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의 비용

페미니스로서 맘 상하지 않기

by 벼슬기

시발비용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다. 나의 스트레스 탓에 발생한 비용이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응당 무언가에 비용이 발생해야 한다는 당위의 영역은 아니다. 사실은 자기 변명에 가까운 말이다.


대학에 가기까지 부모님 품 안에서의 20년을 모범생으로 살았다. 어른이 오기까지 눈 앞의 마시멜로를 보고도 얌전히 기다린 아이가 나중에 추적 조사해보니 결국 못 참고 먹어버린 아이들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참고 기다린 아이처럼. 그러고 대학에 와서는 당대의 소문난 망나니까지는 못 됐지만 제법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산 것 같다. 술 먹다 지하철이 끊기자 학교 근처 찜질방에서 누워서 식혜를 마시다 잠들고, 부러 1시간 통학을 넘어 학교까지 와 놓고서도 수업에 안 들어가는 패기 아닌 객기 등. 초중고에 다닐 때는 감히 상상도 못 했을 F학점도 맞아보고 계절학기에 추가로 돈을 들여 학점을 높였다. 그 정도면 얌전하다 하면 할 말 없지만 객기는 객기인 것이 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해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대학생이 누리는 자유라 믿었던 나는 '욕망에 충실한 삶'에 매몰된 것 마냥 지냈다.


그러나 그것도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들어간 대학 3학년부터는 끝이었다. 토익 공부를 하고 인턴을 하고 언론사 입사에 대비한 상식과 논술 공부를 해야 했으니까. 졸업하고도 2년을 꼬박 백수로 지내며 취준을 하던 나로서는 또 한 번 마시멜로를 참는 세월을 보내다(사실 그 때는 내가 당장 손에 쥘 수 있을만한 마시멜로가 없었다) 결국엔 취업이 됐다.


인고의 세월을 건너 마시멜로를 꿀꺽 하고서,

나는 돈 좀 벌었겠다 눈 앞의 마시멜로는 참지 않는 사람이 됐다. 다행히 내가 원한 마시멜로는 사이즈가 크지 않았다. 옷이나 가방, 음식 정도. 그 마시멜로가 집이나 차였으면 감당이 안됐겠다 싶지만 집이나 차였으면 되팔기도 쉽고 오히려 남은 장사 아니었겠나 싶다. 물론 집이나 차를 사려면 공부와 준비가 많이 필요했으므로 난 쉽게 취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쫌쫌따리 물건에만 더욱 집착했다.


이쯤 되서는 쨌든 '돈을 버는 나', '서울이라는 이 각박한 도시에서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나'에 취해 있어서 지갑은 더욱 두서없이 열렸다. 직장에서 각종 업무 스트레스에 찌든 나의 기분이라는 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세상은 직장만이 스트레스의 근원이 아니어서 고양이에게도 수도세를 받겠다는 집 주인 할머니, 실속없이 흐트러지는 연애사, 비루하게 여기저기 고장나는 몸까지 더해져 돈 쓸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여기에 돈을 써야만 서울씨리의 직딩으로서의 내 존재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그야말로 '시발비용'이었다.


문제는 돈도 돈이지만 나의 기분이라는 것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는 거다. 론 기분은 중요하다. 기분이 모여 인생이 되니까. 그러나 기분 그 자체에 매몰된 나날이라면. 기분을 달래고 기분을 살피고 나쁜 기분이면 그 기분에 취해 좀처럼 딴 생각은 하지 않는 삶이라면 그것은 온당한가.


나의 기분을 '모신' 삶은 단지 쫌쫌따리 물건들에 들어가는 티끌모아 태산 같은 지출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다. 기분에 집중하다 놓친 것들이 꽤 많았으니까. 친구의 관계, 부동산 전월세 계약, 상사와의 원만한 소통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결국은 내 기분만 부여잡고 나 자신을 잃어버린 날들도 잊지 않았나 싶다. 특정 사안, 특정 순간에 기분이 좋거나 나쁜 것도 나이지만 기분의 총체로서만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늘 그렇듯 멀리서 바라보면 명확한, 사안을 풀어갈 수 있는 합리와 이성도 내 몫이었던 적이 많다. 내 것이었으며 내가 본디 가지고 있었으되 쒸익쒸익 거릴 때는 알지 못했던.


글을 쓰다보니 한 마디로 나는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개의 상황에서 감정이 우선했으니. 그러나 그런 나일수록 기분지상주의자는 되지 말아야 했는데. 세상에 기분이 상할 일은 너무나도 많고 세상은, 삶은 본디 그런 것이며 기분에 가려 해야 할 일을 못해선 안 되니까. 될 일도 안 되게 해선 안 되니까.


요즘 들어 일을 되게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이런 생각도 나왔나 싶다. 어제 권김현영 선생님과 손희정 평론가님이 진행하는 유튜브 '권손징악'에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온 걸 봤다. 최근 이재명 캠프에서 활약 중인 그를 향해 당연히 "왜 이재명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이재명에 대해 성평등에 관한 기초 정보가 없었으되 관련 내용을 전달했을 때 매우 빨리 이해하고 습득한 사람, 정도로 그를 평했고 그래서 그의 캠프에 갔다고 했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가진 대통령 후보가 아닌 페미니즘 캠프에 초대된 후보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페미니스트이자 수권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성평등을 위해 한 발이라도 떼는 일'의 최전선에 있는 그의 책임감과 행보를, 그래도 나는 지지한다.


유튜브 '권손징악' 캡처

그래서인지 위의 이 멘트, 결벽증 내려 놓으라는 말, 1가지만 달라도 마음이 확 상한다는 말, 권 의원의 말이 확 와닿았다. 맘 상하지 말자. 아니 나같은 기분파가 마음이 안 상할 순 없겠지만 상한 내 기분에 지지는 말자. 때론 상한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게 있고, 그것은 대부분은 해야할 일을 되게 하는 일이다.


페미니스트로는 맘 상할 일이 더더더 많으니까, 더더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게 맞고. 마시멜로쯤이야 먹으면 그만이지만 세상엔 더 중요한 게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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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비행기 같지만 그래도 쓰고 싶으니까 쓴다. 고작 내 브런친데 뭐.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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