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알약이 늘었다. 매일 아침, 챙기던 고지혈증 약에 파킨슨 약이 더해졌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전혀 간단하지 않은 투약의 시간.
"많다, 많아." 약을 드시며 엄마는 장난스레 이야기하셨다. 마음이 쓰렸다. 한 알 한 알 꿀꺽 삼키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도파민이 넘쳐나는 시대에, 도파민 가뭄이라니… 약이 부디 엄마에게 도파민을 퐁퐁 더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약은 하루에 두 번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엄마는 "아이고, 약 먹자." 하며 약을 담아둔 안방 서랍을 여셨다. 엄마가 약을 가지고 오는 동안 조용히 물을 따라 두었다. 그렇게 약 먹는 시간이 우리 집에 스며들었다.
"엄마, 약은?" 아무렇지 않게 엄마에게 질문하면, 엄마는 "응, 먹었어" 하고 답하셨다. 처음엔 신경 쓰였다. 그런데 점점 익숙해졌다. 약 먹는 것도, 묻는 것도.
아침은 분주한 시간, 엄마는 약을 먹고 동생과 나는 출근을 했다. 엄마는 집에 계셨다. 물론, 약속이 있거나, 교회 일로 외출을 하시는 일도 있었다. 진단을 받기 전 시작한 맨발 걷기도 계속 이어졌다.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시거나 침대에 누워 계셨다. TV를 볼 때도 있고, 폰을 붙잡고 계실 때도 있었다.
"엄마, 오늘은 어땠어?"
"괜찮았어."
"저녁은?"
"먹었지."
평범한 대화 그리고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계신 시간이 길어졌다. 예전에는 집안일로 바삐 움직이셨는데, 요즘은 그냥 앉아 계시곤 했다.
"엄마, 피곤해?"
"응, 힘이 없네."
그렇게 답하시고는 이내 TV로 시선을 옮기셨다.
동생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저녁 식사 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때면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
“잘 자.”
그냥, 그렇게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인사를 나눴다. 눈으로 나눈 대화를 말로 꺼내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괜찮다, 괜찮다 여기며 지나온 것들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는 각자의 방문을 닫았다.
타지에서 일하느라 휴무일에만 집에 오는 아빠도, 육아로 바쁜 언니도 가족 단톡방을 활성화시켰다.
"날씨가 좋네"
“다들 식사했나요?”
“컨디션은 좀 어때?”
일상의 안부, 주어 없이 던지는 질문이지만 모두 엄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침마다 올라오는 엄마의 맨발 걷기 인증샷은 모두의 마음을 안도하게 했다.
"다행이다. 초기니까 이렇게 꾸준히 관리하면 괜찮으실 거야.".
"응, 괜찮으실 거야."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빠가 집에 오시는 날, 엄마는 조금 더 밝아지셨다. 저녁 준비를 하시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더 즐겁게 웃으셨다. 다만, 마음이 놓여 그런지 주무시는 시간도 늘었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병을 약 삼아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는 편도 나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평일 저녁, 아빠가 안 계실 때의 엄마는 달랐다. 소파에 앉아 계신 엄마. 침대에 누워 계신 엄마. TV 소리만 거실을 채웠다. 일하느라 늦게 잠드는 밤이면, 엄마의 격한 잠꼬대 소리에 놀라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약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소파에 앉아 계신 엄마가 일상이 되었다.
엄마에겐 미묘한 변화가 있었고, 미세하지만 분명한 균열이 생겼다. 함께 살기에 오히려 보지 못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매일 마주하는 얼굴과 평범하게 나누는 인사, 그리고 엄마의 고통, 어느새 그 고통도 일상으로 스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