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 여행, 다녀온 나라는 오로지 스페인?
문학도로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어느 언어권을 배울지언정 모두가 다 같을 것이다. 그 나라의 언어는 곧 문화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들어오고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스페인어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교수님들의 첫 면접 질문은 "왜?"였다. "너는 왜 이 언어를 선택했고, 왜 하고 싶은 것이냐?"
불가능한 업적을 손에 넣으려면,
허황된 것을 꿈꾸고 시도해야만 한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여태까지 했던 아시아권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새로이 배워보고 싶었고, 이는 스페인어였다. 그렇지만, 다른 유럽권 언어인 독일어는 문법을 배우는 첫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했고, 프랑스어는 발음이 힘들었다. 그렇다면, 영어와 비슷하고, 발음도 쉽고, 알파벳을 사용하는 스페인어였다. 그렇게 초급 스페인어 강좌 하나만을 듣고 나는 무지(無知) 한 상태로 전공을 선택했다. 생각해던 것과 달리 스페인어는 하면 할수록 어려웠고, 특히 문화도 모른 채 문학을 원어로 읽어야 할 때 밀려오는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매 번 수업을 시작하기 전 교수님들의 단골 질문은 "스페인 갔다 와 본 사람?" 이었다. 이에 나는 다짐하게 됐다. 떠나자! 스페인으로!
하지만, 막상 티켓을 끊고 장장 24시간 넘게 걸쳐서 도착한 마드리드는 너무 조용했다. 물론 10시간을 중국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정작 스페인에는 새벽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호스텔에 짐을 맡기면 된다는 생각도 못한 채, Madrid- Atocha역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근처에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냥 역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행복했다. 첫 유럽 땅을 밟았다는 기쁨의 도가니도 잠시 중국에 카메라를 놓고 왔다는 사실에 한참을 좌절했던 것도 같다. 그러고는 훌훌 털고 본격적으로 도시를 탐험하고자 길을 나섰다.
역을 나가자마자 우리가 마주한 광경은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하는 사람들, 일요일에 도착했기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나이 드신 분들 등 다채로웠다. 그제야 내가 스페인 땅을 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기념코자 애기 얼굴 동상 옆에서 기댄 채 사진을 찍었다. 아마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우리를 희한해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꽤나 오래된 스페인 성당이 보였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왕가 결혼을 여기서 했었다고 미소가 멋진 문지기 아저씨가 말해줬었다. 단지 지금 생각나는 건 저녁에 미사를 하냐고 친구가 묻자 당연히 한다고 하면서 우리 보고 미사를 드리러 오라고 했으나 가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우린 한 껏 들뜬 채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녀도 정적만이 휩싸인 채 우리가 원했던 광경이 보이지 않아 그냥 호스텔로 가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the hat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호스텔로 stubby planner에도 올라온 적이 있다. 실제로는 이를 보고 결정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심지에 위치했기에 (Sol 광장, Plaza mayor에서 5분 거리) 돌아다니기 제격이다. 다행히 호스텔에서 짐을 맡겨준다 했고, 우리는 곧바로 광장으로 달려 나갔다.
처음으로 반겨준 광장. 광장에서는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었다. 미친 과학자 콘셉트로 신기한 것을 많이 보여준 아저씨. 굉장히 능숙하게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확실히 유럽이라고 느낀 건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비록 요즘 신촌 거리에 나가면 이런 거리공연이 많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 낯설어하는 것 같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광장 사진만 20장을 넘게 찍었으나 다 비슷비슷한 것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광경이 광장이라 더 좋아했다. 특히 정사각형으로 되어있는 광장은 마음에 안정감을 더해 주기도 했다. 여기서 계속 걸어가게 되면 SOL광장이 나오게 된다.
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들은 너무 탐스러웠다. 특히 빵, 과자 등 달달한 놈들이 내 군침을 샘솟게 만들었다. 누가 파리 빵이 가장 맛있다고 했는가? 스페인에서 끊임없이 먹은 츄러스와 EMPANADA(엠파나다)는 한 끼 대용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그다지 비싸지도 않다.
스페인 하면 하몽(JAMON). 단순히 이 등호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은 어딜 가나 저렇게 소금에 절인? 말린? 돼지다리들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IBERICO JAMON이 가장 맛나다고 한다. 물론 내 저렴한 입은 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나 이 스페인 하몽이 맛난 건 당연지사였다.
광장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눈에 띈 가게. 과자를 담은 상자들도 과자들도 어찌 저리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을까 생각하던 중. 친구와 나는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다시 와서 사가지고 가리라. 그렇게 다시 와서 이 가게에서만 거의 80유로 가까이를 소비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명동 어느 백화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 가게라고.. 씁쓸하구먼.
우리는 마드리드 광장에 다시 와서 야경을 찍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넋을 놓고 보다가 다른 도시를 다 둘러보고 두 번째 왔을 때는 우리가 왜 그리 유난을 떨었을까 하며 그리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누가 내게 스페인 도시 중 으뜸을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나는 마드리드라고 하고 싶다. 항상 첫 여행지는 나를 설레게 하기 때문이고 그 기분은 아직까지도 간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흥겨움에 잠을 설치면서 내일의 여정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