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쉽게 하는 방법

by 차차약사

선택은 2가지로 나뉜다.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택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 '어디로 휴가를 갈까?'는 내 인생의 방향을 한꺼번에 바꾸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 취직할지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유형의 선택 모두 중요하다.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자잘한 선택들은 데이터화가 된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들이 다음에 큰 결정을 빠르게 한다. 나는 31살에 약대 입시 준비 결정을 며칠 만에 내렸다. 2월에 피트 시험이라는 것을 알았고 3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내 블로그에 이런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몇 년 전에 피트 시험을 알았고 그때도 고민했지만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미련이 남습니다. 지금 해도 늦지 않았을까요?' 약사라는 직업이 좋은 것은 알지만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다. 그래서 포기하고 다시 직장생활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년 뒤에도 미련이 남아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이다. 고민을 짧게 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짧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다. 첫 번째, 2년간의 회사 생활을 해봤다. 다시 조직생활을 하면 후회할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살아온 지난 몇 년이 정말 정말 행복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다면 금방 괴로워질 것이다. 약사는 그런 면에서 좋은 직업이다. 병원약사, 약국 약사도 할 수 있고 제약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3일만 일할 수도 있다. 장롱에 면허증을 넣어놓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진 어느 날부터 다시 일할 수도 있다. 세 번째, 내가 숨 쉬고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때문에 만들어지는 사회 부조리가 싫어서 돈 없이 사는 삶을 실험했었다. 하지만 결국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만 깨닫게 된 경험들이었다. 차비도 필요했고 사람들 만나는데 커피값도 필요했다. 생존을 하는데 돈이 필요했다. 이럴 바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결론 내렸다. 약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다. 네 번째, 나는 해외를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약사가 되면 해외 의료봉사를 다닐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너무 행복했던 그 경험을 마음만 먹으면 또 할 수가 있다. 4가지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약사라는 직업을 통해 내가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당장 바꾸진 않았던 선택들은 내가 선망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알게 해 준다. 이런 경험들은 내 삶에서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귀농한 분들에 대한 선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분들은 손재주가 좋은 분들이 많았다. 인위적인 것보다 직접 만들어 쓰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을 따라서 나도 하루는 나무를 깎아 숟가락을 만들어봤다. 그런데 아주 금방 지겨워졌다. 인내심을 갖고 해 보려다가 도중에 그만두었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때 알았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선망하지만 내가 그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말이다. 어느 날 함께 숲육아하는 엄마들과 코바느질 모임을 했다. 천연실로 색색의 장난감을 만들었다. 시범을 보여주는 엄마가 있었다. 다른 엄마들도 모두 재료를 주문했다. 하지만 나는 주문하지 않았다. 분명히 몇 번 하다가 안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 재료가 집안을 굴러다닐 것이 눈에 훤했다. 다른 엄마들이 만드는 걸 구경하면서 모임을 마쳤다. 다른 엄마들은 이후에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장난감을 완성한 엄마와 중간에 그만둔 엄마. 그 엄마들도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쌓았다.


작년에 존경하는 인생 멘토를 만났다. 존경할 만한 이유가 너무 많은 분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동의하면서도 내가 때로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에 신기해하기도 한다. 나는 멘토를 만나기 위해 많이 돌아다녔다. 존경하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삶을 깊숙하게 보면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가 많다. 어느 날은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저자 분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분 역시도 생각은 곧을지언정 주위 사람들에게는 독선의 대상이기도 했다. 말하는 대로, 쓴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그때부터는 사람을 함부로 선망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 때문일까? 지금의 인생 멘토는 글과 삶이 일치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을 이미 많이 경험하셨고 많은 부분 닮아있다. 존경에 그치지 않고 멘토로 따르는 이유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오면서 내가 진정 따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만난 인연을 절대 대충 흘려보낼 수 없다.


굵직한 선택들을 많이 해 온 편이다. 첫 대학을 한 달 만에 자퇴했고, 회사를 다닌 지 2년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 2년 동안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갔다. 돌아와서는 다시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에 대한 엄청난 데이터들이 쌓여서 처음부터 결정한 것은 아니다. 자퇴할 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빠른 생일이니깐 한번 더 수능을 본다 하더라도 늦는 게 아니다. 퇴사할 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학사와 석사를 5년 만에 조기 졸업했으니 남들보다 1년 빨리 졸업한 것이다. 1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아프리카에 갈 때는 조금 달라졌다. 대학생 때부터 해외봉사활동은 내 버킷 리스트였다. 그 마음이 직장에 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틈만 나면 해외봉사활동 자료를 찾아보고는 했었다. 인생에서 한번 하지 않으면 계속 머릿속에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28살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갔다. 자전거 전국일주도 내 마음속에 자꾸 남았었는데 막상 한번 해보고 나니 미련이 남지 않았던 경험 덕분이었다. 약대 입시 준비는 좀 더 총체적인 경험과 생각이 숙성하여 만든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리스크가 적은 것 같으니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었다. 가끔은 하지 않았던 것도 경험이 되었다. '이건 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끝까지 미련이 남을 거구나'라는 경험 말이다. 경험들이 쌓여서 나중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줬다. 그 선택들을 함에 있어서 한 가지 일관되었던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닌 내 마음의 목소리를 따랐다는 점이다. 내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갈 때 용기가 나지 않을 때는 위와 같은 생각들로 괜찮다고 하면서 용기를 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나밖에 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의 진로라든가, 연애, 결혼 같은 중요한 선택들 앞에서 물어볼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가 내 문제 때문에 새벽까지 뒤척이며 고민할까. 물론 나한테 큰일이 벌어지면 우리 부모님도 새벽에 깨긴 한다. 그런데 문제가 정확히 기억 안 나서 전화로 다시 물어본다. 미경아, 그래서 그걸 하겠다는 겨, 말겠다는 겨?

내가 한 모든 결정에 최종적으로 책임질 사람도 결국 나뿐이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남이 대신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답을 내고 책임지는 것은 나다. 그래서 ‘존재’가 결정한 일은 설사 잘못됐다 하더라도 남 탓을 할 수 없다. 오판이라 할지라도 괜찮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을 다해 고민한 결과니까. 또 나 역시 이 일로 더 성숙해질 테니까. - 살아있는 뜨거움, 김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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