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떠났다

HIV 홈스테이 엄마와 함께 산 2년

by 차차약사

“루도~”

“루도~~ 마무카 세이~ 마퐘바 좌카나카 에레~”


* 루도(Rudo). 짐바브웨에서 사용했던 짐바브웨 이름, Love라는 뜻

* "어떻게 지내?"라는 뜻의 짐바브웨 일상 인사어들


벌써 7년 전의 이야기.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살았던 2년을 떠올리면 길을 지날 때 내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건네주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해외봉사라는 막연한 꿈”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8살 때였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 꼭 한번 나가고 싶었다. 그걸 이룰 방법이 내게는 유학과 해외봉사 2가지였다. 대학생 때는 코이카(KOICA) 해외봉사 포스터가 교내에 붙으면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도시공학과였던 내 전공으로는 갈 수 있는 분야가 없었다. 한글이나 태권도처럼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기회만을 엿볼 뿐 마땅한 시도를 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그런데 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2년 다닐 동안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은 ‘퇴사’라는 단어뿐이었다. 동료들도 좋았고 계속 이 일을 한다면 내가 원하는 유학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세상을 내 발로 품어보고 싶은 뜨거움이 가슴속에서 자꾸 활활 피어나 도저히 꺼지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가 원하는 걸 해보자. 난 아직 어리잖아’




“28살 운명처럼 만난 아프리카 해외봉사 프로그램”


그렇게 25살에 퇴사를 했다. 여행을 많이 했다. 그리고 28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만든 ‘브릿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프리카에서 2년간 해외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의 자격조건이 아직도 기억난다.


성별 무관, 나이 무관, 전공 무관
영어 못해도 됨
현지인 마을에서 잘 살 수 있는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


28살의 나이. 대학도 졸업하고 회사도 다녀봤지만 사실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던 시절이다. 재취업을 하기에는 이제는 나이조차 조금씩 걸림돌이 되어가던 그때.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잘 살 수 있는 마음’ 하나면 된다니. 이것은 정말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릿지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6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잠비아, 르완다, 레소토, 말라위)에 활동가 3명씩 2년간 파견되는 프로그램이었다. 2박 3일의 합숙면접을 치러가며 최종합격자가 되었다. 50일간 국내 합숙 훈련까지 받고 난 후에 2010년 10월 나는 짐바브웨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평균사망연령 39세의 나라”


짐바브웨는 어떤 나라일까. 아니, 사실 아프리카가 어떤 대륙인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해외봉사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 미지의 세계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가 그랬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던 안갯속의 대륙 말이다.


아프리카에 파견되기 전 50일간 국내 합숙훈련을 하면서 이미 아프리카에 다녀오신 분들의 강의를 들었다. 그분들이 보여주시는 아프리카는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 우리가 필수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걸릴지도 모르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접종들이었다. 해외봉사라는 오랜 꿈, 미지의 세계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용기가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알아가고 준비해갈수록 두려움에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파견국가 6개 나라 중에서 나는 짐바브웨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짐바브웨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짐바브웨의 평균 연령이 39세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느낌이랄까.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질병에 고통받아 일찍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가 상상이 되었다. 열악한 식수환경과 도처에 만연된 에이즈와 같은 전염병들... 그곳에서 과연 나는 어떤 활동을 할 것이며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의 삶”


짐바브웨 공항에 도착하여 협력 NGO 직원 이누스(Enos)를 따라 협력 NGO 사무실로 향했다. 광대한 자연, 푸름, 까만 피부들... 공항에서 사무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지켜본 짐바브웨의 첫 모습들이다. 사무실이 있는 아본데일(Avondale)은 짐바브웨 부촌 중 한 곳이다. 비자가 나오기 전 2개월은 그곳에서 살았는데 나의 진짜 삶은 현지인 마을에 정착하며 살았던 22개월의 기간이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외국인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 아닌 현지인 마을에 사는 활동가는 정말 흔치 않다. 내가 참여했던 브릿지 프로그램은 여타 해외봉사 프로그램과는 매우 달랐다. 현지인 마을에 살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민들과 함께 찾기를 바랐기 때문에 마을에 융화되어 함께 사는 것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활동이었다.


아프리카 현지 마을에 홈스테이하며 2년간 살아본 경험.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경험 중 하나이며 가장 선명히 남는 경험 중 하나임에 너무 감사하다. 그 경험 때문에 내 인생이 정말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내 용기의 큰 근원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한 가족에게서 우주를 배우다”


현지인 마을에서 내가 살았던 집주인 엄마의 이름은 사비나(Sabina)이다. 사비나는 타파라(Tafara) 마을의 성인문해교실 선생님이다. 그녀와의 추억은 2년 간 짐바브웨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가난하지만 겸손하고 나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조차 품위를 잃지 않았던 그녀. 그녀 덕분에 그 무엇으로도 배울 수 없는 짐바브웨 삶을 하루하루 배워갈 수 있었다.


우물물을 기는 방법을 알려줬고, 머리에 이고 옮기는 방법을 알려줬다. 식빵을 살 1달러를 빌려달라며 내 방 앞에 찾아왔을 때... 그 작은 돈조차 없는지 몰랐던 나의 무지를 알려줬고, 하루는 샴푸를 빌려달라는 사비나의 부탁에 샴푸를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없어서 쓰지 못한다는 걸 알게 해 줬다. 첫째 아들 칼빈(Calvin)은 닭 잡는 법을 알려줬고 전기가 자주 나가서 항상 망가지는 전자제품 고치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 무엇보다 사비나의 가족이 내게 알려준 것은 가진 것은 없어도 매일 감사하게 사는 법을 알려줬다.


차마 한 장의 글에 짐바브웨의 모든 소회를 담을 수 없으리라. 모든 순간이 배움이었다는 것.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내 안에 남아있던 작은 조각의 우월의식도 털어내게 해 줬던 곳.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나의 성장과 그것을 눈물로 맞았던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 삶이 좋았다. 그래서 2년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계속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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