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페미네"
'페미 기자'가 악플을 만났을 때
지난 목요일에는 기자들을 향한 디지털 괴롭힘을 연구하시는 언론학 교수님 두 분을 만났다. 그 분들은 기자 20명을 대상으로 악플에 관한 심층 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는데 말하자면 나는 그 분들이 뽑은 표본이었다. 젠더 담당 기자로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에 노출된 사례로.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 좀 둔감해서요~~~ 별로 타격감이 없어요"로 시작했다가 끝에 가서는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정말... 타격이... 없었..나?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 분들(교수님)들이 번짓수를 잘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8년 8개월에 걸친 기자 생활 동안 꾸준히 여성 서사를 가시화했다. 1년 여 간 매주 연애칼럼도 연재했고(2016.9~2017.9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2년 반 동안 문화부에 있으면서는 페미니즘 문학과 영화를 조명하는 일을 많이 했다. 나에게 악플은 일상과 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러려니... 했지만 내 기사의 제1독자인 엄빠는 견디지 못해 '나빠요'를 누르고 대댓글을 달았던 역사. 그래서 나도 그게 신경쓰였던 역사. 그리고...
두 교수님들의 령도 하에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때는 내가 수습을 갓 뗀 사회부 사건팀 기자이던 시절이다. 당시 바이스(경찰팀 부팀장)는 나에게 "슬기야, 일베가 그렇게 난리라는데 궁금하지 않니?"라는 말을 던졌다. 그닥 궁금하지 않았지만 취재하다보니 궁금해진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자문을 받고 빅데이터 분석들 통해 몇 꼭지에 걸친 기획 기사를 완성했다. 수습 갓 뗀 기자로서는 절로 우쭐함에 취해 있었는데 송고 직전 당시 데스크가 말했다. 너는 여자 기자고, 일베가 그렇게 신상을 턴다는데 괜찮겠니. 니가 원하면 사건팀 이름으로 공동 바이라인(기사 끝에 기자 이름과 함께 이메일 주소를 명기하는 것)을 올릴 수도 있다고 했다. 순간 내 머릿 속에 떠오른 감정은 '황당'이었다. 아니 내가 쓴 내 기사에 팀 모두의 몫으로 한다고? 여기가 무슨 전체주의 사회야? 그러나 정말로 그 때는 일베에 신상털기를 당한 기자가 회사를 그만 두기도 하던 때였고, 데스크의 그 때 그 말이 나름 나를 생각하는 선의에서 나왔던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공격 무서워 개인의 결과물을 모두의 이름으로 내보내야 한다니, 이러나 저러나 황당한 상황이다. 결국 내 이름으로 기사는 나갔고, 기사 내용이 그닥 임팩트는 없었던지 별 반향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되짚어보니 내가 기자들을 향한 디지털 괴롭힘이 무서워 절로 몸을 사릴 뻔 했던 첫 사례였다.
이후 온라인뉴스부에서 연애 칼럼,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를 연재했을 때는 각양각색 악플을 받아봤다. 색깔로 치면 총천연색이었다. 회사의 노예로 사느라 연애하기 힘든 세상이라는 칼럼을 쓰면 네 얼굴이 빻아서 그렇다느니, 해외 여행 가서 만나는 짧은 연애에 관한 로망을 다룬 칼럼에는 한국에서 안 되니 외국에서 찾는다느니 하며 상스러운 성적 비방도 달렸다. 부모님의 대댓글 달기가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어떻게 그렇게 무지했나 싶게 페미니즘에 관해 잘 몰랐던 그 시절 그 칼럼은 내게도 일종의 길티 플레저로 남은 한편으로, 그런 총천연색 악플에 대한 인상도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기자인데, 내가 얼굴로 평가 받는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수준이었다.
그 시절 손수 제작한 내 연애칼럼 배너. 친구는 "잔잔해 보이지만 알고 보니 치정극인 일본 영화 포스터 같다"고 했다.
이어 문화부로 가서 문학과 영화를 맡고서, 기사 댓글은 이제 볼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기사 하나 하나의 폭발력이 컸던 사회부 때에 비해, 문화부에서 쓴 기사들은 조회수도, 댓글도 소박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문학에서는 여성 서사가 지배적이었다. 보다 자본 집약적인 영화에서는 속도가 더디지만 그래도 신예 여성 감독의 활약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문학으로 페미니즘을 배웠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윤이형의 '붕대 감기' 등이 아예 몰랐거나, 얼핏 알았으되 지나쳤던 불합리와 부조리에 관한 나의 감각을 일깨웠다. 그렇게 감화 받아 썼던 책 리뷰들, 여성 작가/감독 인터뷰에는 "페미는 믿고 거른다" 등등의 댓글만 간헐적으로 달렸다. 뭘 써도 그런 댓글만 달리니까 기자로서의 효능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이기도 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오프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내 기사를 읽었던 출판계 관계자, 작가/시인들로부터였다.
당시의 문제는 댓글 뿐만이 아니었다. 문학판에서 여성들의 활약상,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가 두드러지는 건 시대상인데 자꾸 페미니즘 책만 발제한다고 할까봐 데스크 눈치가 보였다. (실제 그런 식의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주요 문학상 수상자들이 전부 여자이듯 그 동안 물밑에 있었던 여성 서사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기계적 중립을 맞추느리 남성 작가의 남성 서사를 기사로 써야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신구, 여남 안배를 고려해 일부러라도 남성 작가의 작품을 고르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맞는 행동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열심을 다 해서 젠더연구소에 와서는 오히려 편했다. 누가 봐도 페미이니, 그냥 페미니즘 기사만 쓰면 되니까. 나는 사내 젠더연구소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바이라인에 아예 '젠더연구소'를 기재하자고도 건의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젠더연구소라니 믿고 거른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사실 이제는 내가 댓글로 욕 안 먹는 방법은 없어보여서, 어느 순간 댓글 개수와 남녀 성비, 연령대만 체크하게도 됐다. (대충 그것들만 보면 어떤 식의 댓글이 달렸을 지 짐작이 간다.) 대부분의 댓글 작성자는 남성 비율이 높고 내용은 요약하자면 '페미 OUT'이다. 교수님들의 질문 가운데 "안티 페미 세력의 댓글이 많을 수록 훈장처럼 느껴지는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절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기사를 쓴다는 무력감, 혹은 무슨 기사를 써도 '페미 OUT'이상의 호응이 없는 것에는 내가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내가 안티 페미 세력이 배설할 또 하나의 자리만 마련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미 여러 백래시들에 시달렸을 나의 취재원, 인터뷰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더러 들었다.
얘기를 하다보니 악플에 둔감한 나, 는 결론적으로는 없는 것이었다. 매번 내 저작물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무력감에 휩싸인 내가 있었다. 내가 기사를 쓰면서 매번 하는 생각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을 주고,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혐오 세력들만 과대 대표되는 댓글창을 보면서 자신감도 잃고 자기 검열도 꽤 하게 됐던 거 같다. 내가 아무리 둔감하기로서니, 정말 괜찮지는 않았던 것을 이제사 제대로 돌아보게 됐다.
그 날 들었던 질문 가운덴 "기사에 관한 어떤 피드백에 가장 행복했는가'가 있었다. 최근 들었던 페미니즘 수업에서 만난 페미니스트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내 소개를 듣더니 나와 내 기사를 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말했다. "기자님 기사에 남자들 악플이 많이 달렸던데 적극적으로 응원 댓글을 못 달아드려서 죄송해요. 앞으론 많이 달게요!" 내가 들었던 기사에 대한 반응 중 가장 신박했는데, 내 기사를 아는 업계 관계자 아닌 존재의 출몰에 신기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 "감.. 감사해요.." 라는 나의 대답엔 황감함과 민망함, 고마움 등등이 모두 담겼다. 최근에는 안티 페미들 못지 않게 페미들이 쓴 응원 댓글도 많이 달려서 사실은 놀랍고, 역시나 황감한 느낌이 든다.
오늘도 "기자가 페미네"라는 댓글을 만난다.
거기엔 최근 만난 인터뷰이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님의 말처럼 "넌 페미 아니야? 어떻게 페미가 아닐 수가 있어?"라는 말을 돌려주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더욱 생각한다. 여성들 사이에선 "너 페미해?"라는 말에 대항해서 "너네가 그럴 때마다 페미해"라는 말도 나오는 걸 봤다. 그 말도 맞지만, 페미가 엄청난 사회운동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 어떤 태도이자 주의주장인 만큼 성차별에 반대하는 우리 모습 그대로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여기고, 또 여겨졌으면 한다. 매일매일 피끓는 페미지사로는? 힘들어서 못 살 테니까. 그저 나는 오늘도 매일매일 페미니스트이다.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기사로 말을 하는 페미니스트. 악플러들에게는 "너넨 그럼 성차별주의자들이지?"라는 말만 전하고 싶다.(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