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희망퇴직, 막막함보다 남편의 자존심이 걱정되었다

회사는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by 차차약사

35살 우리 남편, 신입사원 때부터 10년간 성실하게 다녔던 회사인데. 왜 하필 우리 남편이 희망퇴직 대상자일까? 처음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가 2015년 12월이었다. 남편의 나이 35살, 내 나이 33살. 그리고 우리 첫째가 태어난 지 막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회사를 관두게 되면 우리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실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없었다. 수입이 끊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돈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던 때이기도 했다. 재취업을 할 때까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히려 아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려고 일부러 직장을 관두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럴 용기가 부족했는데 오히려 여건이 우리를 도와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 남편의 지난 삶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내 눈에 비친 우리 남편은 성실과 책임감 하나는 최고인데... 나는 25살에 퇴사하고 전국,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다녀올 정도로 내 어린 시절을 누리고 살았다. 하지만 남편은 청춘을 바쳐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만 했다. 그렇게 10년을 다닌 회사생활 끝에 만난 것이 희망퇴직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씁쓸했다. 우리 남편은 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가지고 있던 회사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청춘을 바친 회사지만 어려운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 나는 내가 약대에 다시 간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없던 이유도 내가 4년 뒤면 졸업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을 했다. 희망퇴직이나 은퇴에 대한 걱정 없이 내가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을 선택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약대 입시를 준비했던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 남편에게도, 우리 가정에도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약대 입시를 준비하고 합격하는 과정에서 우리 남편도 약사라는 직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 약사라는 직업을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약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약사 직업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니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남편은 10년간 다닌 회사에서 정체된다는 느낌과 더불어 회사 내 직급이 올라갈수록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결국 약대에 합격하게 되었을 때 남편이 자기도 약대 입시를 준비하면 어떨까라는 얘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남편은 어릴 때부터 서점 주인이 꿈이라고 했다. 전국의 많은 서점 주인들이 화날 얘기지만, 제삼자가 생각할 때 서점 주인이란 돈도 벌면서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처럼 느껴진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히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고 대형서점만 살아남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도서관 사서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알아보니 다시 문헌정보학과에 다녀야 하고 사서 시험도 봐야 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현실에서 내가 약대를 준비하면서 우리 남편도 '약사가 되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해본 것이다. 약사라는 직업도 제삼자가 보면 왠지 서점 주인과 느낌이 비슷하다. 역시나 전국의 약사님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실 테지만, 제삼자가 느끼는 약사라는 직업은 약국이라는 평온한 공간에서 직장의 스트레스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과 출신인 우리 부부에게는 더 현실적인 서점 주인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남편이 당장 약대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당연히 열심히 하면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학교에 다니는 동안 수입은 없지만 그동안 번 돈으로 학교를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둘 다 약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시간도 자유롭게 쓰면서 가족이 함께 여행도 많이 다니면 좋겠다고 순진하게만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우리 남편이 하고 싶은 거라고 하니 지지해주고 싶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줬고 결혼 후에도 내가 약대에 다시 갈 수 있게 지지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시부모님과 식사하던 어느 날, 남편이 약대 준비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시부모님은 반대하셨다. 나라면 반대하셔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할 텐데 우리 남편은 부모님의 말씀이 설득력이 있었던지 생각을 고쳐먹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욱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터였다. 그게 불과 1년도 되지 않았었다. 다시 직장생활을 잘해보자고 마음먹었던 우리 남편인데... 내가 관두지 않아도 이렇게 허무하게 회사생활이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만 해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났다. 10년간 열심히 일했던 남편, 다시 잘 다녀보자고 마음먹었던 회사에서 그런 인간적이지 않은 대접을 받은 것에 나는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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