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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클럽에서 춤추는 영상을 올리는 언니가 있다. 직장 동료였는데 워낙 캐릭터가 독특하고 또렷해 캐릭터 하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나는 금세 언니와 친해졌다(고 혼자 믿고 있다).
인스타는 페이스북과 좀 다른 점이 있다. 페이스북을 지나치게 자기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가끔 통찰과 감상을 빙자한 홍보, 자신을 과대 포장해 발생하는 인지 왜곡을 보게 된다. 아,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다. 대개는 진실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들이다. 나도 좋아요를 꾹꾹 누른다. 그러나 간혹 그런 글들이 피드를 장악하면 불편하다.
인스타는 좀 다른 기능을 발휘하는데, 자기 자랑이 직선적이고 아마추어적이란 것이다. 아마추어적이라는 건 다른 요소들로 자신의 가치를 포장하지 않는단 뜻이다. 스펙이나 직장이나 인간관계나 좋아요나 공유 수 뭐 이런 것 말이다. 인스타는 비교적 에둘러 자기를 자랑하는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잘난 점을 부각해서 사진 한 장, 한 두 마디, 해시태그 두세 줄로 표현하는데, 나는 그게 차라리 솔직해서 편하다.
언니는 영혼이 자유롭다!
자신의 영혼이 자유롭다는 걸 직선적이고 아마추어적이게 인스타에 올린다. 스토리는 매일 ON AIR다. 지금 보고 있는 미국 시트콤, 바에서 춤추는 자기 모습, 아이패드로 그린 일러스트, 초밥 사진이나 영상이 주 콘텐츠다. 언니 피드에는 홍콩 여행 갔다가 멘붕한 사연을 영어로 적은 일기도 있고, 시~~~~~~~~~~원한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자전거 타는 사진도 있다.
관종이기도 하고 허세이기도 한데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솔직해서. 잠깐. 나는 스토커가 아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언니의 기묘한 인스타 피드들을 하나하나 복기해보니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 언니가 최근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언니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하자 네가 내 역사를 알아서 그런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ㅋ 하고 되받는다.
언니와는 야근한 뒤 힘든 일, 속상한 일을 쏟아내 놓고선 또다시 광화문 24시 할리스에 가 꾸역꾸역 일을 하다 오곤 했다. “클럽 가자!”고 하면 죽어도 직장 동료랑은 안 간다고 못박으면서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해 “이태원 고?”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내 앞에서. 쳇.
2019년에는 원하는 걸 추구하기보다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탈출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언니가 원했던 건 일을 통한 자아실현. 글 쓰는 일을 관둔 뒤로 자아실현은 개나 줬다는데, 이상한 일이다. 언니가 스물하나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스물다섯 스물여덟에 쓴 글을 다 봤는데 자아실현은 개나 준 뒤 쓴 요 글이 내가 본 것 중에 최고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되는 건가, 싶다가도 이 언니는 마침내 언젠가는 아티스트가 되어 있겠단 예감이 든다. 그림 그리는 아티스트든, 글 쓰는 아티스트든, 디제이를 하고 있든, 어디 가서 플라멩고를 추든 아무튼.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뭐라도 돼 있지 않을까?
스토커 기질을 발휘해 인스타에 다시 들어가 보니 댓글에 “쿨가이”라고 난리다.
쿨가이 언니야. 이제 나랑도 이태원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