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되려면 최소한 5년이 걸려요

내 꿈에 단 5개월만이라도 투자해보세요

by 차차약사

어제는 약대에 가고 싶은 28살 친구와 상담을 했다. 이 친구의 고민이 신선했다. '한국에서 피트 시험을 공부한다 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해외 약대에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약사가 얼마나 하고 싶으면 해외 약대까지 고민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해외 약대는 한국 약대보다는 입학이 수월하다고 했다. 하지만 졸업까지 비용만 2~3억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약사를 하고 싶으면 다시 한국 약사고시를 치러야 한다.


피트 시험이 어렵기는 하다. 그래도 이걸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봤지만, 아예 해외 약대로 눈을 돌리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만큼 절실하다면 한국에서 준비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트 시험이 어렵다고 해도 결국 합격자는 항상 있기 때문이다. 저만큼 절실한데 왜 한국 시험에 먼저 문을 두드려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이 친구의 말을 계속 들어봤다. 해외 약대를 가게 된다면 A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한국에 와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A 분야의 경우 아직은 해외가 더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케팅 쪽으로도 일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듣다 보니 딱 내 과이다. 내가 딱 이 친구와 같았다. 얘기를 듣다 보니 이 친구는 약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마케팅 쪽으로 일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일하는 게 녹록지 않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잔뜩 회의감이 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전문직이 되어 그걸 기반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거였다.


예전의 내 자기소개서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첫 취업을 준비할 때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내 전공은 도시공학과이고 대학원에서는 교통공학을 전공했다. 처음 이력서를 낸 곳은 인천공항공사였다. 서류합격을 하고 인천공항공사에 가서 필기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인천공항공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와 포부에 대해 적으라는 필기시험이 있었다. 나는 인천공항공사의 사회공헌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적었다. 사회공헌팀에서 하는 바자회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천공항공사에 취직하면 인천공항공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싶다고 적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교통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교통분야로 지원하면서 그런 포부를 밝힌 것이다. 도대체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원사유였다. 그 지원사유를 보면 누가 봐도 합격시킬 수가 없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봉사활동이면 복지센터에 지원해야지 인천공항공사에 지원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당연히 불합격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심각성을 몰랐다. 남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내게 맞는 분야를 찾았다. 바로 국제협력분야였다. 28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지원했다. 그때야 말로 내가 원하는 것, 자기소개서에 적은 것, 유네스코에서 원하는 적임자와 모두가 일관된 첫 지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2년간 CLC(Community Learning Center) 활동을 하고 왔다.


사실 내가 약대에 지원한 이유도 아까 그 친구와 같았다. 약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경력단절 없는 직업, 평생 할 수 있는 전문직, 내가 좋아하는 해외봉사를 떠날 수 있는 직업,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 내가 약사가 되려는 이유에는 약에 대한 관심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그 친구를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친구는 자신이 외향적이라고 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했다. 마케팅 쪽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생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이 드는 것 같았다. 26살에 퇴사했던 나의 상황과 거의 같았다. 아니, 나보다 나은 것이 있었다. 나는 내가 일했던 분야에도 큰 열정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 친구는 자기가 일하는 분야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대화하면서 정말 원하는 게 약사가 아니라는 것에 이 친구와 나도 모두 동의했다. 한국에서 약사가 되는 데는 최소한 5~6년이 걸린다. 해외 약사로 눈을 돌린다해도 기간은 비슷할 것이다. 비용은 오히려 몇 억이 든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도 아닌데 전문직이 되고 싶어서 그런 시간, 비용 투자를 고려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옳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약대에 가면 의외로 내가 정말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가 확실한데 주변 여건에 만족하지 못해서 고민인 이 친구에게 내가 해 준 말은 이거였다. '내 분야의 롤모델을 찾아보세요. 내 분야의 롤모델을 찾으면 그 사람이 걸어간 길에서 내가 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같은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내 상상력이 닫혀 있을 수 있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씨보다 나이가 많았던 31살의 저는, 제게 주어진 길이 취업 아니면 시험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있던 곳을 벗어나보니 재밌고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많은 강의를 듣고 많은 책을 읽어보세요.'



다행히 이 친구는 책은 많이 읽는다고 했다. 내가 닮고 싶은 롤모델들의 책을 많이 읽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단 5개월만 투자해도 내 삶의 길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진짜 원하지도 않는 것에 아까운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직은 희미하겠지만 용기있게 가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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