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at Californian have taught me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바를 운영하던 스물아홉에 퇴근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정이 훌쩍 넘어 쓰는 글들은 온갖 추상적인 표현들과 자신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메타포의 집대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권의 소설을 끝낼 때마다 본인이 쓴 이야기를 영어로 번안하기 시작했다. 일본 태생인 그가 영어에 능통할 리 없었기에, 그렇게 완성된 ‘영문 소설’은 매우 간결했다. 자신이 아는 한정된 단어와 문법 내에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가 되었다. 그는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었다.
나는 Rob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마치 영어로 일본어를 번안하는 무라카미가 된 것 같다. 내 머릿속은 너무 복잡하고 모순 투성인데 이런 잡생각을 영어로 옮길 때마다, 실력의 한계 때문에 되려 나의 문장은 간결해진다. 그러다 보면 내 진심에 가닿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지금 느끼는 결핍은 뭔가, 이게 진짜 내가 바라는 걸까?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하게 된다. 만약 한국어로 생각하거나 말했다면, 온갖 추상어와 유려한 핑계로 범벅됐을 문장들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아시아권의 유명한 소설가로 남을 수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스스로 개척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출판사를 돌며 자신을 프로모션했다. 물론 미국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동양에서 온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냉정했다. 그러나 그의 실력과 열정과 도전의식에 반했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 무라카미는 동아시아권을 넘어 세계 문단의 거장이 됐고, 노벨 문학상의 단골 후보자가 됐다.
적어도 나한테 있어 무라카미가 노벨 문학 수상자가 되느냐 아니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세계 문학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솔함과 도전정신이 부럽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강단이 부럽다.
Rob 아저씨는 나도 몰랐던 나의 내면을 들춰낸다. 그래서 때때로 전기 충격을 받는 것 같다. 아저씨의 한 마디 말이 내 가슴을 떨리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일 년 후 독일 옥토버페스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나다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