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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Nov 28. 2021

1. 토요일의 '위'대한 가족식사







“우리 모임의 이름을 정했어!”


“?????”


“우린 욕망 덩어리야!”




어느 날 코스트코에 다녀와서 엄마, 이모, 동생이 정해온 우리 요리 모임의 이름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식욕이 왕성해서 정해진 이름이란다. 내가 없는 동안 정한 게 내심 서운했지만 모임 이름이 야망 있게 들려서 좋았다.




이 욕망 덩어리라는 모임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결성되었다. 이모가 회사를 쉬게 되면서 한 먹성 하는, 그야말로 위가 큰 가족들이 한 데 모였다. 회사를 쉬게 된 김에 이모가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한 것이다. 이모가 오면서 노동력을 얻은 위’대’한 가족들은 한 끼를 다섯 끼 같이 준비하는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속이 꽉 찬 대왕 만두를 백 개 넘게 빚기도 했고, 매주 샌드위치 스무 개에 감자 샐러드 십 인 분 씩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웨지감자튀김을 만들기 위해 감자 한 박스를 튀기기도 하고, 기름을 쓰는 김에 닭과 도넛도 한 통씩 튀겼었다.



“… 우리 어디 피난 가?”



정말이지 요리한 음식을 각각 널따란 접시에 산처럼 쌓아놓고 보면 당장이라도 피난길에 오를 사람들 같았다. 엄마랑 이모도 푸짐한 음식 더미를 보면서 비상식량이라도 준비하는 것 같다며 까르르 웃었다.



홀그레인 머스타드, 치즈, 닭가슴살, 양배추, 양상추, 토마토,     양파, 딸기잼이 들어간 위대한 가족들의 샌드위치
완벽하게 맛있었던 도넛 산




매번 일을 크게 벌여서 피곤했던 걸 생각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손이 큰 가족들이랑 요리를 하다 보면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당시 학기 중이었던 나는 평일에 수업을 듣고 과제의 홍수에서 허덕이다 보면 주말 아침은 물에 젖은 휴지 뭉텅이 마냥 침대에 철버덕 눌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토요 요리를 시작하면서 강제로 일어나게 되니 주말 오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식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재료들을 어떻게 손질해야 되는지, 간은 어떻게 맞추는지 등등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리 상식들을 배웠다. 또, 손수 요리를 했는데 그 요리가 맛있으면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 괜히 다른 일들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덤으로 가족들이랑 요리를 하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항상 늘어져 있던 주말 오전이었는데도 정신이 또렷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이모 여서 그 시간들이 내적인 충만감을 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모는 마음으로 우리 자매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렸을 때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과 나를 키우다시피 한 제2의 엄마이다. 그리고 늘 곁에서 우리 가족에게 힘을 주고 싶어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나와 결이 다른 부모님이나 동생에게는 공감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들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모는 성격도 워낙 밝고 천성 자체가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데다가 입담까지 좋아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이모와 주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리 집도 전보다 활기차 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물론 토요일의 가족 식사가 항상 이상적이고 생기가 돌았던 것만은 아니다. 엄마의 건강한 음식에 대한 한결같은 훈수는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 걱정하는 마음인 건 알지만 반복적인 잔소리를 듣다 보면 가끔 토이스토리의 감자처럼 귀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 모두가 만족스러운 잔소리 타임을 가질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다행히도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들보다 즐거운 순간들이 훨씬 많았다. 요리하는 중간중간 장난치는 것도 재미있었고, 함께 카페 가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것도 즐거웠다. 게임을 시작하기만 하면 가족 간의 정이라고 는 온데간데 없어지는 점당 백 원짜리 화투도 재미있었다. 덕분에 돼지 저금통이 배가 불렀다. 만날 때마다 재미있는 토요일의 위’대'한 가족 식사는 이번 학기 내 일상의 환기였고 어느새 계속해서 활기를 주는 일상이 되었다.




벌써 토요일이 돌아왔다. 우리 ‘욕망 덩어리’들은 소박하게 묵사발과 절인 김치, 그리고 후식으로 비빔국수를 먹기로 했다. 이번 주는 동생은 없지만, 남은 ‘욕망 덩어리’들은 식욕의 불꽃을 활기차게 태우며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돌아온 토요일에 먹은 내가 만든 야채 가득 묵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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