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에 퇴사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by 차차약사

나는 26살에 회사를 관뒀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고등학교보다 넓어진 학교 교정만큼이나 자유로움, 해방감이 커졌다. 다양해진 인간관계만큼이나 다양한 우주를 만나는 기쁨에 대학생활은 내 세계의 무한한 확장의 동의어였다. 하물며 회사생활은 어떠할 것인가. 도시공학과였던 나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도시공학도로서의 여물지 않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는 내가 상상했던 곳이 아니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힘은 신입사원 나부랭이에 불과했던 내게 없었다. 나는 단지 현상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자의 몫을 해내야 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것을 그때는 몰랐다. 회사에 가면 우선은 회사가 주는 일을 하며 일을 배우는 것이 마땅한 것인데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지했을까? 당장 내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니 말이다.


회사 일은 재밌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주 힘들었다.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서 그때를 떠올려보자니 좋은 느낌이 먼저 들기는 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지금의 남편인 그때의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매일같이 회사 욕을 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상사의 업무방식이 너무 부당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하는 일들이 나의 꿈과는 너무 멀다고 느꼈다. 전국의 승용차 교통량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미래에 그 지역에 얼마의 통행량이 발생할지를 예측하는 일을 했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데 승용차의 통행량을 분석하고 승용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일은 나의 꿈과 상충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참 어렸다 어렸어. 24살에 불과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생각이었으리라. 꿈의 크기에 비해하는 일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회사생활이 괴로웠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상사가 부당했던 것도 아니고, 회사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회사를 다니는 2년 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틈날 때마다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상상을 했다. 첫 번째는 유학이었다. 사실 이 회사에 취직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 유학을 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대학의 교정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그 자유로움의 크기가 해외에 나가면 무한대로 커질 것만 같았다.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은 욕구는 그 시절 내 가슴을 늘 뜨겁게 달궜었다.


회사에는 유학을 다녀오신 박사님들이 많다. 내가 유학을 다녀오면 나의 미래는 어떨까? 박사님들을 보면서 상상해보고는 했는데... 롤모델로서 닮고 싶은 모습은 없었다. 한 분 한 분은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다시 회사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쓰면서 재미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 어린 나이에 박사님들의 모습이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다. 하루는 인터넷을 보다가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는 ‘찰리’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라고? 한국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중국에서부터 5년간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30대 후반인 지금 그런 사람을 인터넷에서 본다면 참 대단하고 어리니깐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말 텐데, 그때 나는 그 사람의 멋진 계획에 가슴이 설레었다. 나는 세상에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유학을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꿈의 크기가 남달랐고 내 마음까지 설레게 만들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2년 동안 회사를 관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더니 결국에는 진짜 관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는 찰리를 알게 되니 내 꿈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다. 나도 당장 저렇게 떠나고 싶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고 싶었다. 분명히 좀 더 나이가 들면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더 많은 것을 이룬 후에 관둔다는 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회사를 관둔다면? 경력단절이 된다면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 돈을 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걱정했다. 2년이 아닌 1년 11개월을 다니고 회사를 관둔다고 한 선배가 이런 조언을 했다. 다시 이력서를 써야 할 때를 위해 1년 11개월보다는 2년을 채우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당장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나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2008년 10월 회사를 관뒀다. 11월과 12월에는 자전거 용품을 알아보면서 지냈다. 중학교 3학년인 친척동생의 기말고사 대비를 도와주기 위해 친척 집에서 지내면서 자전거 중고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어떤 걸 사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리고 2009년 1월 나는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에 전국일주를 먼저 해보기 위해서 기말고사 대비를 도와줬던 중학교 3학년 친척동생과 허리가 아파서 일을 쉬고 있던 친척동생과 함께 40일 간 전국일주를 떠났다. 떠남의 시작은 우리 집이 있던 파주였다. 전국일주를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우리나라의 가장 북쪽 지역이다. 파주에서부터 서해안을 따라 완도까지 내려온 후에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다. 제주도에서 일주일간 일주한 후에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올라와서 남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다시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속초까지 올라갔다.


5년간 자전거 세계일주를 한 찰리도 멋지지만, 친척동생 2명을 데리고 40일간 전국일주를 했던 나의 모습을 30대 후반이 된 지금 떠올려보니 이 또한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라고 한다면? 글쎄... 그 나이였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고 실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꿈이 작아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20대 중반... 그 나이에만 가능했을 법한 꿈을 꾸고 도전했던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


회사를 관두는 것은 쉬운 일일까? 어릴 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어서 좀 더 쉬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20대라고 회사를 쉽게 관두지는 못한다. 특히 지금처럼 취업난이라고 하는 시기에 몇 년을 준비해서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면 더욱 관둘 수가 없을 것이다.


26살 나는 어떻게 회사를 관둘 수 있었을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나는 계약직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험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계약직이어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그만둬도 아쉬움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정부기관 연구원으로서 관련 전공자들이 다니는 곳이었고 계약직을 자주 뽑기 때문에 1년 정도 자전거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는 나는 내 꿈이 우선이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왔는데 내가 맡은 일들은 그런 것과 계속 상충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꿈을 실현할 다른 길을 가야 했다. 세 번째는 나는 그 당시에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돈 쓰는데 관심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쓰지 않고 자전거로 무전여행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막상 관두려고 생각을 하면서도 2년 가까이 회사 일에 익숙해지고 나의 역량이 늘어나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일하는 게 재밌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자극하는 좋은 일들도 있었다. 박사님과 함께 우리가 만든 전국의 통행량 자료를 이용해서 논문을 쓰기도 했었다. 해외 논문을 찾아보고 해석하고 우리 연구에 적용해보면서 논문을 내는 것은 참 의미 있었던 내 인생의 일부다. 어느 회사가 논문을 쓸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주고 공부하는데 월급을 줄까. 내가 다닌 회사가 연구원이었기에 가능했다. 박사님 성함 옆에 내 이름이 적힌 논문이 학회지에 발표되었을 때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뿌듯해서 몇 년 전 미니멀리스트를 한다고 살림을 정리할 때도 정리하지 않았다. 연구원의 특성상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상당히 재밌었다. 논리 있게 정리해서 윗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나의 역량이 커져가는 느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이제 나도 뭔가... 꽤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오르고는 했었다.


그때 회사를 관두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음...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좋았고 내 역량을 올리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업무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이지만 매월 들어오는 월급으로 많은 문화생활도 하고 내 세계를 확장해가는 나름의 내 방식을 찾았을 것이다. 아니면 원래대로 유학을 갔다면 어땠을까. 미국이라는 세상에서 몇 년을 살아보며 나의 세계는 어떻게 확장해갔었을까... 이미 맛본 것 같은 향수처럼... 나는 그 상상에 젖어들 때면 참 행복하고는 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좋아했던 것은 일 자체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내 역량을 키우는 것, 그리고 넓은 세상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그때 나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말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관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평생 하며 살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유학까지 다녀온다면 공부한 게 아까워서 관두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26살 나는 회사를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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