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슬기 May 27. 2023

야구, 참 어렵다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3

    2023년 5월 20일 마산 여행 3일차.


썸네일용 사진. 이 날의 엔팍 전광판이다.


오전 7시 30분이었나(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알람에 맞춰 기상을 했다. 알람이란 것은 집에서는 쉬이 무시되는데, 외지에서는 귀의 고막을 찢는 듯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레페도 깼다.


레페와 함께, 어제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호텔 조식을 탐방해보기로 한다. 따로 식당이 있는 것은 아니고, 로비 한 켠 가느다란 바에 음식들이 주루룩 놓여 있었다. 삶은 달걀, 방울 토마토, 식빵, 잼과 버터, 토스터기, 시리얼과 우유, 달걀 후라이를 해 먹을 수 있는 가스 버너까지. 사실은 작은 호텔이라 회전율이 좋지 않을 거 같아서, 상한 식재료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가지 않았던 것인데 직접 가서 보니 모든 재료가 퍽 신선해보였다. 로비에 놓인 테이블에는 조식을 먹는 가족들로 붐볐다. 방토와 삶은 달걀 하나 집어서 우걱우걱 먹었다. 레페는 식빵과 시리얼까지 더해 맛있게 비웠다.


식사 후에는 어제에 이어 다시 한 번 합포수변공원을 걸었다. 가기 전에 레페는 아니나 다를까 "마산만은 똥물"이라며 "기대할 게 없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곳의 바다는 제법 나쁘지 않았던지 꽤 만족한 듯 했다. 어제는 혼자 앉았던 그네 의자에 레페와 함께 앉았다. 어제 8회말이었나, 들었던 응원가인 노브레인의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를 틀었다. 컨츄리풍의 도입부와 보컬 이성우의 긁는 듯한 샤우팅이 잘 어우러졌다. 이 노래 가사인 '콜라빛 나는 바닷물'은 아니나 다를까 창원시의 항의를 받았고 구단이 이를 받아들여 가사를 수정하려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에 반대해 결국 살아남았단다.(라고 나무위키에 적혀 있다.) 마산민은 아니지만 구 진해민으로서도 예전의 마산만은 콜라빛이 맞았고, 가사를 쓴 마산 네이티브인 이성우도 같은 기억을 공유했을테다. 기억을 굳이 미화시킬 필욘 없지, 그리고 그게 마산이지.


호텔로 돌아와 씻고는 예의 어제의 그 스벅으로 갔다. 귀하디 귀한 한가한 스벅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재잘재잘, 이 얘기 저 얘기를 소화했다. 어제와 달리 이날은 토요일이건만, 역시 그 스벅에는 사람이 없었다.


체크아웃 시간인 낮 12시 직전,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운터에 맡길까 하다가 다시 돌아올 걸 생각하니 귀찮아져서 들고 길을 나섰다. 점심은 창동에 있는 즉석떡볶이집 '정가불떡'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를 타는 집이었는데 직접 가서 보니 더욱 범상치 않았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인테리어(벽지가 심지어 누릇누릇했다)에 지금은 종영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했음을 알리는 캡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꽤 넓은 홀에는 종업원이 없고 다만 부엌에 계신 할머니 혼자만 분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부엌에서 별안간 "주문은 여기서 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보니 다들 주방 앞에 가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상의 끝 불떡 2~3인분 한 판에 낙지 사리, 라면 사리를 추가했다. 물론, 내가 주방 앞까지 가서 구두로 시켰다.


그랬더니 이윽고...

떡볶이 한 판이 나왔다. 도합 18000원어치. '불떡'이라는 명칭은 불고기떡볶이의 준말인지 안에는 불고기도 들어있다.


부글부글 끓였더니


이런 비주얼. 맛은 정말 불고기에 떡볶이 양념이 어우러진양 간장과 고추장의 단맛이 적절히 믹스된 느낌이었다. 국물이 자박한데 자극적이지가 않아서 가히 떡볶이계의 평냉 같은 맛이었다. 숟가락에 담기는 국물과 낙지와 불고기의 부스러기가 풍성했다. 연신 퍼먹었다. 더운 날 화구 앞이었지만 짜증이 다 가실 만큼 만족스런 맛이었다.


계산할 때, 예의 그 주방에서 나오시지 않는 할머니는 내게 원격으로 카드 리더기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그 바람에 18000이라는 숫자를 내가 직접 입력하고 결제까지 하고 나왔다. 나야 바른대로 입력하고 나왔지만, 세상의 별별치는 허튼 숫자를 일부러 입력하고 나오진 않을런지. 할머니는 하지 않을 거 같은 걱정을 친구와 나눠하며 밖으로 나왔다.


카카오택시로 택시를 잡아 타고, 전날 갔던 '레이힐'에 또 갔다. 레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S가 연신 시티뷰를 사진으로 남겼다.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멀리서 온 나를 통해, 레페가 익숙한 곳도 새롭게 보게 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카페인에 취약한 레페가 아이스 초코 라떼를, 그보다는 카페인을 잘 먹는 내가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아이스 코코넛 라떼를 시켜 루프탑으로 가져가 먹었다.


초코 라떼(왼쪽)과 코코넛 라떼.

이날도 나는 경기를 보러 갈 참이었고, S는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시간을 죽이다 오후 3시쯤 해서, 각자의 목적지로 갈 버스를 타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 같은 정류장이었다. S는 나에게 "네 덕에 야구 직관의 기쁨을 알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내가 잠실에도 한 번 보러 오라고 했고, S는 알겠다고 했다. S는 담번에는, 손아섭 유니폼을 직접 사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또 다시 NC파크. 이날의 자리는 NC파크의 명물이라는 미니테이블석이었다. 전날과 같은 1루쪽 111구역에서 급히 바꾼 자리였다. 이유인즉슨 경기를 앉아서 보기 위해서였다. 1루쪽 응원석은 도미노처럼 다들 기립하기 때문에 수비 때가 아니면 도통 앉을 수가 없다. 전날의 경험으로 나라는 사람은 응원도 좋지만 앉는 것이 더 좋음을, 공격하는 내내 서서 응원할 수 없음을 깨달아 무려 수수료 10%의 출혈까지 마다하고 바꿔 예매했다. 전날 보니  취식에 집중하는 니테이블석은 1루와 가까워 내야가 잘 보이면서도 일어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이날도 상대팀은 삼성이었고, 경기 전 삼성 선수들이 타격 연습에 한창이었다. 경기장 한 켠, 뙤약볕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눌러쓴 나는 또 <시드니>를 펼쳐들었다. 책에도 운동하는 선수들이, 눈 앞에도 운동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게다가 날은 참 좋고,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그닥 집중을 요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주위 풍광을 즐기면서 하는 한량 독서를 하기에, 야구장은 안성맞춤이다. 충만한 행복감이 들었다.


NC파크에만 있다는, 미니테이블석의 만족도는 '굿'이었다. 책 옆으로 보이는 저 간이 테이블이 미니테이블의 전부고, 그나마도 옆사람과 반씩 나눠써야한다. 그러나 떨어뜨릴까 불안해서 무릎에 음식을 놓기가 싫은 사람에게, 저만한 정도면 충분히 쓸만한 공간이었다. (물론 피자처럼 부피가 큰 음식물은 올려두기 난감할 수 있다.) 특히나 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친구와 양 옆으로 자리를 잡으면 음식 나눠 먹기도 매우 편할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들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음식보다는 들고온 에코백을 놓는 용도로 썼고, 꽤나 만족했다.


금요일이었던 전날보다 1시간 30분 빠른 오후 5시부터 경기는 시작됐다. 휴일이라 관중이 정말 빼곡했다. 3루쪽 원정 응원석마저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NC 선발은 믿고 보는 페디. 다승 1위에 빛나는 페디가 나오는 날이면 절로 마음이 느긋해진다. 나는 1루나 3루쪽 1층 자리에 바투 붙어서 투수의 투구폼과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관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그래서 2층이나 외야로 자리를 잡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직접은 처음 보는 페디의 투구폼이 아름다웠다.


1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다이노스 오빠가 역대 최연소 2루타 400개를 달성했다. 요즘 대부분 다이노스의 첫 따봉 키스(NC의 안타 세리머니다)는 '오빠'에게서 나온다. 내 친구 아섭이(다만 나이가 같을 뿐이다)의 경기하는 양을 보고 있자면, 농담이나 너스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 같은 초진지함, 오래 정상급 위치에 있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만족이란 없는 듯한 매 타석에서의 절박함 등이 보여서 세상 생각이 많아진다. (나만 과몰입인가) 또래인 나는 기사를 쓸 때, 방송을 할 때 아섭이처럼 이글 아이를 하고 매사에 임했는가! 아님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팔짱 낀 관조의 자세를 취했던가... (아무래도 후자가 많았던 거 같다.)


전날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던 박건우는 이날도 투런 홈런을 쳤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100홈런 기념글을 올렸다가 팀 패배를 의식한 탓인지 지웠더라. 프로 선수란 참 많은 걸 의식해야 하는구나. 나야 그가 그 글을 계속 놔뒀어도 별 생각 없었을 테지만 딴지 거는 사람도 엄청 많았을 것이다. 생각이 많았을 그가 오늘도 시원하게 한 방 날려줘서 속이 시원했다.


이날은 NC가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듯 타선에서 활활 불꽃을 피운 탓에, 삼성의 다양한 불펜 투수들을 볼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삼팬들에겐 엄청 욕 먹을 일일테지만) 특히나 언더핸드인 김대우가 나와서 반가웠다. (나는 그를 '스포츠토크의 킹'이라는 유튜브 채널 '스톡킹'에서 봐서 알고 있다. 왜 채널 이름이 그 따위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사실 오버든 사이드암이든 언더든 도대체 타자들은 그걸 그 짧은 새 그 빠른 공을 어떻게 보고 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 중에서도 언더 투수들의 공은 날아오는 궤적이 신기 그 잡채다. 옆구리에서 공이 갑툭 발사되는 것만 같다.


오늘도 NC 포수는 박세혁.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안방마님 박세혁!" 야구에서 포수를 지칭하는 '안방마님'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것은 여성혐오적인 용어 사용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야구에서 포수는 '안방'인 '홈'을 지키는 사람이고, 실제 안방마님의 뜻인 '예전에, 안방에 거처하며 가사의 대권을 가지고 있는 양반집의 마님(여성)을 이르던 말'과는 다르게 젠더리스하게 쓰인 것 같다. 그러나 공을 멀리 못 뿌리는 야수들에게 주로 쓰는 '소녀 어깨'는 확실히 여성혐오적인 용어다. '여성의 신체는 운동을 하기에 취약하다'라는 편견을 담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예능 등에서 습관적으로들 그 말을 쓰던데, 내가 방송사의 심의실 소속이면 한 소리했을 거라고, 홀로 응원봉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이날 스코어는 14-3. NC의 대승이었다. 스코어나 승리 그 자체보다도 이 날은 '엔팍 콘서트'라는 구단 유튜브의 자평처럼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응원이 눈부셨다. NC팬 뿐만 아니라 큰 스코어차로 지고 있던 삼성 응원단까지 합세해 파도타기를 했고, <여행을 떠나요>, <아파트> 등 왼갖 한국인의 18번들로 응원가를 웠다. 어제처럼 서서 부르는 건 아니어서 비교적 다행이었지, 1루 응원석이면 체력이 배겨내질 못했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경기가 채 끝나기 직전 경기장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마산역으로 향했다. 행신역으로 가는 KTX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난폭운전을 하는 차들을 욕하던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공부를 너무 해도 파이에요~" 하셨다. "네?" "아니, 우리 아들. 미국에서 의학 박사까지 했거든요. 서울에서 병원하는데, 너무 고생해." "아, 예예..." 별안간 시속 150km의 공을 맞은 느낌이었다.


여럿의 삼성 팬들과 함께(유니폼을 보고 알 수 있었다) KTX에 올랐다. 당연히 나는 NC의 유니폼을, 전에 산 아섭이 원정 유니폼 말고 전날 산 충무공 버전으로 입고 있었다. 전신에 번진 도파민 때문인지 잠이 안 와서, 이 선수 저 선수 나무위키로 뒤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어제 유니폼을 산 선수가,(그래서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의 선수가) 음주 뺑소니 전력이 있음을 알게 됐다. 사실 음주운전 전력은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나무위키로 선수들 생애를 읽다보면 논란거리에 '음주운전'들이 콕콕 박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단순 음주운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뺑소니는 처음 안 사실이었다. 미친듯이 그 시절 기사들을 검색했다. 전후 상황 등을 모조리 읽었으나 사고 후 400m를 달렸다는데서 "음주운전은 맞는데 뺑소니는 아닌 것 같다"는 구단의 해명은 영 석연찮았다. 그가 올해 WBC 국가대표에 선발된 것을 두고 "이용찬은 되고, 안우진은 안 되나" 같은 글들이, 야구 커뮤니티에는 넘쳐났다. 순간 나만 아는 비감(...)이 나를 에워쌌다.


솔직히 좀 어렵다. (나는 직전 글에서 내가 유니폼에 마킹할 선수 이름을 고르는 기준으로 '타의 모범'이라는 도덕성에 관한 기준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나는, 그의 음주운전 전력은 알았으나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나 그런 내게도 '음주 뺑소니'는 크게 문제되는 문제다. 사고를 냈는데 도망 갔다는 것이 내게는 '비겁'의 영역인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십수년이 흘렀고, 당시에도 대중들의 질타를 받고 징계를 거친 끝에 현재는 프로 생활을 잘하고 있는 선수를 향해 또 한 번 돌팔매질을 하는 게 정당한가...에 관한 의문도 있다. 그건 나의 앎이 늦어서일 뿐, 이제 정확히는 그를 향한 비난보다는 그같은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숙의가 필요할테다. 음주 뺑소니는 되고 학교폭력은 안 되는 건지, 그것도 일정 부분 시간이 지나면 용서가 가능한 것인지,'야구로 보답'은 실현 가능한 말인지... 현 한국의 상황을 보면 결국 그때그때의 대중 정서가 잣대가 되는데 그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아님 KBO 차원의 획일적인 잣대가 필요한 것인지 등등등.


나는 그의 와일드한 투구폼과, 투구 후 적극적으로 수비에 뛰어드는 모습 등등에 반했다. 동갑내기인 것도 적극 응원하고픈 요소 중 하나였다. 뒤늦게 안 그의 전력 때문에 그에 관한 응원을 바로 접을 것은 아니지만, 나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굉장히...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일이었다.


KTX가 동대구역을 지나갈 무렵, 나는 유니폼 위에 조용히 바람막이를 겹쳐 입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홈팀을 응원하는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