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의 유무에 따라 길게 쓴 문장이 온전해지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듯이, 일상을 담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삶도 버거워지지 않으려면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 긴 삶에 적절히 쉼표를 찍어주지 않으면 삶은 목적지를 잊고 그저 의미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지난 주가 내게 그런 주였다. 방학인 데도 이상하게 약속이 몰려서 매일 사람도 만나고 해야 할 일들을 마치다 보니 혼자서 쉴 시간이 평소보다 적었다. 이렇게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시간을 만들어서 라도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영화 두 편을 본다. 영화 두 편을 보면서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타인이나 외부적인 요소들보다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접하면서 모호해졌던 가치관이나 생각들도 명료해진다. 이런 시간은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하는 정신적인 자산이자 원동력이 된다.
이번 주 나를 위한 영화 두 편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었다.
<톰보이>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축구를 잘 차는 여자 아이인 로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다룬다. 주인공인 로레는 또래 아이들에게 자신을 ‘미카엘’이라는 남자아이라고 소개하며 거짓말을 친다. 로레는 전문적인 용어로 FTM(Female-to-Male,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 트랜스젠더)여서 자신을 ‘미카엘’로 소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래 집단과 어울리고 싶어서 거짓말을 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로레는 ‘미카엘’이었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의 축구에도 낄 수 있었고 리사라는 여자 아이와도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로레의 정체성은 환경이라는 단일한 요소만으로 규정될 수 없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또래 집단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어렸을 때 누구나 겪었을 법한 또래 집단에 영향을 받는 로레를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로레에게 공감할 수 있게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 로레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남자와 여자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로레를 보면서 개인적인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도 또래 집단의 환경에 따른 영향을 받은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성격 자체가 활발하기도 했지만, 남자아이들이랑 놀 기회가 많다 보니 운동하고 뛰어다니면서 놀았었다. 당연하게 화장이나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반에 여자 아이들밖에 없었다. 여자 아이들이랑 놀다 보니 화장이나 렌즈 등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꾸미는 일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었다. <톰보이>는 로레의 정체성의 경계를 애매하게 설정함으로써 로레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인식의 범위를 넓혀주는 동시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요소들은 무엇이 있었을지 삶의 궤적을 한 바퀴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좋았다. 덕분에 내 가치관들이나 그 생각들을 받치는 논리들을 되짚어 보고 단단히 할 수 있었다.
‘춤 노력’(스물다섯의 도돌이표 0편에서 언급)을 마치고 돌아와서 본 두 번째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다소 무겁지만 편안했다. 이 영화는 화가 마리안느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기는 둘 사이의 감정의 기류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여성이 사회적, 제도적으로 억압받던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 속 여성들은 존재감과 생명력이 있다. 여성들의 존재감과 생명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세한 감정들은 자칫하면 정적일 뻔한 영화에 정열적인 긴장감이 흐르게 한다.
타오르는 엘로이즈.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성인 남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남성의 시선이 배제된 공간에서 퀴어라는 소재를 넘어 권위적인 남성 사회의 눈을 피해 자유와 해방감을 누리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남성에게 종속된 주체가 아닌 ‘사람’으로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래서 다른 영화들에 비해 보는 내내 편안함을 주는 영화였다. 여성들이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촬영상 논란이 있었던 <나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많았다. <캐롤>도 여성 간의 사랑과 연대를 다뤘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었으나 주연 둘의 불평등했던 위치가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반면에 각자의 주관이 뚜렷했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은 독립된 주체 간의 쌍방향적인 사랑이었다. 그래서 갈등도 여럿 생기기는 했지만 그 둘은 평등한 위치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랑을 했다. 오랜만에 불편한 장면이 없는 탄탄한 여성 서사 영화를 보고 나니 하루를 잘 맺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바빴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재충전하는 시간은 일상에 숨구멍을 틔워준다. 영화 두 편으로 나를 위해 야무지게 찍은 쉼표는 소진된 일상을 재가동시키는 데에 좋은 연료가 되었다. 영화 두 편의 휴식이 남긴 잔상을 연료 삼아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또 힘차게 달리고 있다. 일상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소소하게라도 쉼표를 하나 찍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