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여도 하고 싶은 거 하자'
1화 : 엄마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밥과 설거지
2화 : 게으름, 나태덩어리, 못남덩어리 아내, 엄마,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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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폐암판정 앞에서 내가 무너졌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나만 바라보며 20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싶었다. 직장에 다녀보니 직장에 다녀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었다. 여행이라도 가고 싶으면 회사 쉬는 명절에 가야 했다. 설날에 대만에 갔는데 대만도 춘절이라서 도심이 텅 비었다.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삶은 없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대학교 때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었다.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과 상담했는데 교환학생에 대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니 나도 내가 그냥 막연한 동경으로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환학생 대신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갔다가 박사를 하러 외국에 가면 완전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사도 하고 해외생활도 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구원에 취업했다. 내 꿈이 와장창 깨졌다. 회사생활은 내가 바라던 그런 곳이 전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고 그 안에서 배움도 있고 일에서 얻는 성취감도 있었다. 회사생활이 재미없더라도 유학하러 가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경력을 쌓아가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연구원에는 유학하고 오신 박사님들이 많았다. 유학하고 돌아왔을 때 박사님들처럼 살 것이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짧은 식견으로 바라봤지만 내가 상상하는 삶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번 내 생각에 오류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였다. 회사에 가면 내가 원하는 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라는 걸 한번 크게 깨닫게 된 뒤다. 그런데 유학을 간다고? 또 내 생각이 틀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해외생활이지 공부가 아니었다. 해외생활을 하고 싶다고 공부가 메인인 유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교환학생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물론 교수님의 생각이 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교수님이 내 미련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어른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해주셔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해보기로 한 것이다.
퇴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전거 전국일주다. 퇴사하고 이모의 부탁으로 이모네 살면서 중학교 3학년 친척동생의 공부를 도와줬다. 그리고 나는 매일 컴퓨터로 중고자전거를 검색하고 전국일주에 필요한 용품들을 공부했다. 중학교 3학년 친척동생이 겨울방학을 맞았을 때, 또다른 친척동생과 우리는 40일간의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우리 집이 있는 파주에서부터 시작했다. 첫날은 가볍게 파주에서 일산까지 갔다. 일산에 큰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가보고 알았다. 너무 많은 짐을 들고 왔다는 걸. 우리는 침낭에 텐트까지 모두 자전거 트레일러에 싣고 떠난 참이었던 것이다.
양재역에 있던 친척집에 도달해서는 짐을 다시 돌려보냈다. 잠은 모텔에서 자기로 했다. 밥은 사먹기로 했다. 간단한 아침은 코펠에 해먹었지만 나머지는 사먹기로 했다. 그렇게 파주에서부터 완도까지, 그리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 제주도 일주 후에는 다시 배를 타고 완도로 올라와 남해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다시 동해까지 올라왔다.
왜 나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퇴사하고 나서 가장 하고 싶은 게 왜 자전거 여행이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잘 탔고 자전거를 타는 게 재밌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달리기 대회에서는 늘 4등이나 5등을 하던 내가 가장 먼저 달리곤 했다. 두 손을 놓고 바퀴 균형을 잡으며 평지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페발을 하나씩 밟으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다. 그냥 하나하나 밟다보면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페달을 밟지 않고 오로지 경사에 의지해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너무 빠르면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길을 따라 마주하는 거대한 바다, 혹은 산. 자전거에 의지해 달리는 것 같지만 오로지 내 힘으로 가는 것 같은 미묘한 기분. 자연에 순응하는 것 같지만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내 한발한발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기분 때문일까.
자전거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었다. 회사 모니터로 침을 흘리며 봤던 사람이 5년 계획으로 자전거 세계일주를 떠난 찰리(한국사람)였다. 막연히 자전거를 좋아한다 생각했던 내가,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사람이었다.
우리는 주말이나 명절을 겨우 내어 휴가를 떠난다. 단 일주일의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회사를 관둬볼까 생각하지만 모두가 회사를 다니는데 나만 관두는 건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단한 결심히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5년이라니… 맙소사…
내가 떠나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 나는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