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

by 쓸쓸

춥다. 겨울치고는 따뜻하다는 뉴스를 봤지만 그래도 춥다. 책 읽는 것도, 외국어 공부도 이불 위에서 한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전기장판에 엉덩이가 붙어버릴 것 같다.


배가 고프다. 팬에 대패삼겹살과 양배추를 구운 다음, 렌지에 돌린 컵떡볶이 위에 올린다. 떡보다 고기가 훨씬 많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되려나. 어쨌든 행복하다.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며 천천히 먹다 보니 배가 부르다. 이제 이 닦아야 하는데. 텀블러 씻고 콤부차도 새로 타고 싶은데. 몸이 무겁다. 해야 할 일들을 반복해서 말한다. 이 닦아야 하는데. 콤부차 마시고 싶은데. 몇 번을 그러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짝꿍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 이 닦아 줘. 힘들어.

당황하는 짝꿍에게 한 번 더 말한다.

예전에 해줬잖아.


우리는 서로의 이를 닦아 준 적이 있다. 치약을 올린 상대의 칫솔을 손에 들어 얼굴을 마주 보고 아 해 봐, 이 해 봐, 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어머니와 서로 발을 닦아 주던 것과 비슷하다. 애정을 듬뿍 담은 일이다.


짝꿍은 바닥에 붙어있는 나를 일으켜 화장실 앞까지 데리고 간다. 바쁜 짝꿍을 계속 괴롭힐 수는 없어 혼자 이를 닦고, 텀블러도 씻은 뒤 콤부차도 탄다. 얼음도 넣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울 때, 예를 들어 운동하러 나가기 힘들 때, 현관문 앞에서 운동화 신는 것까지 해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화장실 문 앞까지 간 이상 양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짝꿍에게 아빠의 역할을 바란다. 짝꿍도 예전엔 나에게 엄마의 역할을 바랐던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지만, 내면의 어린아이가 불쑥 튀어나올 때는 서로에게 의지한다. 또 자발적으로 그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아프면 안 된다고 걱정하거나, 추우니까 핫팩을 챙겨 나가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는 순간 같은. 어찌 됐든 서로에게 보호자니까.


강아지는 나를 보며 낑낑대고, 나는 짝꿍에게 응석을 부린다. 이제 내가 짝꿍 응석을 받아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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