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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May 26. 2023

홈팀을 응원하는 기쁨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2


2023년 5월 19일, 마산 여행 2일차.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일찍 눈이 떠졌다.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살짝 덥거나 텁텁하거나 춥거나를 반복한 탓이다. 그래도 일어나는 기분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홀로 쓰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10분 정도 간단한 요가를 했다. '으드드드'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료로 제공되는 호텔 조식이 있었으나, 옹색해 보여서 미처 이용해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주변도 둘러볼 겸, 모자를 눌러 쓰고 산책길에 나섰다.


숙소 주위로는 합포수변공원이 있었다. 인적도 드물고, 별 게 없는데 다만 그네 의자가 있었다. 가만 앉아서 앞뒤로 왔다갔다 했다. 찝찔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여기가 참, 소싯적 상대적으로 깨끗한 바다를 지녔던 진해민들이 무시하던 콜라빛 마산만이었지. 지금은, 콜라는 아니었다.


전날 맥주만 세 잔을 마신 고로, 몸이 국물을 부르고 있었다. 숙소 가서 전기포트에 물 끓여 컵라면이나 먹을까 하다가, 굳이 궁상맞게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주변에는 아침 일찍이 여는 돼지국밥집이 딱 하나가 있었다. (나의 검색력으로는 그랬다.) 앞을 지나치며 살풋 분위기를 보았는데, 이른 아침에 그것도 혼자일 손님을 귀찮아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인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대화가 활기찼다.) 창가 자리에 앉아 9000원짜리 돼지국밥을 시켰다.


쟁반 하나가 등장했을 때, 나는 나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빳빳한 정구지와 막 썰어낸듯 서슬퍼런 양파를 봤을 때 확신이 왔다. 그에 비해 국밥 맛은 비교적 평범한 편이었으나(잡스런 부위가 전혀 없고 살코기가 얇게 썰려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정구지를 모두 투하하고, 새우젓과 다데기도 양껏 넣어 밥을 말아 먹었다.


부른 배를 안고 숙소에 와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이제는 카페 사냥에 나섰다. 숙소 바로 맞은 편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여는 은혜로운 스벅이었다. 묵직한 단맛(=돌체 라떼)가 땡겨 스마트 오더로 주문한 후 자리를 물색했다. 2층은 건물뷰일지언정 통창이 많아 개방감이 좋았다. 당연히 창문을 향해 소파가 놓인 자리를 찜했다. 와, 게다가 사람도 별로 없네.(이른 시간임을 감안하더라도) 거듭 감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달달한 연유커피를 마시며, 어제 있었던 일을 쭉 정리했다. 핸드폰을 통해 엄지로 정리하려니, 숙소에 두고 온 트북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지금 가져오자니(아무리 5분 거리라 해도) 귀찮고, 카페에 오기 전부터 여행기를 써보겠다고 작정한 게 아니니(원래는 <시드니>를 계속 읽으려했다)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한 인간은 몸이 고생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되새기며 엄지 불나게 타이핑을 했다.


12시가 좀 넘어 점심 식사를 위해 창동으로 향했다. 걷다보니 어제 갔던 LP바 '해거름'이 보였다. 채 10분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웠나. 어제는 비도 비이고(이날은 비는 일찌감치 그치고 흐린 하늘도 차차 걷혔다) 술 취한 김이라 꽤 멀게 느껴졌는데. 정말 코앞이었다.


그곳을 지나쳐 가려고 했던 경양식집 앞에 멈춰섰다. 순간 기름냄새를 맡았는데(돈까스 집이니 당연한 냄새였다) 들어가기 싫어졌다. 아직 아침에 먹은 돼지가 뱃속에 있는 탓이었다. 아.. 또 돼지는 진짜 아니야. 배도 부른데 굳이 또 밥을 먹어야 되겠어? 생각보다 걸음이 더 빨리 돈까스집을 지나갔다. 그래, 일단 점심은 거르고 이따 배고프면 빵을 사먹든지 하자.


그러면 다음 행선지는 문신미술관이었다. 마산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라는 문신.  동네에서는(범창원) 초중고 때 소풍으로 한 번은 가는 곳이다. 나도 갔었지만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얼마 전까지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문신 전시를 진행 중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못 갔던 기억도 있어 이래저래 가고 싶었다.


문신미술관을 향해 걷는 길에 자연스레 창동 이곳저곳을 아다니게 됐다. 부림시장 입구에 '아트뉴스'라는 세로 간판이 크게 보였다. 맞다, 그 시절엔 큰 팬시점이 있는 곳이 중고등학생 아이들의 집결지였지. 지금도 그곳은 그 시절 팬시점 답게 각종 문구용품에서 악세서리, 양말, 옷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검정과 실버, 마카 두개를 샀다.


문신미술과관은 생각보다 산등성이에 있어 걸어서 가기케 영 힘에 부쳤다. 반팔을 입었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헉헉헉헉. 힘들게 입구를 찾아 입장료를 냈다. 성인 500원이었다. 카드도 내밀기 민망한 가격이었다.


문신미술관은 전망이 좋다. 고도가 높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따라 다닥다닥한 아파트들과 마산만이 한 눈에 보인다. 솔직히 조각의 세계는 어려워서, 미술관 내 작품들에서는 크게 감화를 못 받았다. 러나 미술관 자체는 흥미로웠다. 한쪽에 마련된 문신 묘소에 있던 묘비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바로 붙어있는 창원시립마산박물관도 들리려다가, 날도 덥고 목도 마르길래 스킵하고 카페를 찾았다. 시티뷰에 환장하는 내가 찾은 '촉이 오는' 카페였다. 이름하야 '레이힐'.


오피스텔로 보이는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카페였는데 층고도 높고 시원시원하게 아래 위로 뻗은 창문 밖 풍경이 장관이었다. 오르막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보였다. 오션뷰나 마운틴뷰 보다 시티뷰가 사람을 더 센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들 저 아래서들 열심히 사는구나, 하고. 최대한 카페인은 자제하는 축이어서(아침에 이미 한 잔 마시기도 했고) 디카페인 원두는 없는지 카운터에 물어봤다. 여성 주인분께서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없다"고 하셔서 내가 더 황송해졌다. 오늘은 대차게 카페인만 두 잔 마시기로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앞에 두고 시티뷰 배경에 연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 수록 여기는 혼자 오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하고 딱 한 테이블만 더 손님이 있는 것도 좋았다.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서 내다 보이는 전망도, 위층 루프탑 전경도 탁 트여서 시야가 뻥 뚫렸다.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커피도 맛있었다. 전망 한 번 보고 책 한 장 읽고를 거듭했다.


오후 4시쯤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5시에 NC파크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야구 직관에 앞서 팀스토어도 들리고 먹을 것도 사기로 했다. 나도 친구도 약속시간보다 30분을 앞서서(친구는 나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야구장에 도착했다. 여고 동창이자 창원 로컬민인 레페(얼굴이 곧잘 붉어지는 그는 '레드 페이스'를 줄여 '레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불과 두 달 전쯤 나의 진해 벚꽃 탐방기를 같이 했던 친구다.


함께 팀스토어에 갔다. 창원을 홈구장으로 쓰는 NC 다이노스의 응원용품과 유니폼 등 여러 굿즈를 팔았다. 오프라인 팀스토어의 특장점은 온라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여러 세일 행사다. 내가 갖고 싶던 충무공 유니폼의 여러 버전을 30% 세일하고 있었다. 응원용 봉과 함께 충무공 유니폼을 집어들었다. 당연히, 선수 이름과 등번호 마킹도 했다.


마킹을 하면서(열 전사 방식의 마킹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대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의 이름을 많이들 등에 새겼는지 봤다. 김주원 - 박건우 - 박민우 - 손아섭 - 구창모 순으로 많아 보였다. (내 눈대중으론 그랬다.) 가끔 선수의 이름이 아닌 것들도 보였다. '엄마공룡', '택진이형' 같은 일종의 닉네임들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등에 특정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길까. 물론 각자가 좋아하는 선수가 1순위이긴 할 것이다. 나는 나만의, 막상 들어보면 별 거 없는 철학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1. 잘하는 선수일 것

2.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일 것

3. 팀에 오래 남아있을 선수일 것(계약 기간이 비교적 긴...)


그렇게 정한 나의 첫 마킹 선수는 손아섭이었다. 전에 홀로 잠실에 직관 갔다가, 처음에는 마킹 없이 유니폼만 덜렁 사왔다. '이 나이에...' 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 날 중석에 안고 보니 유니폼을 입은 거의가 다 등에 선수 이름들을 새기고 있었다. 간혹, 이름이 없는 등은 너무 휑해보였다. 남들 눈에 내 등도 그렇겠구나,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래서 이틀 뒤 또 직관을 가서는 2만원을 주고 이름을 새겨버렸다. 왜 손아섭이냐 하믄, 이제 야구판에서 베테랑의 반열에 올라선 88년생 동갑내기를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날 새 유니폼은 내가 입고, 전에 산 '손아섭 유니폼'은 친구가 걸쳤다. "치맥 사서 들어가자"고 S에게 말했다. 레페가 맥주는 괜찮다고 했다. "왜?" "사실 내가 수술해서 닷새 전에 퇴원했거든. 니가 내려온다고 처음 연락 왔을 때 나 사실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어."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잠시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애가 장시간 밖에 나와 있어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야, 오늘 경기 보는 건 너무 무리 아이가 니 힘들텐데" 했더니 "괜찮다. 이제는 나와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닭강정에 나는 맥주 레페는 콜라를 사서 자리로 들어왔다. (아픈 친구 앞에서도 나는 맥주를 포기하지 못했다...)


손에 마실 것 하나씩과 수북한 닭강정 바스켓을 들고서 들어간 야구장, 창원 NC파크는 그야말로 푸르렀다. 새벽까지 내린 비가 모두 그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해가 쨍쨍 내리쬈다. 나는 그 초록색 잔디 위에 선수들이 헛둘헛둘 하며 몸을 풀거나 느슨한 포물선을 그리며 캐치볼 하는 풍경을 좋아한다. 몹시 평화롭고, (나의 생각과 반대로, 선수들은 전쟁 직전 같은 불안을 느낄까?) 멀리서 봐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느긋하게도 보인다. 상대 팀 선수하고도 담소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빨리, 경기장에 입장하고 싶다. (그래서 이날도 입장 가능 시간인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맞춰 부리나케 들어갔다.)



우리의 자리는 홈팀 더그아웃 뒤, 1루 근처 1층 자리다. 선수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근처기도 한데, 일부러 그 자리로 잡았다. 선수들이 지나다닐 때 유니폼이나 야구공 등을 내밀면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루트로 접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들어갔을 때, 이미 엔린이 몇몇이 그 통로 난간 근처를 점거하고 있었다. 나도 이 순간을 위해 마카 두 개를 샀는데... 마땅히 그들과 함께 난간 옆에 서서 선수들을 기다려야하건만 딱히 그런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린이 한 명 많게는 두 명도 서 있을 자리를 내 큰 몸뚱어리로 뺐는다는 일이 영 마뜩치 않아서 잠자코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6시 30분이 되어 이윽고 NC다이노스 vs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시작됐다. 나는 살아생전 홈팀 응원이라는 걸 처음 해봤다. (그걸 위해 4시간 거리를 달려온 셈이지만) 과거 농구팬 시절에 나는 창원의 홈팀 LG 세이커스가 아니라 대구 오리온스를 좋아했고, 그래서 수적 열세를 매순간 당연하게 여기며 경기장 한구석에 찌그러져 응원을 했다. 올시즌 야구를 좋아하고부터 잠실 2번, 고척 1번에 갔지만 모두 NC를 응원했으니 정팀을 응원한 셈이다. 그 놈의 홈팀 응원이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수적 우위로, 홈 그라운드에서, 당당하게!(원정 응원이라고 해서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절대 다수의 입장에서 응원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홈 구장에서 하는 응원은 그 기세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적어도 내가 있었던 1루쪽 111구역에서는 절대 앉아서 응원할 수가 없었다. 앞 사람이 일어서 시야가 가려지니, 절로 일어날 수 밖에. 나중에는 체력이 달려 응원이 덜한 수비 타임이 기다려졌다.


NC파크는 타자들이 타석에 설 때 응원가 가사가 띠전광판에 노출돼 응원하기가 참 좋다. 나야 어느 정도 알고 갔지만, 야구 직관은 처음인 레페가 원래 알던 노래처럼 너무 잘 불러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현란하게 연신 응원봉을 흔들던 레페는 말했다. "이야, 노래방이 따로 없네. 코로나 내내 노래방 못 간 한을 여기서 다 푸네."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마찰음도 요란하게 응원봉을 두드렸다. 제일 신나는 응원은 뭐니뭐니해도 1번 타자 손아섭 등장곡인 '장미하관'의 '오빠라고 불러다오'의 도입부에 맞춰 지르는 괴성(?)이다. 동갑이고(우린 동갑이다) 연상이고 연하고 여자고 남자고를 떠나 한 목소리로 부르는 '다이노스 오빠!'.


응원에 정신이 팔려 그 날의 경기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단, 졌지만 (4-5로 NC패) 굉장히 '졌잘싸'여서 아쉬움은 없었다. (이 날 나는 '졌잘싸'라는 게 있음을 인생 처음으로 느꼈다. 스포츠 같이 'Win or Nothing'의 세계에 '졌잘싸'라니 가당키나, 라는 게 내 지론이었는데 '실지로' 보니 진짜 그런 게 있긴 있었다. 물론 이 날 처음 홈 구장 직관을 와서, 그 감동 때문일 수도 있다.) 삼성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언더핸드 투수 우규민의 투구를 직접 봐서 좋았다. 간만에 오승환 세이브하는 것도 봤고, 박건우의 통산 100홈런을 직접 지켜본 것도 좋았다. 직관을 넘어, 야구 자체가 처음인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쁨이었다. 이래저래 알토란같이 알찬, 경기였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 퇴근길을 따라가고 싶어서 비칠거렸는데(응원하느라 다리에 힘이 풀려 진심 그랬다) 선수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고, 팬질하던 소싯적처럼 악착같이 찾을 에너지는 없어서 도중에 그만 뒀다. 레페와 함께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만에 오동동 숙소에 도착했다. 반투명하게 사람의 나신이 다 보이는 욕실을 보고, 서로 뜨악해했다. 한 명씩 차례로 씻고 자리에 누웠다.


그 날 밤 꿈에는 우리 집 둘째, 도울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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