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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Mar 30. 2020

엄마가 되고 매일 게으름과 싸워요

내가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여도 하고 싶은 거 하자'

1화 : 엄마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밥과 설거지


https://brunch.co.kr/@ssena222/71







'훌륭한 엄마를 쫓아가려고 하지 말고 즐기는 내가 되자.'


나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에겐 돌아갈 학교가 있으니 몇 년 뒤엔 졸업하고 일도 할 것이다. 


지금은 남편이 회사일로 너무 바쁘니깐 내가 정신차리자. 


설거지는 힘들면 미루고 집안일에 부담을 가지 말자. 


차라리 아이들과의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자. 


그래서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숲육아 모임에도 참여했어요. 아직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어린 애들을 키우는 엄마들과 동네 공원에서 만나 바깥에서 함께 놀고 밥도 함께 먹고요. 많이 더디지만 나만의 육아방식을 찾아가고 있다고 느끼며 힘듦 속에서도 성장하는 엄마가 되려고 했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2017년 겨울, 괜찮겠지라는 믿음에 기댔다


2017년 겨울을 지나는 기간, 친정아버지가 유독 추위를 타셨어요. 친정집에는 손님방이라고 별도의 작은 방이 있었는데 아빠가 그 방을 아주 뜨끈하게 하고 겨울 동안 거기서 주무셨어요. 너무 춥다고 하시면서요. 


아빠는 기침을 많이 하셨어요. 담배를 태우셨었고, 언젠가부터 잦은 기침을 하셨어요. 그런데 잦은 기침이 언젠가부터는 아빠의 몸이 울릴 정도로 크게 변했어요. 마치 기침이 아빠를 집어삼킬 것처럼요. 그때 저는 학교도 다녀야 했고, 기저귀 안 뗀 첫째도 있었고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면서도 ‘아빠는 늘 강했으니까… 그리고 엄마가 똑부러지니 잘 하고 계실 거야’라고 믿고 있었어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시기여서 그런 믿음에 기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마의자에 앉아 주무시던 아빠가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다


2017년 2월 둘째가 태어났고 저는 더욱 자주 친정집에 오갔어요.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두 아이, 기저귀도 안 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수시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그럴 때마다 피신처처럼 친정을 찾았어요. 아빠를 어느 때보다 자주 뵈었는데… 뵐 때마다 살이 더 빠져있더라고요. 자꾸 살이 빠져서 아빠는 안 드시던 아침밥을 챙겨드시는데, 그마저도 힘이 없어 식탁에 거의 기대서 드시더라고요.  


하루는 안마의자에 누워 쉬는 아빠를 보는데 거죽이 뼈에 달라붙어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어요.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아빠가 너무 걱정돼요. 병원에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울 아빠는 직접 전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걱정하는 딸래미 안심시켜주려고 직접 전화해서 ‘아빠 괜찮아’ 라고 하시더라고요. 울 아빠가 그렇게 얘기하니… 정말 괜찮겠지… 눈물을 참아내며 강인한 아빠를 믿어보려 했어요. 









마음 속으로 숨기고 있던 불안이 현실이 됐다


하지만 아빠는 괜찮지 않았어요.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서 아빠가 숨쉬는 걸 힘겹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2017년 8월 첫째주, 남편의 여름휴가라서 친정부모님과 강원도에 다녀왔어요. 한여름에도 추위를 타던 아빠… 살 빠지고 기운 없어하던 아빠. 강원도에 다녀와서 친정집에서 다같이 쉬고 있는데 아빠가 병원에 CT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엄마도 함께 가려고 하셨는데, 그때 우리 첫째가 친정엄마의 눈썹칼을 갖고 놀다가 얼굴을 베었어요. 우리는 놀래서 소아과에 다녀가느라 정작 아빠 병원에 함께 가지 못했어요. CT결과를 들으러 가는 아빠의 모습이 평온해서 별일 없을 거라는 안심을 하고 있었거든요. 


평온 속에 감춰진 서로의 속마음… 저는 겉으로는 평온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어요. 


 ‘별일 없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소아과에 갔다가 먼저 돌아온 우리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집에 들어온 아빠에게 엄마가 “뭐래?”라고 물었어요. 아빠는 대답을 피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부터 드라마 속에서만 보아오던 모습들이 우리 집에서 연출됐어요. 


“병원에서 뭐라고 했길래 대답을 안해?”

“….”

“대체 뭐라고 했냐고?”


거의 울부짖기 직전의 엄마. 대답을 피하는 아빠


저는 아빠 차로 달려갔어요. 병원 진단서를 찾았고, 영어로 쓰인 병원용어들 사이에서 ‘lung cancer’라는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진단서를 들고 울면서 엄마와 가족들 앞에서 얘기했어요. 사실 아빠는 알고 있었더라고요. CT찍기 전 엑스레이 찍었을 때 벌써 의사선생님이 폐암이 의심된다고 했었대요. 왜 그렇게 감추려고 했을까요. 가족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걸까요. 속상하고 울어도 되는데… 아빠는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는 당장 의사 친구에게 카톡으로 진단서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어요. “아버지 건강검진 안 받으셨어? 크기가 꽤 크네…”라는 친구의 말에 저는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울 엄마 아빠가 똑부러지게 건강검진도 받으시고 스스로 잘 챙기고 계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예요. 하나 뿐인 딸인 저는 그 동안 뭘 했을까요. 울 엄마 아빠 건강검진도 안 여쭤보고 뭐했을까요. 저는 제가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이후로는 주저할 수가 없었어요. 당장 병기를 알아서 치료를 해야했으니까요. 아빠는 삼성서울병원에서 2017년 8월 폐암3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크기가 커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먼저 하고 사이즈를 줄인 후에 수술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어요.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려던 참이었는지, 며칠간 40도를 오가는 고열로 응급실을 몇번씩 다녀갔어요. 아빠는 운전을 하실 수 없는 상태였고 엄마는 운전을 못했어요. 그리고 병원과 부모님댁이 차로 2시간 거리였어요. 항암치료는 몇주간 계속해야 했고 평일에 계속 병원에 가야 했어요. 그래서 항암 치료 받는 동안은 우리 집에서 지내시기로 하셨어요. 엄마네 집이 아니라서 안 그래도 불편한 잠자리일텐데 아빠 편하게 모실 수 있는 방도 없고 ㅠㅠ 화장실도 한 개라서 편하게 화장실도 못 다니시고, 무엇보다 아빠가 한여름에도 추위를 너무 타시는데 새벽에 화장실 가시려고 깨셔서 방에서 화장실까지 가실 때 추워서 힘드실까봐 너무 걱정이 되는 나날들이었어요. 


나는 아빠 건강검진도 못 챙겨서 너무 속상하고 집도 좁아서 속상하고 울 아들이 태어난지 6개월이라서 계속 차에 태우고 같이 병원에 다니느라 아빠 엄마 편하게 모시지 못하는 것도 속상했어요. 울 딸은 그전에는 어린이집에 안 다녔는데 제가 아빠 병원 모시려고 어린이집도 보내기 시작하긴 했지만 제가 전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게 운전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어요. 


이럴 때 대비해서 내가 돈도 많이 벌어놓고 집도 크고 의지할 수 있는 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가 자꾸 밀려왔어요. 울 엄마, 아빠는 농사를 짓는 분들인데 그래서 은퇴가 없어요. 언제까지나 계속 엄마, 아빠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찾아올 수 있지만 아무도 그걸 생각하며 살지 않아요. 우리 가족이 그랬고 제가 그랬어요. 





게으름, 나태덩어리, 못남덩어리 아내, 엄마, 딸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저는 육아 때문에 힘들었어요. 설거지도 못하고 체력 바닥인 상황이 싫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열심히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맨날 힘들어만 하고 남편이 분리수거해주기만 기다리고 남편의 부재를 원망했어요. 하지만 그런 걸 다 잘해내는 엄마들도 많은데... 내가 하면 되는데 내가 안 하는 것 같았어요. 게으름, 나태덩어리 엄마, 아내 같았어요. 그런데 아빠가 아프고 나니 이제는 부모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못남덩어리 그 자체가 되었네요. 



내가 대체 잘하는 게 뭐야. 난 대체 뭐하며 살아왔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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