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 않은 일을 평생 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26살에 퇴사한 이유

by 차차약사

철없이 들릴 테지만, 26살 회사를 관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겨우 2년, 아니 1년 11개월을 다니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퇴사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어린 치기처럼 들릴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그러하니까.


버텼어야 한다는 말보다...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는 시기가 필요하고, 그 시기를 지나야 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지만 26살 그 어린 나이가 아니고서야 언제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었던 중학생 시절부터 '해군사관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고등학생, 그렇게 대학생이 된 나는 세상 밖이 항상 너무너무 궁금했다. 대학생이 되니깐 내가 살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다양한 동아리, 학생회관 앞에 늘 즐비했던 다양한 학회지, 신문들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내 뇌를 깨웠다. 그러는 사이에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관련된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고 모임에 한두 번 나가기도 했다. 거기서 만난 ‘비혼 여성 생태주의’ 모임의 친구들이 20대 중반 내 삶에 많은 짱돌을 던져줬다.


처음 그녀들을 만났을 때의 떨림이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다른 유형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들은 급진적이었고 실천적이었다. 명문대를 자퇴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고는 NGO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안학교 선생님도 있었고 채식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녀들의 현재 사는 방식이 그녀들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했는가.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회사에 온갖 불만을 가지며 사는 내가 너무 미물같이 느껴졌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회의감이 가장 컸다.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게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한 명분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승진을 이유로, 그냥 내가 하는 일이라서 일을 하는 사람들만 보아 오면서 그런 회의감이 점점 커졌다. (20대 때의 생각이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20대의 나는 내가 배우고 논하는 지식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길 바랬다. NGO를 가면 나아질까 싶어 NGO의 취업소식을 기웃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탐독하며 적극적으로 찾아 읽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비혼 여성 생태주의'에서 만난 그녀들은 그랬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할까.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멋있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이제 막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햇병아리에 불과했지만 그녀들과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자주 만나 함께 책을 읽었고 도보여행을 했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정확한 나이도 이름도 모르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관계해갔다. 그녀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어두운 진실에 눈을 뜨게 되고, 이를 내 삶에서 해결해보고픈 욕구의 끝에서 귀농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다.


20대는 참 스펙터클 하다. 세상의 정답을 직접 쓰고픈 강렬한 열망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도 했지만 내가 속해있던 세상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말해보자면,,, 20대 그 시기는 원래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때였기에 가능했던 휘몰아치는 격정기를 보냈다.

그런 경험들이 사실은 내가 퇴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명문대를 자퇴한 친구를 보면서 내가 가진 한 줌의 권리조차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NGO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하며 회사에 불만만 키워가는 내가 너무 어린애 같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통해 알게 되었던 세상과 사람들을 보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용기 있게 실천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갔다.


회사를 관두고 친척동생 2명과 40일간 자전거 전국일주를 한 나는, 이번에는 그녀들과의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부터 너무나 기대가 됐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녀들과의 여행이라니... 한 친구는 이화여대를 자퇴했고, 한 친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NGO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나이가 같았다. 그녀들에 비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오고,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같았지만 생각의 크기로 따지자면 나는 너무 어린아이였다. 그런 나와 함께 여행해준다는 것 자체가 그때 나는 너무 설레었다.





우리는 귀농한 사람들과 대안학교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쌀과 먹을 것, 텐트를 챙겨서 서울에서 출발했다. 친척동생들과의 자전거 전국일주는 하루에 몇 킬로를 가고 거기에서 먹고 씻고 자고 다시 일어나 그다음 날 몇 킬로를 가는 매일의 반복으로 내가 출발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자전거 여행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허락될 때는 며칠씩 묵으면서 그분들의 삶을 배우기도 했다. 서울에서 온 어린아이들을 흔쾌히 먹여주고 재워주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분들과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못할 때가 많았다. 늘 귀동냥 신세였지만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웠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졌다.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을 때는 나의 미천함이 그대로 드러나버린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하늘을 보며 많이 울었다. 부끄러움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도 그들처럼 살아보겠다는 작은 의지들이 매일 쌓여가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도 그녀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열렬한 독서와 사고로 내 생각을 묵직하게 채워가고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


그런 물음이 여행 내내 따라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민들레 공동체를 방문했다. 초록의 벼들이 자라는 논 옆의 작고 긴 시멘트길을 달려 우리는 한 입구에 도착했다. 그 입구를 올라서자 갑자기 신기한 마을이 나타났다. 바깥에서 볼 때는 평범한 산이었는데 가리워진 나무 사이 계단을 올라서자 한눈에 들어온 것은 빨갛고 큰 풍력발전기였다. 현대식의 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거대한 태양열 발전기가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옆에는 짚으로 만든 아담한 스트로베일하우스가 있었다. 그 옆에는 공장 같은 작업장이 있었고 거기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숲 속 요정들의 공간 같은 귀여운 공방도 있었다. 현대와 미래, 그리고 대안적인 것들이 함께 어우러진 이상한 삶의 모습이 펼쳐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기독교 공동체로 같은 신념을 가진 몇 가족들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농사를 짓고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대안기술을 공부하고 오신 소장님이 운영하는 대안기술센터가 있었다. 그래서 태양열과 태양광, 풍력 발전기와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귀농한 분들도 방문해보고 대안학교도 방문해봤었지만 그곳은 내게 좀 더 특별했다. 나는 세상에서 어떤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여행에서 공학도로서의 나도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세상의 발전은 오히려 세상을 오염시키고 농사짓던 삶으로 돌아가야지만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배운 과학이 오히려 세상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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