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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pr 16. 2023

퇴사 후 첫 이력서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5

혹자는 왜 내게 이직 아닌 퇴직을 했냐고 물었다. 나 또한 이직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실패했을 뿐이다.


더 이상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바라던 젠더 보도가 어렵겠다고 판단했을 때, 나는 이직을 꿈꿨다. 젠더 보도가 활발한 언론사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여럿이 머리를 맞대며 굵직한 기획 기사를 써내려가는 광경을 꿈꿨다. 함께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기획해봐도 재밌겠다고 여겼다.


마침 그 즈음 내가 눈여겨보던 언론사 두 곳에서 경력 공채 공고가 났다. 어라, 저기는 꼭 써봐야지. 나의 기자 경력 9년을 시험대에도 올려 볼 겸 해서. 같이 자소서 한 번 잘 써보자고 손 맞잡은 동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기소개 항목이 적힌 화면의 커서 앞에서 도통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지원 동기, 기자로서의 활약상, 앞으로의 계획 같은 평이한 문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지원 동기부터 막혔다. 솔직한 심경은 '저는 기자하고 싶은 맘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젠더 보도는 (귀사에서) 좀 더 해보고 싶습니다'였지만, 차마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그 즈음 다니던 심리상담 프로그램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좀 꾸며서 쓸 수 있잖아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자소서를 저렇게 매가리 없이 쓰는 사람은 없을테고, 의욕만 있다면 충분히 스스로를 잘 포장해서 쓸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 때 내게 내 마음을 포장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엄청 가고 싶지는 않은 회사를(정확히 말하면 언론사를) 가고 싶다고 말할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았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 전심을 투구할 수 없는 나의 성미가, 이렇게 내 인생을 망치는구나'도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2시간을 꼬박 원서 접수 화면을 켜놓고, 멍하니 커서만 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두 곳의 원서 접수 기한을 허망하게 흘러 보냈다.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가족들이 더 아까워했지만 안 써지는 자소서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는 '기자는 더 못해먹겠다'고, 이직이 아닌 퇴직을 통해 내 인생에 쉼을 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36년 내 인생에 모처럼 쉼을 주던 어느 날이었다. 퇴사하던 무렵부터 <삼국지>와 더불어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었던 예능 <최강야구>를 본방 사수하고 있을 때였다. 밑에 흐르는 자막에 눈이 꽂혔다. '<최강야구> 제작사인 스튜디오C1에서 신입/경력 PD를 뽑습니다.' 어, 나 이건 너무 하고 싶은데? 꼭 써보고 싶은데? 


그 즈음 나의 <최강야구> 과몰입은 광적인 데가 있었다. 스포츠 경기를 현장에서 보고 싶어 기자를 결심하고, 대학 때는 일부러 농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잠실체육관에서 알바를 하고, 혼자서 K-1 직관을 가다 지쳐 대학 때 가라데를 배울 만큼 스포츠를 좋아한 나지만 야구는 나에게 'far away'의 영역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말이면 야구를 보느라 TV 리모컨을 독식한 아빠의 뒷통수에 질리기도 했다. 뭣보다 야구는 나에게 '노잼'의 영역이었다. 농구나 격투기처럼 면대면으로 공수 전환 '휙휙'에 티키타카가 현란한 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사이 사이에도 '마가 뜨는' 야구는 결코 재밌지가 않았다.


내 평생 저 '아재 스포츠'는 절대 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최강야구>는 인생에 '절대'란 없다는 것을 내게 일깨웠다.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프로야구팀에 대적할 만한 11번째 구단 '최강 몬스터즈'를 만든다는 것이 <최강야구>의 컨셉이다. KBO 역사에 길이 남을 화려한 기록을 보유한 왕년의 스타들이, 미국 메이저/마이너리그를 경험한 백전의 용사들이 전같지 않은 몸으로 다시금 뛰겠다고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프로 진출을 노리는 대학과 독립구단의 선수들이 프로 출신 선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한편으로 그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흡수하는 모습도 뭉클한 감동을 줬다. '예능'이라고 헐랭할 수 있는 텐션을 꽉 잡는 것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노고로 보여졌다. 멋졌다.


뭐에 씌인 것처럼, 나는 그날로 <최강야구> PD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PD 경력이 없으니, 당연히 신입으로였다. 지독히도 안 써졌던 기자 자기소개서와 달리 '하나의 키워드를 선정해 자신을 소개하시오', '살면서 겪은 최악의 실패 사례와 극복한 경험을 쓰시오',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와 좋아하는 이유를 쓰시오' 등의 문항에 술술 답했다. 개인적으론 지구 끝까지 함구하고팠던 수치스러운 기억까지 끄집어낸 자소서였다. M세대인 나로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1분 영상 자소서도 뚝딱 만들었다. S신문 입사 이래 처음 써보는, 근 10년 만의 자소서였다.


서류 접수를 하고 만 이틀 만에 나는 '유감'이라는 탈락 메일을 받았다. 1차 탈락이라니, 나에게도 상흔은 컸다. 글 쓰는 일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면접도 아닌 서류 탈락이라니. 한동안 아픔에 정신을 못 차렸다. 상처에 소금 뿌리는 느낌이 날 거 같아서, <최강야구> 시청도 저어될 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가 궁금해 본방을 사수하던 어느 날,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낯익은 이름을 봤다. 나에게 '탈락' 메일을 보냈던 인사 담당자였다. 검색을 해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아마 업계 경력도 비슷하겠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내 나이가 이제 입사 지원자에게 탈락 메일을 보내는 나이가 되는구나, 싶으면서 머리가 띵-했다.


그 후로도 <최강야구>는 계속 사랑했지만(현 시점 시즌2도 열혈 시청 중이다.) 그 경험은 나에게 여러 시사점을 제공했다. 물론, 탈락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왜 떨어졌는지를 물어보는 메일을 보내고 싶었으나, 2·3차 탈락도 아니고 1차 탈락에서부터 떨어진 연유를 묻는 메일은 너무 민폐 같아서 참았다.) 자소서를 못 써서일 수도 있고, 신입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많은 나이(36세) 탓일 수도 있고, PD 관련 경험이 전무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앞으로 진정한 의미의 '전직'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은 크게 남는 결과였다. 사실 퇴사하면서부터 나는 동종 업계로의 '이직'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의 '전직'을 꿈꿨는데, '서른 중반의 전직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쉽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됐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특정 자격증 등을 따야하는 직무에 도전한다면 의외로 전직이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별도의 '증명서'를 요하지 않는 분야로의 전직은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최강야구> PD직 지원 이후로 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해온 것 =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자 경력을 적극 살려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마치 <최강야구>의 은퇴 선수들이 각종 부침을 겪으며 야구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가, <최강야구>를 통해 "사실은 야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른 것처럼. 나에게 기자직도 그런 일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최강야구>를 통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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