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공동체에서 2박 3일을 보낸 후에도 우리는 다른 곳에서 여행을 이어갔다. 자전거를 타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전거를 맡겨놓고 인연의 흐름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방향대로 흘러가야 할 시점이 왔음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민들레공동체에서 발견했던 ‘공학도로서의 희망’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곳에서 2개월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었지만 민들레공동체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안기술센터에서 하는 일들이 궁금했다. 과학이 어떤 공동체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둘째, 공동체의 연대하는 삶이 궁금했다. 셋째, 대안학교, 공방, 대안기술센터, 농사까지... 다양한 일을 하는 민들레공동체에서 살아본다면 내가 그리고 싶었던 삶의 방향이 조금 선명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누구나 방문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2박 3일 동안 방문했을 당시에 우리를 좋게 봐주셔서 나를 받아주셨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일손을 도왔다. 스트로베일하우스에서 자다가 아침의 새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경상남도 산청 산속에서 새소리와 함께 눈을 뜨는 일은 참 멋진 일이었다. 일어나면 논에 가서 피 뽑기를 했다. 그리고는 돌아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후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했다. 대안학교 선생님으로, 공방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그리고 나는 대안기술센터로 갔다.
대안기술센터에서는 풍력발전, 태양열 발전 등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워크숍을 운영 중이었다. 대부분 대안학교에서 많이 방문하셔서 나는 워크숍 운영을 도우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와 직장생활까지... 정해진 삶을 살았던 나는 20대 중반 내가 너무나 궁금해했던 대안적인 삶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짤막하게 방문하며 느꼈던 것과 그곳에서 2달간 살면서 느낀 게 달랐다, 2개월을 살아보니 그곳은 내가 이상적으로만 그리던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삶을 몸소 살아내고 계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부터 너무 큰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굴러가는 곳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2개월 지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곳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왔던 삶과 방식, 그리고 내 과거의 인연들까지 부정했었다. 세상에 정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했고 부푼 기대감만큼이나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정해진 삶을 살아오고 거기서 일탈하는 것이 두려워 선택들을 미루고 살아왔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용기 있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매일이 보람차고 의미 있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그렸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슬플 일, 화날 일은 하나도 없고 웃을 일, 좋을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추구하는 가치와 방식은 다르지만 그 속에서 복작대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어쩌면 내가 늘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지나온 내 삶을 조금씩 긍정하기 시작한 것 말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옳은 삶, 옳지 않은 삶이 있다고 단정 지었던 미숙한 나에서 인간의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성숙해지는 나로 변화하는 시작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파랑새를 찾으러 전국을 다녔던 것이다. 귀농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귀농한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 이런 생각을 고등학교 친구에게 얘기하니 친구가 “너네 집도 시골이잖아~”라고 얘기했다. 맞네! 우리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계셨고 주변은 논밭이었다. 산속으로 들어가 구도자의 자세로 농사짓는 것만이 귀농이라고 단정 지어서 우리 부모님의 삶이 나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 보면 나는 우리 집에서부터 농사짓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우리 집의 파랑새를 보는 눈을 키우지 못하고 계속 바깥으로만 찾으러 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과거와 내 과거의 인연들과 화해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서 수없이 잣대를 세워 판단했던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때,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자세를 배웠다. 삶에 정답은 없다. 삶은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다. 부정하는 것은 미숙한 방법이다. 누구의 삶이나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니 나는 이제 정답을 찾으러 세상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 삶을 써 내려가면 되었다.
2010년 봄, 나는 한 장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브릿지 프로그램에 관한 포스터였다. 2년간 해외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내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첫 시작으로서 해외봉사를 선택했다. 많이 배워왔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로서 나의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2010년 10월, 28살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