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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Jul 22. 2021

글노동자가 브런치를 엄지로 하는 이유

나는야 이 구역의 엄지왕

오늘 하루는 망했다.


하루 종일 차별금지법에 관한 칼럼을 손에 잡고 있었는데 결국은 마감을 못 했다. 뒷 문단을 앞으로 보냈다가 다시 뒤로 돌렸다가 중간에 한 문단을 뭉텅 잘랐다가 급기야는 결론인 마지막 문단을 먼저 쓰기도 했는데 결국은 망했다. 글은 마감이 써주는 것이어서, 최종 마감일인 내일까지는 어째저째 완성될 것임을 알지만 뒷맛이 개운치않다. 하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서, 지금은 침대로 나동그라졌다.


그러곤 두 손에 스마트폰 끼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최소 6시간 이상을 칼럼 쓰는 일에 바치고 또 잡문이나마 쓰려고 누운 내가 스스로도 신기하기는 한데 아무튼 또 쓰고 있다. 근데 신기하게도, 브런치를 하는 일은 좀전까지 했던 칼럼을 쓰는 일과는 별개로 느껴진다. 물론 딱딱한 글과 말랑한 글, 일과 취미라는 차이가 있겠지만서도 그뿐은 아닌 것 같다. 바로 노트북과 폰이라는 습작 도구의 차이가 주는, 무드의 차이다.


사실 나는 브런치를 개설하면서는 절대 노트북으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보니 '절대'까지는 좀 오바육바 같다. 세상에 장담할 일 몇 있으리...) 노트북으로, 글을 좀 멋드러지게 쓰고 싶은 나는 자주 문단의 위치를 바꾸고 문장을 바꾸고 쓰고 또 쓰고 또 지운다. 그러나 폰으로 쓰는, 침대 위 엄지왕일 때는 다르다. 일단 문단 순서별 기능 따위는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글의 처음서부터 마지막까지 그냥 내달린다. 맞춤법 검사 외에 퇴고도 잘하지 않는다. 근데 이게 더, 잘 쓰고자 작정하고 쓴 내 기사나 칼럼들보다 잘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나는 종종 든다. (적어도 내 시선에선 그렇다.) 일단은 그게 더 흐름이 자연스럽다. 내 호흡이다. 그리고 더 생기가 있다.(당연히 칼럼이나 기사가 아닌 잡문이라 그렇겠지만은)


근데 묘하게 같은 글도 노트북으로 쓰면 그 톤이 달라진다. 더 엄중해진달까, 논리를 획득하려고 애쓰는 내 손가락을 나의 뇌가 함께 느낀다. 필연적으로 문장을 자주 쓰고 그만큼 자주 지운다. (엄지로 쓰면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안 한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로고스를 획득하고픈! 힘이 뽝 들어간 하이브리드 문장이 나온다. (오매...)


그래서 나는, 일로써의 글쓰기와는 분리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앞으로도 쭉 브런치 글은 엄지로 쓸 생각이다. 브런치에서만큼은 취미로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니까. 그래야 내 일과 함께 평화롭게 병행할 수 있으니까!눈이 반쯤 감긴 내 고양이 옆에 누워 브런치 하는 맛이 체고시다. (내일 칼럼은 어찌 되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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