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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by 쓸쓸

웹툰에 빠졌다. 소설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웹툰이라니. 이러면 안 되지만 일어날만한 일이니까 일어나는 거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시작은 영화 <얼굴>. 개봉 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가기 싫어 버티고 있었는데, 드디어 유튜브에 나왔다. 영화는 세 번이나 봤고, 감독이 그린 원작도 책으로 구매해 완독 했다. 만화가 이렇게 재밌을 일인가. 완전 신세계다.


나는 원래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친구들과 같이 대여점에 들리는 게 루틴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만화책을 고를 때 나는 소설이나 패션 잡지를 봤다. 글과 그림을 같이 보는 게 피곤하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묘사가 잘 된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장면을 상상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도 몇 없다. 가장 재미있게 본 건 <데스노트>. 심리 싸움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번에 <얼굴>을 보고 만화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도서관에서 작법서들을 여러 권 빌려 읽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스토리를 짜고, 어떤 장면을 선택할지, 뷰는 어떻게 할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작가가 정하고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게 대단했다.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을 짜는 어려운 일을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좋아졌다. 만화가. 뒤늦게.


<얼굴>에 발 하나를 아직 걸쳐놓고, 새로운 웹툰을 보고 싶어 결제를 한 작품이 있는데, 제목은 <당신의 과녁>. 일상 중 틈틈이 보고 있는데 재미있다. 스크롤을 마구 내리지 않고 나름 꼼꼼하게 본다. 블록이 어느 방향으로 길게 되어있는지, 말풍선은 어디 있는지, 다음에 오는 장면은 이전의 장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인물이 어느 부분까지 그려졌는지 등등을 본다. 너무 재미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엄지 손가락이 제멋대로 스마트폰 화면을 재빠르게 움직일 때가 많지만 정신 차리고 놓친 부분부터 천천히 훑는다.


벌써 12월이다. 이번 주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 들어가, 제주도에서 온 감귤을 까먹으며 웹툰을 봐야지. 재밌게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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