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37살이고 5살, 3살 두 아이의 엄마다. 석사까지 하면서 나름 가방끈 길게 학교 다녔었는데 결혼하고 33살에 이전 학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대학, 새로운 학과에 입학했다. 2015년에 입학했는데 학교 다니는 동안 두 아이를 출산하느라 아직도 졸업을 못했다. 대학에 다시 가기 위해 공부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인생에서 자그마치 얼마나 긴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고 있는지...
결혼 직전에 나는 아프리카에서 2년을 살다 왔다. 한국에 와서 다시 취직을 하려고 보니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 한 직장에서 오래 경력을 쌓아오진 못했지만 나같은 인재는 마음만 먹으면 취업할 수 있다는 근자감이 있었는데 어느 곳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아... 이런 거구나. 경력단절이라는 거.
아... 이런 거구나. 서른 넘어 취직이 안 된다는 거.
후배를 통해 피트시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약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약대입학시험인데, 나같은 이과 출신 학생에게 유리한 시험제도였다. 수능이 아니라 물리, 생물, 유기화학, 일반화학 4과목만 치르는 시험이다.
약사?
흠...
약사!
아... 좋다!
나처럼 세상에 호기심 많은 애가 하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직이라서 경력단절 위험도 없고
페이약사로 일하면 시간도 자유롭고 나머지 시간에는 육아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실컷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 당시에는 약사의 좋은 점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냥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10월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마침 시험은 8월이었고 공부는 3월에 시작했다. 8월에 시험 보고 2개월 동안 결혼 준비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고, 결국 결혼하고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얼마만에 다시 하는 공부인지... 그렇게 공부해보는 건 수능공부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사실 수능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했다. 수능은 점수 맞춰서 어느 대학이든 갈 수가 있지만 피트시험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었기에 간절함이 달랐다.
서른 넘어 다시 시작하는 공부...
쉽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엉덩이 힘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고 공부해도 예전 고3 때 머리 팡팡 돌아가던 그 시간은 아득하고 방금 본 것도 까먹고 이해도 금방금방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는 공부가 좋았다.
왜냐면...
서른이 되고 나서 내가 깨달았던 건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거였는데 공부는 내 마음대로 됐다. 고3때만큼 머리도 안 돌아가고 체력도 안 따라주고 어린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면서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성적은 정직하게 따라와줬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의 이런 재미를 몰랐었다. 친구들 하니깐 나도 하는 거고, 대학에 가야 한다니깐 하는 거고, 학생이니깐 그냥 하는 거였다.
서른 넘어 다시 공부하니깐 3가지가 좋았다.
1.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라서 목적의식이 분명했다.
2.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공부는 내 마음대로 되는 유일한 거였다.
3. 그 나이에 간절함을 갖고 최선을 다할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서른 넘어 하는 공부가 정말 재밌었다. 그래서 피트시험을 준비하는 수험기간이 힘들지 않았다. 졸음과 싸워가며 공부했고 오늘 복습하지 않으면 내일 큰일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았다. 고등학생 때도 이렇게 공부해 본 적은 없는데.... 서른이 넘어, 내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본다는 거... 그게 참 행복했다. 그리고 자심감이 생겼다. 나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구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고 자책하던 게 익숙했던 나였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