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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지 Jun 13. 2020

이런 말에 상처를 받아야 할까

나를 지킬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나의 검은 개를 키우는 데는 의심 만한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툭 던진 한마디에 ‘내가 이런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마음에는 의심이 생겼고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거의 상처 받지 않게 되었는데, 내가 첫 회사에 다닐 때였다.

그 회사에 들어갈 당시 나는 정말 절박했다. 이미 대학은 졸업했는데 취직은 안되고, 마음은 이미 지옥에 있었다. 매일 채용 사이트를 뒤지며 ‘귀하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라는 메일을 받아 트라우마가 생긴 나머지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와중에 딱 하나 붙은 회사가 있었다. 나의 첫 회사다. 쥐꼬리만 한 자존심에 너무도 들어가기 싫었지만 노는 것보다는 백배 나으니까.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다니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3개월 동안 나를 수습사원으로 명하고 3개월 이 지난 후 최종적으로 채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다른 회사처럼 업무적으로 큰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채용이 되는 시스템이다. 나 역시 수습 이후 계속 다니지 못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3개월 다닌 신입사원이 사고를 쳐도 어떤 큰 사고를 칠 수 있으랴.


3개월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은 일이 너무 많아 힘에 부치는 날이었다. 머나먼 이 지점까지 채용담당자 전무가 찾아왔다. 일이 산더미 같은데 나를 회의실로 몰아넣고는 차를 한잔 마시자고 했다. 그리고는 소위 면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너 이제 3개월 지나서 수습기간 끝난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사실 당연하게 여긴 사실에 의문을 붙인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채용할 생각이 없는 거니까.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신 걸 보니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요?"
"네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네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냐.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빠르게 되돌아보았다. 글쎄, 삼 개월 차인데 일을 잘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해고당할 정도로 잘못하나?

"저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다른 지점 사람들 얘기는 다르던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같이 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 걸까. 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제가 잘못했다고들 하십니까"

그 질문은 유도질문에 불과했던지 꽤나 당황하며 내가 태어나서 들은 대답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다.

"사람들이 네가 막내인데도 인사를 안 하고 다닌대 인사를"
"...."
"...."
"그럼 제가 만약 잘리게 되면 인사를 안 하고 다녀서 잘리는 겁니까? 누가 봐도 인사를 잘하고 다녔는데요."
"...."


나는 서비스직에 있었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인사를 잘 못했다면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는 손님에게도 한 번도 밝게 인사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직원들에게도 인간대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건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를 상처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혐오감이 들었다.

스물여섯 살의 내가 뭘 잘못했길래 서른 살이나 차이가 나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냥 내가 싫었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에는 복종해야 하는데 그 지시에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이 싫었던 거다. 다른 직원들보다 자기에게 먼저 와서 인사하지 않은 것도 싫고, 평소에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나를 여러 번 나무랐음에도 불구하고(이전에도 첫 출근날 준비한 인사멘트가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며 나를 윽박질렀던 적이 있고, 강제로 지인 상품을 판매할 때 내가 사지 않은 것을 이유로 눈치를 준 적도 있었다) 기죽지 않는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먼저 저랑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의 말씀만 듣고 저를 자르려고 하시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저를 해고하고 싶으시면 그냥 해고를 하시면 됩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은 사실도 아니고요. 그리고 만약 제가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마시고요"

긴 정적이 흐르고 그때부터 슬프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억울하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진짜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싶었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내 앞에서 나를 자르니 마니 해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 당장 관둔다고 하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는 더 싫어서 그 자리에 꼭 붙어 앉아서 얼굴이 터질 때까지 울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6개월을 더 다녔고 회사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 6개월을 더 다니기 위해서 나는 관심 사원으로 찍혔다. 성추행 등 조직에 해악을 끼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나 받는다는 대기발령 상태로 눈칫밥을 먹어가며 그들이 말하는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 이후 나에 대해 어떤 말이 나오던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할까. 더는 나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확실한 명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형편없이 살지는 않았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았으며 인생에 대해 책임감 있게 살아왔다. 난 내가 당한 그것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의미 없이 지껄이는 이야기로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잘 아니까.


<나를 지키는 법>
1)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상처 받지 말 것
2) 누군가 나를 형편없이 대하게끔 방치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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