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

by 김한슬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한다.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 말은 대개 위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단정적인 문장이다.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아물지 않던 것들도 저절로 엷어진다고 믿는 태도.

하지만 모든 시간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들은 나를 앞으로 밀어주기보다 제자리에 붙들어 둔다. 달력이 몇 장이나 넘어가도 마음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멈춰 있고 계절이 바뀌어도 풍경만 달라질 뿐 속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과 내가 나아진다는 사실이 꼭 같은 말은 아니다.

시간은 때로 중립적이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편이 되어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척 등을 돌리기도 한다. 잊히길 바라던 장면은 더 또렷해지고 무뎌지길 바랐던 감정은 오히려 결을 드러낸다. 지나가 버린 날들 위에 먼지가 쌓이듯 기억도 희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기억은 자주 닦인 유리창처럼 맑고 뚜렷하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은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꺼내 드는 문장인지도 모른다고. 당장 손 쓸 수 없으니 흐름에 맡겨두자는 체념에 가깝다고. 기다림이 능사가 아닌 순간에도 우리는 기다림을 처방처럼 권한다. 그러니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괜찮아진다는 건 완전히 달라지는 일이 아니라 예전과 같은 온도로 그 일을 떠올리지 않게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통증이 사라지는 대신 모양이 바뀌는 것. 날것이던 감정이 단단해지는 것. 시간이 내 편이 아닐 때조차 나는 나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시간을 믿기보다 하루를 통과한 나 자신을 믿어보려 한다.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가도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고 있을 테니까. 괜찮아지는 방식이 꼭 남들 말과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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