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애 칼럼니스트의 반성

페미니스트의 지난 연애 돌아보기

by 벼슬기

브런치를 반성과 각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싶지 않았건만,

왜 떠오르는 것들은 죄다 부끄러운 기억 뿐일까.


-

나는 연애 칼럼니스트였다. 2016~2017 1년 동안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라는 이름의 칼럼을 매주 연재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소싯적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으로 보던 대학생이 자라 캐리 만큼 휘황한 라이프는 누리지 못했으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겪는 서른 즈음의 소소한 연애 라이프를 담은 칼럼이었다.

사만다를 뺀 세 명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섹스 앤 더 시티의 히로인들. 한 때의 내가 참 사랑하던 언니들이었으며 지금도 애증의 관계이기는 하다.


칼럼은 곧 내 연애 생활 분투기이기도 했다. 나름 모범생 기질이 있는 나는 연애도 노오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지적이며 사회적 명예를 거머쥔 남성에의 로망이 있던 나는 그 즈음 그들과 만나 사귀는 일에 혈안이 돼 있었다. 똑똑한 남자를 만나 지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 그 똑똑한 남자가 여차하면 모든 일을 다 그만 두고 배낭여행을 제안하리만치 배짱까지 좋고 다소간의 후리함(?)을 갖췄으면 하는 게 그 시절 나의 이상이었다. 그런 인간상을 만나기 위해 소개팅이면 소개팅, 미팅이면 미팅, 이팅 앱 더와 아만다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통로를 이용해 남자 만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시 다이어트에 성공해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던 것까지 나의 붐업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나는, 이성애적 연애를 하기에 매우 부적합한 인간상이었다. 잘난 남자를 좋아하지만 잘난 남자의 자랑(또는 허풍)은 경청 못 하는 류이기도 했고, 그걸 넘어서 어떻게든 비꼬는 멘트 하나쯤은 날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싸움닭이기도 했다. 상대가 나를 방목하길 바라면서도 내가 필요할 때는 철저한 관심과 돌봄을 갈구하기도 했다. 서른 넘어 한 남자와 100일을 못 넘기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제발 남자랑 자존심 싸움 좀 하지 마라"고 했는데 인생에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나는 수긍을 못 했다.


그렇게 패배의 기록이 쌓여가며 나는 일종의 루저 정체성을 쌓아나갔다. 루저라는 패배 의식, '내가 뭐 어때서' 하는 알량한 자존감, 수능 문제 풀 듯이 남자를 만나다 보면 궁극의 남자를 만나리라는 희망,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 자체로 내 능력이라는 생각으로 머리는 뒤범벅이었고, 친구들한테 혼나면서는 더욱 주눅이 들었다. 칼럼은 연애 루저의 분투기인 한편으로 '내가 뭐 어때서!'라는 항변, 밴댕이 소갈딱지인 실제의 내가 아닌 상상 속 대인배로서의 나까지 섞여 더욱 어지러웠다.


그러나 연애의 물꼬를 트는데는 다소간 칼럼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느 파티든 가면 '연애 칼럼니스트'라는 자기 소개만으로 나는 주목을 받았다.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가 받던 주목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 말로 나에게 관심 갖던 남자들은 화려한 밀당의 기술 혹은 침대 위 기술을 가진 여자로 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내게 그런 게 있을리 만무했고 나는 남자를 만나면 애정 표현에 소극적이면서도 수틀리면 쌈닭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런 내게 "칼럼 보고 기대했는데 전형적인 소극적 여성상이라 실망했다"는 말을 남긴, 지금 내 생각 기준 미친놈도 있었다.


이렇듯 남성을 향한 인정 투쟁의 장에서, 나는 정말 피터지게 열심으로 임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정말이지 최선을 다 했다. 그래서 나의 거의 모든 칼럼의 마지막에는 "연애는 노오력"이라는 말이 실렸지만, 정작 노오력하는 나는 보답을 받지 못해 억울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정말 주체적인 여성이었을까. 내가 만나는 남자의 스펙과 나의 성공을 동일시하는 사람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돈이 많거나 잘생긴 남자의 영역이 아니었을 뿐 매우 매우 천재적으로 똑똑하지만 바람처럼 배낭매고 떠날 결단력과 여유로움마저 갖춰 내 인생을 적극적으로 견인할, 또 다른 의미의 백마 탄 왕자를 바라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 궁극의 남성상을 만나기 위해, 나는 수학 문제 풀 듯 부단히 전술복습을 해가면서 남자 가려내기에 이은 간택받기에 골몰했다는 것이 지금의 진단이다.


간택받기의 정서는 소개팅으로 만난 남성 뿐 아니라 일상에서 만난 남성들에게도 통용됐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 남성 지인들은 잠재적 연인 내지는 잠재적 연인을 소개시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의 눈에 잘 들고 싶어했다. 또래 집단에서 인기 많은 여성들의 모습도 끊임없이 주시했다. 그 여성들을 따라하기에는 나의 기질이 맞지 않아 번번이 포기했지만, 그걸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체내에 피곤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연애는 노오력이라며 연애하지 않는 이들을 나도 모르게 루저 취급했던 내 칼럼을 반성한다. 이어 남자에게 인기 많은 여자가 되기 위해 성적 규범에 스스로를 구겨넣었던 지난날의 나 또한 반성한다. 내 인생을 한 번에 바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던 것에도 반성한다. 자고로 사람의 인생이란, 한 사람의 출몰로 송두리째 바뀌어선 안 되는 것이며 바뀐다 한들 그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지지기반이 부실했다는 것으로 밖에 통용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람 관계는 절대 고3 때 갖고 다니던 수학 문제 1000제 풀 듯이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남의 눈에 들고 싶은 삶은 준거집단을 바꿔 계속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성애 연애의 장에서 남자 눈에 들기 위한 삶으로부터는 많이 놓여났다고 느낀다. 내 인정 투쟁의 장으로서 아직도 웹상에 남아있는 칼럼들이 부끄럽다고 느끼지만, 그 때의 나도 그러려니 눈 감아 줄 수 있는 아량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조금은, 그렇게 되고 있다.


내 애증의 '러브앤더시티' 애프터는 이렇게.


칼럼 연재 당시 쓰던 스산한 이미지의 배너. 이것만은 지금도 맘에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기자가 페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