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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Sep 22. 2020

취미를 대하는 자세

힘들어 죽을 것 같고, 잘 못해서 분하더라도

취미의 시대다. 운동, 독서, 언어, 커피, 요리, 도예. 생각나는 것만 해도 끝이 없다. 누구는 타로와 사주를 공부해 지인의 미래를 점쳐주고 배우의 꿈이 없는데도 연기를 배운다. 사과 궤짝을 책상으로 쓰고 공부를 했다던 일화는 옛날이야기다. 이제 혼자서 하는 것만으론 재미도 없고 능률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찾는다. 나를 가르쳐줄 사람, 함께 취미를 즐길 사람. 모임 기반의 서비스가 많아지고,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앱도 생기고, 커뮤니티도 늘어나고, 그 커뮤니티로 비즈니스도 한다.


정말 좋은 시대다. 우리는 높아진 삶의 질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좀 깨달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취미 찾기 현상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어느 정도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똑같은 일과, 졸업-취업-결혼-육아 코스로 이어지는 조금은 예견된 삶의 과정, 변화를 원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 단조로운 삶에서 어떻게든 재미를 찾기 위해 새로움을 좇는 건 아닐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다섯 명에 한 명 정도는, 혹은 취미를 찾는 수많은 동기 중 몇 퍼센트쯤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게 아쉽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미를 원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고, 지루해 죽을 것 같은 일상에 가뭄의 단비가 되어주는 것도 사실이니까. 올 1월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취미를 찾아 나섰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재미를 느끼고 싶었고, 나에게 활력을 주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댄스 학원을 찾았다. 등록하고 온 날 가슴이 설렜다. 새해를 댄스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맞는다는 게 기뻤다.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여섯 번 학원을 다녀온 뒤 나는 그만뒀다. 등록 전 꼼꼼히 상담도 받았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도 했는데, 6개월 특가 프로모션에 혹해 열댓 명이 참석하는 수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배울 수도, 즐길 수도 없었다. 그저 해보고 싶어서, 재밌어 보여서 했더니 재미보단 찝찝함이 앞섰고, 돈도 잃었다. 그때 느꼈다.


재미 한 스푼 맛보겠다고 다 취미가 되는 건 아니구나.

무작정 재밌어 보여서 도전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구나.

아, 경박한 자세로는 곤란하다.


몇 달 뒤 발레를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일을 처리해버리는 나답지 않게 거금을 들여 여러 선생님들에게 원데이 클래스를 받았다. 레슨 방식이 가장 빡세고, 서비스 마인드로 나에게 호감을 줄려고 하지도 않는 약간은 뻣뻣해 보이는 선생님과 함께하기로 했다. 빡세게 나를 굴릴 선생님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4개월째 발레를 배우고 있다. 출근 전 30분씩 배운 동작을 복습하며 뿌듯해했는데, 선생님이 연습 안 해온다고 혼을 내기에 화가 나서 다음날부터 한 시간씩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했다. 무리한 탓인지 두 달 전부터는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겼다. 물리치료를 받고 스트레칭을 조절하며 하고 있다.

정말이지 경박한 자세로는 곤란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해봐. 나와 맞지 않으면 다른 걸 찾으면 되니까.


요새 미디어에서 자주 듣는다. 울림이 있는 말이다. 일단 해보고 안 맞으면 관두면 된다. 도전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런 위인이 못되는구나, 싶다. 모두가 나와 같진 않을 것이다. 취미 생활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기준을 높일 필욘 없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만으로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걸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처럼 뭘 잘 못하는 사람은 그게 안 된다. 적당히 하는 것으론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힘들어 죽을 것 같고 선생님이 혼을 내서 분하더라도, 제대로 해내고 싶다. 살면서 중간에 포기한 것이 하도 많아 내가 선택한 취미까지 '그저 그런 상태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공수가 많이 드는 일이다. 사과 궤짝을 책상 삼아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대하고 싶다. 취미든 일이든.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쿨하게 그만뒀던 적이 무수히 많았지만, 이제는 마음먹은 일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다. 그 끝에 뭐가 있을까? 아직 발레 그만 안 뒀냐는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예순 될 때까지 하려고요. 몇 년 뒤에 공연 티켓 줄 거니까 좀만 기다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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