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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지 Jun 19. 2020

당신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일까

얼마 전에 사내 심리상담실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왔다. 최근 몇 달간은 나의 무기력이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심리상담사가 나의 상태를 진단하기로는 나의 스트레스가 상위 5%에 속하는 과다한 상태라고 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주요하게는 완벽주의에서 비롯한 우울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행복에서의 완벽주의는 행복의 기준이 높아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왔는데도 행복하지 않아 너무 절망적이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타인의 입에서 들으니 약간은 더 비참했지만 나의 상태를 인정하게 되었다. 항상 나 자신을 버티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바뀌기 힘들겠구나 하고 이제 자리를 뜨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상담사의 질문이 나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어렸을 적에 꿈이 뭐였어요?”


어렸을 적 꿈 질문이라니.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꼭 무엇인가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별로 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아무래도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의사였나.
아 맞다. 나는 작가를 하고 싶었다.

“이제는 생각도 안 나는데.... 아마 작가요?”
“아.. 작가가 되고 싶으셨구나. 작가가 꿈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꿈과는 조금 먼 일을 하고 있네요.”

지금의 나는 정말 평범한 회사원이고, 예전에 내가 꿈꾸던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 그런 일은 못해도, 최소한 나는 그 시절에 꿈꾸던 어른인가? 내가 꿈꾸던 어른은 혼자서 무엇이든 척척 해내고, 두려움도 없는 어른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외롭고 두려움이 많은 어른에 불과한 것을 보니 꿈꾸던 일도, 꿈꾸던 어른도 못된 것 같아 9살의 나에게 미안해졌다.

“글을 써보는 게 어때요? 글쓰기는 스트레스와 우울감 해소에 큰 효과가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거예요. 글쓰기 치료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된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에요.”

이래서 상담사를 만나나 보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글쓰기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고, 큰 스킬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한번 해볼까?


나는 그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글은 이전에도 조금씩 써왔던 것은 있었다. 혼자만 글을 쓰고 만다면 정기적으로 쓰지도 못할 것 같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싶어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1인분만큼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나의 10%는 작가일 수도 있는 거고, 5%는 플로리스트일 수도 있는 거고, 20%만큼은 회사원일 수도 있는 거다. 하나의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이미 실패한 어른이니까. 나의 일부는 여전히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플로리스트인 내가 있고, 작가인 내가 있다. 1인의 내가 온전히 작가가 아니어도, 나의 10% 작가가   있어도 나는 어릴  꿈을 이루고 사는 거라 여길  있게 되었다.

생각이라는 것은 무섭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9살의 나는 사실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파일럿도, 의사도, 문구점 주인도, 요리사도, 이 중에 아무것도 될 수 없어도 두려움 없이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때의 나를 위해 꿈을 이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실패해도 작가로서의 내가, 플로리스트로서의 내가, 어쩌면 나중에는 도예가인 내가 자신을 지탱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부분의 내가 실패해도 나는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서 성공할 것이니까. 삶에 대한 두려움이 또 다른 기대가 되었다. 내일 다가올 일을 기대해본 적이 언제인지 역시 기억도 안 나지만, 요즘은 내일을 기대하는 내가 낯설면서도 슬며시 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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