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태어난 지 100일, 나는 대학생... 남편은 희망퇴직 대상자
첫 아이를 낳은 그 해 2015년에는 남편 회사에서 2번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첫 번째 구조조정 때는 남편의 오랜 팀장님이 옷을 벗으셨다. 남편이 존경하며 따르던 분이었다. 한순간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신다고 하니 아쉽고 서운했다. 한편으로는 팀장급에서의 구조조정이어서 우리 남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구조조정은 조금 의외였다. 첫 번째 구조조정이 지나가고 새로운 팀장님이 오신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때였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구조조정을 하게 것이기 때문에 새로 오신 팀장님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셨다. 그래서 팀원들 사이에 불만이 생길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구조조정 때 그분도 옷을 벗게 된 것이다. 이번 구조조정도 우리 남편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마음 한편이 좋지는 않았다. 그만큼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팀장급이라고 해도 40~50대에 불과한 분들이고 한 가정의 가장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첫 번째 팀장님은 집안이 풍족한 편이라고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팀장님은 몇 개월 이용만 당하다 구조조정 일 순위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외벌이라고 들어서 더욱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첫째는 백일을 맞아 가족들과 백일잔치도 치른 무렵이었다. 우리 남편은 원래도 집돌이지만 아이가 생긴 후로는 더욱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출산 직후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고 특히 아이를 재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었다. 하지만 백일 이후로는 아이의 수면 패턴이 잡혀서 빠르면 7시부터는 잠이 들었다.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천국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인사과에서 공고가 났는데, 다른 팀에 티오가 생겼다는 것이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금의 직장에서 한 팀에서만 10년간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남편이 내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사를 물어봤다. 새로운 팀은 서울 또는 안산에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인천에 살고 있었고 특히 시댁과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남편의 직장이 인천에 있기도 했을뿐더러, 시부모님께서 육아 도움을 주신다고 하셔서 신혼살림을 그곳에서 시작한 것이다.
만약에 새로운 팀으로 옮기면 남편이 지금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거나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함께 육아를 못하거나 시부모님 도움을 받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변화주의자라고 할까.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 가끔은 무모할 정도다.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는 남편에게 나는 괜찮으니 무조건 지원해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이 육아에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 남편은 인사과를 통해 다른 팀에 지원을 했고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새로운 팀에 합격하여 어느새 새로운 팀과 송별회까지 하게 되었고 다음 주에는 드디어 새로운 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을 알고 있던 다른 팀 사람들도 남편의 소식을 듣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유독 한 분의 말씀이 머릿속에 남았다.
“차 대리~ 새로운 팀으로 옮긴다며~ 축하해~ 그런데 구조조정이 또 있을지 모른다는데 괜찮겠어?”
설마 한 해에 구조조정이 세 번이나? 남편이나 나나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았냐고… 설마 또 구조조정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구조조정 계획이 있으면 인사팀에서 모를 리가 없고, 그걸 안다면 이렇게 다른 팀에 자원하는 공고를 낼 리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두 번의 구조조정 모두 팀장급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역시나 우리 남편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송별회를 마친 바로 다음 주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또 구조 조정한대~" 설마 하던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우와. 이 회사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남편은 10년이나 한 팀에서 성실하게 일해왔다. 남편 말에 의하면 남편이 주도적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고 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경력사원도 아니고 신입 때부터 한 회사에서 충성을 다했는데 이런 구조조정으로 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희망퇴직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구조조정은 팀장급의 희망퇴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팀장이 각 팀에서 할당된 인원만큼 희망퇴직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희망퇴직 대상 일 순위였던 팀장들이 오히려 선택권을 쥔 사람들이 되었다. 팀에서 몇 명 이상씩 희망퇴직 대상이 될 정도로 지난 2번에 비해 구조조정 규모가 컸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조조정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회사를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직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럴 때 대상자가 되어 나가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편의 동기 중에는 이 참에 몇 천만 원의 위로금을 받고 다른 회사 재취업을 준비하겠다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본인은 대상자가 되지 않고 잘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희망퇴직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낮에 남편이 갑자기 일찍 집에 들어왔다.
“나… 희망퇴직 대상자 되었어…”
뭐? 우리 남편이? 10년 동안 성실하게 회사에서 일만 한 우리 남편이 희망퇴직 대상자라고?
팀장님이 업무 시간에 따로 남편을 불렀고 남편에게 희망퇴직 대상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 말고도 다른 과장님도 대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분은 그날 바로 짐을 싸서 집에 가셨다고 한다. 과장님 댁에 초대받아 저녁식사도 함께 했었는데… 실력이 좋은 과장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대상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옷을 벗고 집에 가셨다니...
그리고 우리 남편… 우리 남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상자가 되었다. 그때서야 난 내가 보고 싶은 면만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사원 때부터 10년간 성실하게 회사를 다닌 것이 대기업에서는 아무 의미가 되지 않는다. 특히 팀장님은 경력으로 입사하신 분인 데다 남편을 신입일 때부터 보아오신 분이 아니다. 실력과 경력을 떠나서 모두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었고 누구 하나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어야 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은 명분만이 결정을 지을 수 있었다. 우리 남편은 아주 좋은 명분을 갖고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 송별회를 한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있을까.
‘넌 이미 이 팀을 떠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이잖아.’
‘네가 희망퇴직 대상자 가장 적임자야.’
‘너 말고 다른 누구를 지목할 수 있겠니.’
이런 목소리가 마치 내게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원망했다. 우리 남편은 신중한 사람인데 내가 다른 팀으로 지원해보라고 그렇게 뽐뿌를 했으니 말이다. 잠자코 열심히 다닐 걸… 뭐하러 그런 행동을 하라고 부추겼을까.
우리 남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주내에 답변을 해야 했다. 과장님처럼 이미 짐을 싸서 떠난 사람도 있었다. 우리 남편은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모른 채 며칠은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낮에 집에 와서 말했다. "나 관두겠다고 얘기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