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by 김한슬



자존감이 낮아졌던 이유를 곱씹어 보면 그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서였다. 나는 늘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기준. 스스로에게 세운 보이지 않는 선들이 하루하루를 조용히 압박했다. 기대가 높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기준이 높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그 기준은 나를 더 나아가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 기준 앞에서 나는 자주 비교했다. 다른 사람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나란히 놓고 보았고 보이는 결과만으로 나를 평가했다. 잘한 것보다 부족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미 지나온 노력보다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지점에만 시선이 머물렀다.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반복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평범한 하루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마모시키고 있었다.

그 시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어떤 사람이 되지 못했는지가 더 선명했다. 괜찮다고 말해주기엔 내 기준이 너무 높았고 쉬어도 된다고 인정하기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사실조차 자책의 이유가 되던 때였다. 그런데 아주 천천히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말들이 있었다. 크지 않았고 과장되지도 않았다. 특별한 위로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무심하게 건네진 문장들이었다.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보다는 지금의 나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말들은 나를 단번에 바꾸지는 못했지만 텅 비어 있다고 믿었던 곳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 여백에 나를 조금씩 내려놓았다. 스스로에게 붙이던 엄격한 기준을 잠시 옆에 두고 결과보다 과정에 시선을 두는 연습을 했다. 여전히 기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기준이 나를 몰아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를 채운 것은 대단한 확신이 아니라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가능성이었다.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흔들린다. 지금도 나는 나에게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나를 증명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도 괜찮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자존감은 갑자기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 위에 조용히 쌓여가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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