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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지 Jun 24. 2020

봐, 여자 뽑으면 안 된다니까.

가끔은 나도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은 이거였다.


사실, 네가 여자라서 채용을 안 하려고 했어



모진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같지만, 나의 사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고 채용 뒷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다.


나의 채용과정에서는 최종면접까지 온 면접자들을 대상으로 팀장이 면접에 참여하여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지금의 팀의 팀장이 마지막 면접을 채점하는 5인 중 한 사람으로 들어왔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팀장이 나를 뽑으려 하자 사수가 내가 여자라서 못 버틸 것 같다며 달갑지 않아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든 여자 사원들이 못 버티고 바로 나갔기 때문에 뽑으면 다시 뽑아야 될 것 같아서 반대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뽑은 신입사원은 남자였고, 그는 단 몇 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내가 최종면접자들 중 가장 좋은 면접점수와 인성검사, 적성검사 성적을 보유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나를 뽑을 것을 망설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나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가지고 태어난 성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이로 인해 나는 실력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평가받아야 했다. 그동안은 내가 못해서, 부족해서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던 수많은 면접 중 이런 것들이 또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되었고 금세 우울해졌다.

이 이후로 나의 세상은 크게 변했다.

단지 성별을 이유로 누군가가 평가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를 꽉 깨물고 버텼다. 그가 틀렸다고 증명해내야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내가 신입이라 잘 못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주눅 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봐, 여자 뽑으면 안 된다고 했지?”

이 한마디를 안 듣기 위해서 일하는 스타일은 점점 터프해지고, 다른 부서원들에게 그 신입은 버릇없다는 말도 들었다. 일 못한다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서 선임들이 늦게까지 남아 일하면 나도 절대 빼지 않았다. 선임들의 전배로 일을 두배로 떠안게 돼도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도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있고 싶었다. 사수는 그 말을 했던 사실을 이미 새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한마디로 인해 내가 회사에서 존재가치가 있음을 증명해내야 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는 내가 디폴트가 아닌 ‘예외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예외적인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으니까. 이외의 선택지는 오직 죄책감뿐이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한 사람의 위로가 되기 위해 매일 조금 더 버텨보자며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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