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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pr 11. 2023

퇴사자와 돈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3

사직서에 대한 장 명의의 '결재'가 뜨고서야 나는 엄빠한테 전화를 걸어 딸래미의 퇴사 소식을 알렸다. 다소간 짐작한 듯, 그러면서도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듯한 공기가 핸드폰 너머로 전해져왔다 . (그 9년 새 얼마나 많은 '징징'이 있었는지는 여러분들도 미루어 짐작 가능할 것이다.) '노빠꾸' 엄마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왔다. "니 모아둔 거 있나?"


모아둔 게 있으면 집 사는데 그렇게 많은 빚을 졌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수세적인 자세는 곤란하다. "아, 뭐 먹고 살 만큼은 있다!" 하고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나는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이 내가 깔고 앉아 있는 집에 들어간 데다, 알뜰살뜰하게 저축을 잘하는 부류는 못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믿는 도끼가 두 개쯤은 있었다.


하나는 퇴직금이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퇴직한 동료들로 미루어 그 금액을 이미 알고는 있었음에도, 통장으로 들어온 금액을 보니 '진짜 이거 밖에 안 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쉽사리는 질 수 없는 큰 목돈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이 안심이 됐다. 별 배달사고 없이 진짜로 들어왔다는 것에.


또 하나의 믿는 도끼는 구직급여였다. 너 알고 보니 권고 사직이었냐고? 그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이전으로 인한 통근 곤란'(왕복 3시간 이상)이라는 구직급여 사유에 해당됐다. 회사의 갑작스런 이전 이후로,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알고 지내는 노무사 동생한테 컨펌받은 사안이기도 했다. 9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두는데는, 구직급여 수급 여부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는 MBTI 상으로 '애매한 P'이지만 이럴 땐 '파워 J'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이 커질 대로 커져버린 30대 중반, 1인 2묘 가구에는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비용이 하도할샤였기에 어떡해서든 갖고 있는 돈을 긁어모아야 했다. 나나 냥이들 병원비 같은 응급 상황에도 대처해야했기에, 나는 흩어진 돈 모으기에 들어갔다. '냉장고 파먹기' 하듯 이 계좌 저 계좌로 흩어진 돈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주식 왕초보로서, '7만 전자'에 들어간 삼성전자 주식 딱 10주도 '6만 전자'일 때 그냥 가차없이 빼버렸다. 나에게는 환금이 안 되는 주식 10주 보다는, 지금 당장의 돈 60만원이 훨 중했기 때문이다.


가장 급선무는, 월마다 돌아오는 가장 큰 지출인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줄이는 일이었다. 나의 경우 고정금리인 적격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금리변동은 없다손 치더라도, 매달 내는 원리금 자체로 큰 부담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에 목돈이 있다는 기분 자체가 소중해서, 중도 상환을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이었다. 킹 갓 엠퍼러 제너럴 같은 기상의 엄마의 지시가 떨어졌다. "모월 모일, 같이 은행 지점 가서 상환하자. 너 상환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그렇게 모바일로도 간단히 끝날 주담대 중도 상환을 위해서,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XX은행 광화문 지점에 모였다. 전에 없이 비상하게, 옷도 한껏 차려 입었다. 얼마간의 돈을 상환하고, 남은 대출금이 적힌 통장을 본 엄마가 말했다.(심지어 그 통장마저 모바일뱅킹을 못 믿는 엄마 덕에 종이로 개설했다.) "밥 먹으러 가자."


그 날의 메뉴는 전에 없이 아웃백이었다. 느끼한 걸 영 못 참는 엄마가 웬일로 고른 메뉴였다. "느그 아빠랑 있으면 이런 건 못 먹는다" 면서. 내가 9년 간을 지낸 옛 일터 근처에 전에 없이 아웃백이 들어서 있었다. 사람이 없는 오후 4시라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쭉 훑어본 아빠가 비싼 스테이크와 파스타 등을 시켰다. 미디웰던으로 적당히 구운 스테이크와 크림 소스가 되직한 파스타 등을 이러저리 우물거리는데, 익숙한 음식의 그리디(greedy)함이 전에 없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세 명 분의 음식 값이 지나치게 휘황찬란한 탓이었다. 머리로 아무리 T멤버십 할인을 적용해봐도, 영 부담이 됐다. 9년 전, 입사 기념으로 가족들과 먹었던 저녁에서는 바틀 와인도 호기롭게 시켰었는데. 평소 무지막지한 엥겔계수를 자랑하며 먹는데 돈 쓰는데는 한없이 너그러운 나였지만, 오늘의 아웃백은 맛있을수록 한숨이 나는 게 마음이 산란했다. 이것이 백수의 처지로구나…


백수의 처지를 수십번 되새긴 이른 저녁을 마치고, 계산대 앞에 섰다. T멤버십 어플을 호들갑스럽게 찾는 새, 아빠가 '척' 카드를 내밀었다. 이심전심으로 군말 않고 받아 넘겼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아빠와 나의 합이 간만에 세계 최정상급 배구 세터와 공격수 같았고, 카드를 내미는 아빠의 손이 만드는 전에 없이 아름다왔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던 그날의 아웃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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