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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식 Jan 24. 2021

미안함과 고마움의 연말정산 시즌

All I Want For Christmas


크리스마스도 다 지난 마당에 무슨 캐롤이냐면.


회사 (정확히는 팀의) 분위기가 이래저래 심상치가 않아, 사무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답답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평소와 달리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겠고, 오가는 말들에 마음은 심란하니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워낙 감정 정돈을 잘 못하는 편이라, 보통 폭음으로 스트레스를 달래곤 하는데 (..) 이건 뭐 한낮 근무 중에 술을 마실 방법도 없고 어쩌지 싶다가 대학 시절 특급 비법이 생각났다.


그건 바로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듣기.


매년 11월부터 스멀스멀 차트에 오르기 시작해,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빌보드 Hot 100의 50위 안에 재진입한다는 곡. 한국의 봄 시즌에 봄의 캐롤이라고 불리는 ‘버스커버스커 - 벚꽃엔딩’이 있다면, 빌보드의 겨울에는 이 곡이 있는 셈. 가수 본인의 싱글 중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인 건 물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 10위 안에 들며, 그 외에도 엄청난 레코드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세상엔 여러가지  '봄 캐롤'이 있고,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를 가장 좋아한다. '이 차를 다 마시고 봄 날으로 가자'


술 마시러 뛰쳐나가고 싶은데 꾹꾹 참아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 시험 기간. 루프를 걸어놓고 몇 시간씩 듣곤 했다. 학사경고를 받았던 학기와, 겨우 학사경고를 면했던 학기들을 만회하고 졸업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심통난 나 자신과 싸우기 위해 일종의 Christmas Spirit을 채운달까. 그래서 봄꽃이 떨어지는 4월 중간고사 기간에, 한 여름 땀 뻘뻘 흘리며 계절학기를 들을 때에도, 김민기 선생의 가을 편지를 들으며 소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스산한 10월 마저 항상 캐롤을 듣게 되었다는 그런 사연.


Mariah Carey -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다행히도 머라이어 캐리 효과는 훌륭한 것이어서, 차임벨 사운드를 듣다 보면 나도 몰래 어깨가 들썩이며 리듬을 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 만나던 사람과 큰 다툼을 하던 심각한 상황이었던가. 카페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에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망할 어깨 덕분에 (?) 곤란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만큼 마법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 꿀꿀한 기분이나 지독한 스트레스에는 이 노래만한 극약 처방이 없다.


가사만큼 사랑스러운 캐리 언니. 왼쪽은 1994년 , 오른쪽은 2010년의 <Merry Christmas II You>


캐롤에는 어떻게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건 밝은 멜로디나 차임벨 사운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가사 때문일 것이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만 반복해서 말하는 노래도 있고, 아기 예수를 믿지 않는대도 대뜸 Joy to the world라고 신나게 선언하듯 말해버니 그냥 전염되는 기쁨도 있고.


그리고 21세기의 대표 캐롤 이 노래 역시 엄청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가사를 가졌다. 반복해서 말하는 내용은 딱 하나. 크리스마스에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my baby, 당신만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의 선물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필요 없으니, 오직 당신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싶다는 고백까지.


일년 내내 대충 자기만 생각하고 살다가, 연말쯤 되어서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반성문 같은 노래이기도 하겠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연말 정산 같은 거라고나 할까나. 어쨌거나 귀여우면 된 거 아닌가. 일 년에 한 번씩일지언정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핑계로 오는 연락이 내심 반갑고 좋았던 맘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올 한 해도 연말에 정산받을 수 있을 정도는 주변을 돌보며 살아야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캐리 언니의 시원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짐해본다.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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