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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May 07. 2016

유럽이라 부르고,
스페인이라 읽는다.

마음의 고향, 마드리드

이튿날 우린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첫날에는 첫날이니 힘 빼지 말자는 명목 하에 설렁설렁 다녔지만 두 번째 날은 그럴 수 없었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서 한국이면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대에 이미 눈이 떠졌다. 여덟 시에 아침을 마치고, 9시에는 나갈 채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로는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마드리드 벼룩시장인 El Rastro를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우리가 마드리드에 머무를 때 열린다고 해서 꽤나 기분 좋았다.  


9시면 열리는 시장은 열자마자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이 골목에서 한국 학생들의 무리만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쇼핑에만 몰두했다. 또 친구랑 단둘이 다니다 보니 우정 팔찌는 기념으로 하나 사고, 스페인에 다녀오면 이건 꼭 사 와야 한다는 짚으로 만들어진 신발 등 여러 개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50유로가 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인을 믿으면 안 된다. 비록 친구가 스페인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벙한 우리는 소가죽으로만 알았던 무스탕이 한국에 들어와 보니 돼지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결국 30유로 남짓 주고 산 무스탱과 맞먹는 3만 원이나 되는 세탁비를 내야 했다. 11시면 절정으로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재빨리 나와서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했다.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우리는 지갑 혹은 핸드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잔뜩 긴장한 채로 있었다.


우리가 걸어온 방향은 보통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 달랐다는 것을 이 공원에서 쉬면서 깨달았다. Eloy Gonzalo 동상이 Plaza de Cascorro에 있는데 이를 우리는 쇼핑을 다하고 나서야 마주했다. 저기 건물들 사이에 자세히 보면 동상 하나가 있다. 그러나 전혀 문제없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옷가지들이 많았고 큰 도로로 나올수록 책, 혹은 장난감 등 다양한 앤틱들을 사고팔고 있었다. 그 와중에 놓칠 수 없는 스페인 아저씨들의 과일 깎기 쇼는 주민 사람들조차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상점을 지날 때마다, 저마다 우리에게 다양한 아시아 언어로 인사를 내밀지만, 우리는 그 속에 한국어는 간간이 들린다는 점에서 굉장히 슬퍼했다. 대부분이 "니-하오"를 외치는데 그 이유는 며칠 더 머무르면서 깨달았다. 중국인들의 관광은 스케일이 남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안녕"을 외쳐준 잡지 상점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자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오래된 잡지 및 책들을 팔아서 신기해했다. 친구는 책이 무거워서 사지 못한 점에 굉장히 애통해했다. 비록 스페인어를 배우는 나지만, 내게 있어서는 무용지물이었기에 그다지 큰 관심을 사지는 못했다.


마드리드 벼룩시장 파노라마로 한 장.

그 인파를 뚫고 나와서 숨 좀 돌리고 우리는 다시 여정을 떠났다. 뭐, 여정이라고 해봤자 시장을 나와서 알무데나 대성당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마드리드 왕궁부터 데보드 신전까지 쭉 둘러볼 수 있기에 우리는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게다가 진정한 여행의 첫날이었기에 점심도 거른 채 바삐 걸어갔다.


Puerta de toledo en Madrid


그렇게 직진을 하다 보니 Puerta de toledo 즉, 톨레도의 문이 보였다. 간드러지게 부는 바람과 맑은 하늘이 그 날 만큼은 신의 축복이 가득한 하루였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우리는 기분이 째질 듯한 느낌으로 계속 재잘거렸는데 이는 스페인 사람들로 하여금 도히려 우리를 쳐다보게끔 하는 역효과를 보였다.



계속 걷고 또 걷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지는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다시금 감탄을 자아내는 Real Basilica de San Francisco el Grande를 보게 되었다. 친구가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눌러서 자제 좀 부탁한다 요청하려는 순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유럽 여행이 처음인지라 이런 오래된 건축물을 보고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성당은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굉장히 아름답지도 않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는 동안 이 성당만큼 기억에 남는 성당은 없었다. 아무래도 처음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굉장히 날씨가 좋아서 위에 지붕으로 칠해진 하늘색과 실제로 하늘에서 내비치는 하늘색이 동일했었기에 더 놀라웠던 것도 있다.


그렇게 성당에 한 번 놀라고 꺾어서 옆길로 새보자! 하며 걸어간 거리는 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사진 하나하나가 다 엽서구나!라는 사실에 더 놀라웠다. 사진을 찍었을 때, 높은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나지 않다는 점에서 무언가 스페인 사람들이 경관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아, 물론 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겠지만 내가 본 것으로만 판단했을 때는 스페인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예배를 드리려고 삼삼오오 모이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만 느껴지는 공기가 우리가 자리를 피해 줘야 한다는 직감을 깨우치게끔 만들었다. 성당을 나오면서 구걸하는 집시 여인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우린 몇 푼 안 되는 돈을 쥐어주고 길을 계속 떠났다.


그렇게 도착한 Almudena 대성당은 웅장하다는 표현에 걸맞게 컸다. 게다가 마드리드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돌아다녔다. 어려서부터 가톨릭 국가가 아닌 무슬림 국가에 살다 보니 이렇게 큰 성당은 보기 드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여행 중 가장 좋은 성당을 뽑으라 한다면 가장 처음 본 바실리카 성당일 것이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은 또 그만큼의 고충이 있다. 사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내가 성당을 보러 온 것인지 사람을 보러 온 것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있다. 게다가 처음에는 이 성당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크다고 여기다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장엄하고 더 아름다운 성당은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법을 깨달았다. 단지 다른 성당과 다른 점은 돈을 내지 않아도 안까지 구경할  수 있다. 물론, 볼 수 있는 구역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알무데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동상. 1561년, 스페인의 수도가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되었을 때, 스페인 교회의 중심은 여전히 톨레도에 머물렀다. 따라서 새 수도인 마드리드에 있는 모든 성당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성당이 없었다. 1993년에 완공된 알무데나 성당의 안은 꽤나 현대적으로 지어졌다.



마지막 날에 다시 오게 될 마드리드 왕궁을 제치고 길을 걷다 보면 Campo del Moro 정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만, 그 날 우리는 기필코 가보고 싶었던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커플들의 성지로 알려진 데보드 신전. 한국에서 커플 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두 분이 가서 찍은 후에 한국인들도 자주 보였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5시간을 넘게 걷기만 해서 그런지 우리는 거의 나왔을 때의 그 기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리 아꼈는지 잘 모르겠다. 직진만 고수하다 친구가 잠시 쉬어가자고 청했다. 그렇게 벤치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하늘을 쳐다봤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만 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하늘 아래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옛 이집트 건축물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온 데보드 신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진이 많다 보니 조금 더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석양 아래 있는 데보드 신전이 훨씬 이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족 단위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 조경이 아름다웠다. 데보드 신전은 실질적으로 공원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많은 마드리드 주민들이 산책 코스로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가운데 신전으로 들어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우리는 이 곳에 도착한 데 의를 두자고 말하며 서둘러 숙소로 길을 재촉했다. 아침을 9시보다 더 전에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배 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고 이는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결국, 우린 공원을 더 돌아다니지 않고 다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우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간단하게 츄러스를 먹고 저녁을 거하게 먹을 것인가 아니면 점심을 거하게 먹고 저녁을 거를 것인가. 당연히 처음을 선택했다. 6시간을 넘게 걸어서 들어온 San Gines 츄러스 집은 초콜릿이 진하기로 유명 난 집이다. 역시 맛집의 민족 답게 우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한국인 3팀이 주문을 시킨 후였다. 그렇게 밖에서 여유롭게 마드리드를 즐길 즈음 츄러스는 나왔다. 저게 합쳐서 4유로라는 데 너무 감격스러웠다. 게다가 초코가 그냥 초코가 아니라 진득한 그야말로 초콜릿 녹인 핫초코가 나와서 두 번 감동했다. 말끔히 해치우고 우리는 다시 숙소에서 재충전을 하고 나오자는 결론을 내렸다.  


숙소 가는 길에 마주친 한국 음식점 가야금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린 와중에 발견한 한국 음식점. 떠난 지 3일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말이 그리워 한 컷 찍었다. 게다가 외국에만 나가면 애국자 모드로 돌변하는 나 때문에 사진은 피할 수 없었다.


Plaza Mayor at night.

대략 1시간가량의 시에스타 시간을 갖고 나온 마드리드의 밤은 여전히 새로웠다. 아련히 비치는 불빛마저 사랑스러웠다. 또다시 Sol 광장을 가서 저녁을 먹을 건지 아니면 그냥 Plaza Mayor 근처에서 먹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근처로 가기로 했다. 절대 너무 굶주린 나머지 배고파서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은 맞다. :)


맥주 안주로 제격인 chorizo

그렇지만, 스페인은 제주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모든 집이 맛집이었다. 물론 음식점 밖을 자세히 보아야 맛집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했다. 그렇게 시킨 첫 번째 메뉴는 맥주 안주로 제격일 것만 같은 쵸리조다.


오징어 튀김인데 너무나도 부드러운 Calamari

두 번째로는 오징어 튀김을 시켰는데 이는 단순히 오징어 튀김이라 할 수 없었다. 오징어가 너무 부드러워서 연체동물 그 이상의 것이 나온 줄 알았다. 게다가 그때는 몰랐지만, 빵이 공짜로 나온 곳은 이 곳뿐이었다. 그렇게 풍족한 저녁의 만찬을 즐기며 마드리드의 밤을 만끽했다.


생생 올리브와 부드러운 빵은 서비스
처음으로 맛보는 빠에야(Paella)

해물 빠에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또 다른 장점은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으로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빠에야를 먹다가 질리면 빵을 먹고 그러다가 또 밥이 먹고 싶으면 다시 빠에야를 먹으면 되기에 너무 행복했다. 저 많은 음식을 한퀴에 해치우고 우린 맥주 한 잔 걸친 아저씨들 마냥, 실제로도 맥주를 한 잔 마셨지만,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녔다.


마드리드에서 유명한 SAN MIGUEL 시장


그렇게 Sol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갈 때쯤에 우연히 마주친 San Miguel 시장은 굉장히 반짝였다. 우린 다른 도시로 떠나기 전에 시장에 와서 식사를 하자고 약속하며 그렇게 마드리드의 이틀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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