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옳은 선택은 언제나 도전이었다
남편의 도전이 불러온 좋은 결과들
'저 자식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내보내야겠군.'
'차 대리가 먼저 이 팀을 떠난다고 했으니 차 대리를 지목하는 것이 가장 명분이 좋지.'
'차 대리 와이프는 약사 될 거니깐 먹고사는 데 걱정 없을 거야.'
남편을 희망퇴직 대상자로 지목했을 때의 팀장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떤 생각으로 남편을 지목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내가 몇 년 뒤에는 약사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가 맞은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덜 막막하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남편은 10년 간 일한 분야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에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다른 곳에 지원하는 것이었고, 첫 번째가 바로 티오가 생긴 다른 팀에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남편은 다른 회사에도 이력서를 넣어둔 상태였었다. 살던 곳과 거리가 먼 곳이었지만 일단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원해 둔 터였다. 그리고 면접까지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것이다.
변화를 주려는 시도 때문에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지만,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고 나니 그런 준비를 해놓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마음 같아서는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난 후에 희망퇴직 수용 여부를 결정했으면 좋았겠지만 회사는 그렇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정을 미루며 회사를 다니는 것도 남편에게는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남편은 희망퇴직하겠다는 답변을 하고 집에 온 것이다. 남편을 보면 모태 미니멀리스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단출하게 다니는 남편은 10년 다닌 회사를 정리할 때도 가방 하나와 상자 하나를 들고 퇴사했다. 남편은 이제 더 이상 회사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함께 육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아이를 보던 어느 금요일에 나는 남편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서 이메일을 보냈으니 확인하라는 메시지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그리고 남편이 이메일을 확인했다.
“여보, 합격했어!”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희망퇴직 대상자라는 통보 앞에서 무기력했던 지난 며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합격소식을 듣고 나니 그간의 모든 일이 오늘을 위한 존재했던 아름다운 스토리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남편의 자존심이 회복될 것 같아서 기뻤다. 이미 예전이 되어버린 '예전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희망퇴직을 하였지만, 더 좋은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최종 합격까지는 reference check가 남아 있었다. 회사를 처음 옮겨보니 reference check가 어느 정도의 중요도를 갖는지 전혀 몰랐다. Reference check는 남편과 함께 일하는 동료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의 평판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떠난 것이 약점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어떤 회사도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미 회사를 떠나신 예전 팀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A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차 대리가 아주 일을 잘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분들도 마찬가지 연락을 주셨다. 한 후임은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말하면서 우리 남편이 얼마나 실력이 좋은 사람인지를 설명해줬다고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남편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 속상하고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그동안 인간관계를 잘 맺었기에 이렇게 reference check를 수월하게 넘어가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회사 동료나 상사들과 안 좋은 끝맺음을 했다면 reference check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그리고 좋은 끝맺음을 맺는 것이 조직생활에 임하는 성숙한 자세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결국 남편은 최종 합격을 했다. 희망퇴직한 사람들과 갖는 송별회에 남편은 금의환향하듯 참석할 수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우리 가정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의 새로운 직장, 이사 등등… 회사를 옮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회사를 옮긴 덕분에 찾아온 우리 가정의 변화가 크고 좋다. 그래서 생각한다. 남편이 이력서를 쓰기 전 망설이면서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 회사에 다니면 임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다른 회사나 다른 팀에 지원해보는 것이 맞을까?'
결국 남편은 안정보다 변화를 선택했다. 만약에 다른 팀에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희망퇴직으로 떠난 사람들을 보며 안심하고 지금까지도 그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승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직 덕분에 사는 곳이 바뀌었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바뀌었고 그 변화가 불러온 파장이 매우 크다. 결과가 좋기 때문에 해석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정보다 변화에 도전했던 것은 우리 가정에서 볼 때는 꽤나 옳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