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맘이라서 좋다

돌아갈 학교가 있으니 힘든 육아도 힘이 난다

by 차차약사

여자는 출산을 계기로 인생이 180도 바뀐다. 하지만 닥치기 전에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육아도 닥치면 잘 되겠지~'라는 낙관적 성격도 한몫을 했다.


외동딸로 자라서 형제자매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그래서 결혼하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약사가 되려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이 확실한 친구가 있었다. 꿈을 위해 대학 편입까지 했던 친구였고 졸업 후에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첫째를 임신해서 배가 남산만 해졌을 때도 회사를 다녔고 첫째 낳기 직전까지도 회사일을 했던 친구였다. 첫째를 낳고서는 거의 바로 복직을 하여 시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아가며 정신없이 키웠다. 하지만 그런 친구도 둘째를 낳게 되자 결국 회사를 관두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재취업이 잘 되지 않던 때에 나는 그런 의문을 가졌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취직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약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약대에 합격할 점수를 받고 나서 나는 바로 임신 계획을 세웠다. 안 그래도 33살이라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졸업 후로 출산을 미루지 않고 학교 다니는 중에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첫째는 신입생 여름방학 때 낳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첫째 아이를 약대 입학한 해 7월에 낳았다. 바로 휴학을 했고 아이를 8개월 정도 키운 후에 복학을 했다. 그 기간 중에 남편이 희망퇴직하여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시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서 살고 있었는데 차로 1시간 거리는 지역으로 갑자기 이사하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신혼집도 시댁에서 가까운 곳에 얻었던 것이다.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면서 모든 것이 꼬이게 되었다. 시터를 써야 하나 어린이집에 일찍부터 보내야 하나 망설였다.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키워줄 테니 학교에 다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는 주말에만 보면서 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워킹맘과 비슷한 삶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맘은 워킹맘과는 다르다. 바로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3개월 반 정도 학기를 보내고 나면 다시 2개월 반 정도의 방학이 찾아온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 모두 육아의 방법을 찾는 것이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이러한 방식이 무한정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학기와 방학 사이를 오가는 생활을 몇 년 하면 내가 졸업한다는 희망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결정하는게 한결 수월했다.


시부모님이 도와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육아는 참 어려웠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요리도 살림도 모두 젬병이었는데 이제는 아이 케어와 더불와 요리와 살림까지 갑자기 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힘들었는데 아이와 관련된 일들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하루는 친정에서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이유식을 아이 입에 넣어주는데 이유식이 아직 뜨거워서 아이가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부엌에서 친정엄마가 달려오시며 "식혀서 줘야지 너는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냐?"라고 핀잔을 주셨다. 친정엄마는 악의가 없이 하시는 말씀이시겠지만 안 그래도 평일에는 시댁에서, 주말에는 친정에 오가며 육아 도움을 받고 있던 나는 친정엄마의 말씀이 사무치도록 서러웠고 엄마로서의 미안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들께도 죄송하고 죄책감으로 얼룩지던 초보 엄마 시절, 하루는 남편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


"나는...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생각해~"


나는 미안하고 죄송했는데 남편은 같은 상황을 두고 감사하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으로 아이를 돌봐주시니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내가 학교를 그만둘 것도 아닌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갖는 것보다 감사함을 가지면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미안함이 감사함으로 바뀌고 나니 학생맘으로서의 자리가 한결 편해졌다. 함께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중에 아이 엄마들이 많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친구들, 시터의 도움을 받는 친구들,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키우는 친구들 등 가지각색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미안해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을 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훨씬 나은 삶의 방식이라는 걸 남편의 대답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나는 둘째도 낳았다. 둘째를 낳고는 1년 반을 휴학했다.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는 차원이 달랐다. 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최대한 빨리 아이를 낳고 키워서 졸업하는 게 목표였는데, 막상 아이 둘을 낳고 나니 계획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기들과 너무 친해졌었기 때문에 함께 졸업하지 못한다는 게 처음에는 너무 아쉬웠다. 나이 마흔에 가까워서야 졸업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휴학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이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휴학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돌아갈 학교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두 아이 엄마로 살림이며, 육아며 모든 것이 힘에 부쳤지만 이러한 생활이 무한정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힘이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그때 그 시간들... 지금은 아이들이 5살 3살이 되었고 이제는 나도 제법 능숙한 엄마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때를 떠올리니 이제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등바등 학교 다니고 아이 키우고 주말이면 시댁에서 친정으로 시댁으로 바삐 오가며 살았던 그 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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