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4
퇴사의 '히든' 믿는 도끼 중 하나로 책 출간 계약이 있었다. (금도끼 은도끼도 아니고 믿는 도끼가 계속 나오는 것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그러나 나는 '퇴사'에는 필연적으로 믿는 도끼가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막상 퇴사를 했더니 그 믿는 도끼가 내 발등을 찍을지언정, 어찌 믿는 구석 몇 개 없이 밥벌이를 박차고 나올 수 있겠는가.
출간 계약은, 나의 중차대한 퇴사 명분 중 하나였다. 항상 짧은 기사를 써내려가느라 긴 글에 목 말라 있던 나로서는 더욱. 소싯적 나의 인터뷰이었던 S님과 함께 '여성 노동의 현실'을 조명해보자고 나선 일이었다. 둘이 의기투합해 뚝딱뚝딱 출간기획서를 써내려갔고, 바라마지않던 출판사와 출간 계약까지 했다. 2019년, 16명의 공저자와 함께 책 추천서인 '종이약국'을 쓴 것을 제외하면 내 인생 최초의 책 계약이었다. 그게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성실한 S님과 함께 그 여름내 산으로 들로 인터뷰이를 만나러 다녔다. 그렇게 20여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며 어느정도 취재는 쌓였지만 그걸 활자화하는 일이 산더미였다. 국제부로 발령난 이후로는 새 부서에 적응하느라 정신도 없고, 물리적 시간도 없었다. 물리적 시간이 있다고 한들, 회사에 대한 악감정으로 좀처럼 분이 삭혀지질 않았다. '쉬익 쉬익'하는 마음으로는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회사에 감정적으로 지배당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뭐든 할 수 있는 오롯한 나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였고 결국 그 방편으로 나는 퇴사를 했다. 퇴사 첫 달인 12월은 '오롯이' 놀았지만 1월부터는 새 마음 새 뜻으로 책 원고 집필에 매진하기로 했다. 편집자님께도 당당히 1월 안으로는 초고를 보내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임했건만, 퇴사만 하면 일필휘지로 원고 작업을 내달릴 줄 알았건만, 막상 노트북 앞에 앉아 보니 책 진도는 좀체 나가지 않았다. 하루에 원고지 200자 분량으로 몇십장씩 기사를 써오던 나로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아니, 기사 쓰듯 쓰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이후로 꼬박 책을 쓰며 내가 느낀 소감은 이랬다. '책은 기사가 아니다'.
책 쓰며 느낀 나의 소회는 기사는 기술에 가까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기사에는, 특히나 기획 기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사례 1~2개, 사례를 입증할 만한 통계와 전문가 멘트. 물론 기사에는 기자의 관점이라는 게 녹아들어가지만, 적어도 '기사체'는 기자수첩이나 칼럼이 아니고서는 '중립 기어'를 충실히 이행한다. 가령 '일각에서는 ~한 의견이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라고 지적한다' 등 기자 개인의 의견은 없는 듯 남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러나 내가 저자인 책에서는, 그렇게 숨을 구멍이 없었다. 전문가 멘트로 대체했던 부분은, 죄다 나를 발화자로 바꿔야했다. 그렇게 해서 억지로 내 의견을 정리해가자하면 나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뇌피셜' 논란에 휩싸였다. '이건 너무 나 혼자만의 주관적인 의견이지 않나?', '이걸 뒷받침하는 멘트를 어디서 가져와야하지 않을까?' 다시금 기사에서처럼 '전문가 멘트'를 따오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또한, 호흡이 긴 글을 처음 써보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다. 신문 기사는 길어야 200자 원고지 15장쯤 될까말까 한다. 그러나 책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분량은 도합 300장 이상이었고, 세부 꼭지 한 편도 최소 25장은 됐다. 하고 싶은 말을 300장에 걸쳐 구븨구븨 펴는 일이. 나중에 먼저 책을 출간했거나,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동료 기자들에게 하소연했더니 모두들 하나같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저자로서의 자아'를 확립하는데만 꼬박 한 달이 소요됐다. 그걸 어렵사리 찾고 났더니 내가 장담했던 마감일이었다. 원고 진도는 아직 반도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편집자님께는 죄송함을 무릅쓰고 한 달여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공저자 S님과는 일주일에 한 번, 줌으로 회의를 해가며 미진한 부분들을 체크하고, 마감을 서로 독려했다.
내가 간과한 '기자적 글쓰기' 또 하나는 '마감이 없으면 쓰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편집자님과 약속한 마감 시한은 늘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불어닥치던 일간지 기자의 마감만큼 '절체절명'한 것은 아니었고(물론 편집자님 입장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다. 거듭 사죄드린다…) 나는 매번 편집자님께 아쉬운 소리를 했기 때문에 마감은 벌써 두 번(처음엔 2022년까지는 쓰기로 되어 있었다)이나 미뤄졌다.
퇴사도 한 마당에, 더 미룰 수는 없었다. '확실한 마감'을 위한 장치를 찾는 일에 골몰한 끝에, 나는 한 공공기관의 저술지원 사업의 마감이 2월 말까지임을 알게 됐다. 저술지원도 받을 겸, 마감도 확실히 할 겸 해서 공저자와 함께 2월 말을 향해 전력질주하기로 했다.
확실히 '빼박'인 마감을 만들었더니, 원고의 진척이 빨라졌다. 계속해서 기상 시간은 들쭉날쭉했지만, 나는 적어도 하루에 4시간은 책을 쓴다는 나만의 불문율을 만들었다. 영감이 있고 없고, 아이디어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조건 4시간은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다. 우리집 주방 한 켠, 책상과 식탁 노릇을 동시에 수행하는 '무엇' 앞에 앉았노라면 우리집 고양이들이 돌아가며 방해를 했다. 무릎 위에 올려놓고 거푸 쓰다듬으며 작업을 했다. 결국에는 냥이들에 정신을 빼앗겨 30분이 후딱 지나가기도 하고, 더러는 유튜브를 보거나 기사 검색을 하다가 시간이 '훅' 날아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4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20장쯤은 어떻게든 쓸 수 있었다. 다음 날에 지우더라도.
그렇게 마감이었던 2월 말까지 초고를 탈고했고, 바라던 저술지원 사업에도 지원을 했다. 물론 원고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할테지만 일단 1차 관문을 넘은 것에 나는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 두 달 이후로, 우리집 식탁은 명실상부 책상으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나는 우리집 식탁 앞에서의, 아니 책상 앞에서의 삶을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다정한 두 마리의 냥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