로를 들으며, 그래, 나도 가끔 너가 그런것 같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라고 대꾸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그 의문이 든다. 아기를 키우며,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도 혹시 싸이코패스인걸까? 나에게 아기 울음 소리는 그냥 알람 소리 같다. 그래서 고통 와중에도 타임 어택 퀘스트 같은 것을 상상한다.
- 문제를 해결해서 알람을 꺼주시오!
-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갑니다.
- 다음 페이즈에서 귀고막에 대한 피해 데미지는 2배 더 늘어납니다.
- 그 뒤에 광폭화 모드가 시작되면 30분 동안 온 몸과 귀를 터뜨리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 광폭화 모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세요.
- 광폭화 모드가 끝나면 다시 리셋되지만, 퀘스트를 해결할 때까지 퀘스트는 다시 반복됩니다.
저 쪼그만 놈의 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저 작은 몸은, 아직 “슬픔”을 알 리가 없다. 단지 알람 소리 일뿐일 것이다. 주요 퀘스트 내용은 아래의 것들일거라 상상을 한다.
- 지금 영양분 떨어졌어요.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아프게 되어요! 밥 비상 알람이 작동합니다.
- 아직 영양분이 보충되지 않았어요. 2시간 남았어요! 밥 비상 단계를 2단계로 격상합니다.
- 코드 레드입니다. 1시간 남았어요! 빨리 밥 안주면 키 성장 가능성 1cm를 손실합니다.
- 지금 잠을 못자고 있어요. 빨리 재워주세요.
- 시간이 이만큼 지났는데 아직도 못 자고 있어요. 빨리 재워주세요. 수면 비상단계 2단계로 격상합니다.
- 제발 재워주세요! 수면 비상단계 3단계입니다!
- 물이 온도 계속 되면 15분 내로 아프게 되어요. 빨리 36-38도 사이로 물 온도를 맞춰주세요!
… 등.
나는 상상한다. 그리고 대응한다. 슬픔은 없다. 고통에 따른 짜증은 있다. 빨리 문제를 풀어 아기를 더 멋지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나의 청각을 보호하고 싶을 뿐. 저 멋진 장모님도 귀가 먹으신 후 저렇게 얼빵해지시는걸 보니, 내가 귀를 먹으면 정말 야단나겠구나 따위의 잡생각을 하며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
아기가 울 때의 절박한 표정을 보면 분명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아기는 슬픈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말을 찰리에게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